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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독립성 논란] 정부 측 코드 인사에 전문성도 부족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550조원 운용하는 기금운용위 회의 1년에 고작 5차례 … 자산운용 비전문가로 구성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이 12월 21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했다. / 사진:중앙포토
국민연금이 ‘최순실 게이트’의 핵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술수수 혐의 입증에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칼날은 문형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 사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향했다. 문 이 사장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국민연금 측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하라”고 외압을 가했다는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홍 전 본부장은 합병 찬성 결정이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도 윗선의 지시를 이행했다는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쑥대밭이 됐다. 두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고, 전직 수장과 상부 기관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금쯤 나왔어야 할 내년도 투자 계획도 정하지 못했다. 개점 휴업 상태다.

독립성과 거리 먼 기금운용위

‘5000만 국민 노후의 보루’이자 ‘2000만 가입자의 자산’인 국민연금이 왜 한 사람의 사익(私益) 추구에 동원됐을까. 기금운용을 감시할 만한 제대로 된 수단이 없어서다. 제도상으로는 복지부 장관이나 기금운용본부장이 마음대로 기금을 주무를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국민연금 기금은 정권의 ‘쌈짓돈’으로 전락했다. 기금운용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운용의 독립성이다. 독립성이 보장돼야 공정성과 투명성도 따라온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산하에 있다. 공단 이사장이 관할한다. 공단은 복지부에 속해 있다.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본부장을 낙점한다. 후보 추천이 되면 여러 명의 후보 중 한 명을 장관이 고른다. 복지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금운용의 실무를 맡고 있는 기금운용본부는 공단 이사장, 복지부 장관, 나아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3중 구조다.

이걸 막겠다고 만든 게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운용위)’다. 법 조문 상으로는 독립돼 있다. 국민연금법 103조에 따르면 기금운용위는 기금운용지침(투자정책서), 연도별 운용계획, 운용결과 평가 등 기금운용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ㆍ의결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위원장인 복지부 장관과 공단 이사장 및 관계 부처(기획재정부ㆍ고용노동부 등) 차관 등 당연직 위원 5명, 그리고 사용자ㆍ근로자ㆍ지역가입자 대표로 구성된 위촉위원 14명 등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의 임기는 2년, 한 번만 연임 가능하다(위원장과 당연직 위원은 재직 기간).

기금운용위의 민낯은 그러나,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회의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1년에 5차례. 20명 중 13명 출석. 밥 먹으면서 2시간 회의’. 중앙일보가 국민연금 기금이 300조원을 돌파한 2010년부터 최근(2016년 9월 말 현재 545조원)까지 36차례의 기금운용위 회의를 전수 조사한 결과다. 평균 출석률은 의결 정족수 기준(55%)을 겨우 웃도는 67%다. 회의시간은 평균 122분. 오후 3시에 열렸던 3차례, 오전 9시 시작된 두 차례의 회의를 뺀 31차례 회의가 오전 8시 이전에 이뤄진 조찬 회의다.

기금이 500조원을 돌파한 2015년부터는 평균 회의시간이 더 줄었다. 최근까지의 8차례 회의는 평균 1시간 45분 만에 끝났다. 그나마 참석인원은 14명으로 2010년 이후 평균에 비해 1명 늘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수사에 불과하다. 위원들 스스로 회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촉위원 가운데 자영자 관련 단체 한 곳 몫으로 배정된 자리는 3년 넘게 공석이다. 백진주 복지부 사무관은 “외식업중앙회가 가장 회원 수가 많은 자영업자 단체라 위원 추천을 요청했는데 그쪽에서 적당한 인사를 찾기 어렵다고 미루고 있다”며 “최근 다시 추천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당연직 위원인 관계 부처 차관은 회의에 거의 나오질 않는다. 농축산식품부와 산자부 차관은 각각 36차례 회의 가운데 두 번만 모습을 드러냈다. 고용부 차관도 세 차례만 출석했다. 2015년부터는 산자부 차관은 자취를 감췄다. 2015년 1차 회의에 나왔던 당시 여인홍 농축산식품부 차관은 처음으로 나와선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이준원 농축산식품부 현 차관은 “(우리 부처는) 기금운용과는 관련이 없고 농업인 지원 안건 있을 때만 참석한다”고 말했다. 차관들은 기금운용위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는 얘기다.

투자 관련 전문성 떨어져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 측에 외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문형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좌)과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우). / 사진:중앙포토
인적 구성도 문제다. 정부와 사용자 및 가입자 대표를 고루 안분했다고 하지만 정부 ‘코드’ 인사가 너무 많다. 기금운용위 20명의 위원 중 위원장을 비롯한 당연직 5명은 정부 부처 사람이다. 관계 전문가 2인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이다. 정부 목소리를 대변하는 위원이 8명이다. 여기에 위촉위원 가운데 시민단체 몫은 정부 입맛에 맞는 곳으로 채워진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참여연대에서 위원을 추천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추천을 맡았다. 최근엔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위원을 추천한다. 참여연대는 진보 진영,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보수 진영을 대표한다.

더 큰 문제는 전문성이다. 근로자 추천 위원들은 각각 노조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수협과 농협 추천 위원은 자산운용과는 관련이 없는 내부 인사다. 소비자 단체 추천 위원은 사회학 전공자다. 농축산식품부나 산자부 차관 역시 자산운용 업무를 맡아본 적이 없다.

이렇다 보니 이들 위원은 기금운용과 관련된 전문적인 안건이 상정됐을 때 입을 닫는다. 2014년 말부터 1년간 위원을 지냈던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금운용위 구성에 대표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많다”며 “기금운용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전략적 자산배분과 관련한 결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입자 대표들은 ‘기금’의 이익이 아니라 추천 ‘기관’의 이익을 어떻게 대변할 지에만 관심을 쏟는다”고 덧붙였다.

전문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두기는 뒀다. 운용위원회에 올라오는 의결 안건은 먼저 국민연금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를 거친다. 그러나 섭외된 전문가 역시 정부 코드에 맞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실무평가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회의에서 뭔가 갑론을박을 벌이려면 안건을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줘야 검토를 할 수 있는데, 회의 전날 주거나 당일 요약 자료를 뿌리는 식이었다”며 “회의에서 ‘병풍’ 취급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제 안건이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밖에 투자관련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투자정책 전문위원회를, 의결권 행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등을 운용위원회 산하에 설치하긴 했다. 그러나 운영을 들여다보면 역시 파행이다. 기금운용위를 비롯한 각 위원회가 회의에서 어떤 안건을 논의할지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강흠 교수는 “복지부나 기금운용본부가 의제 설정을 독점하기 때문에 기금운용위는 그들이 정해준 틀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위원들이 모여 두 시간 밥 먹으면서 회의를 하니, 의결 안건 대부분은 무사 통과였다. 36차례 회의에서 의결 안건으로 올라온 64건 가운데 54건이 원래 안건대로 의결됐다. 일부 문구를 수정해 4건이 의결됐고, 재논의 및 보류된 6건은 이후 회의에서 결국 의결 처리됐다. “기금운용위원회가 ‘거수기’ 역할밖에 못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금운용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지만 기금운용위는 기금운용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9일 열린 2015년도 2차 회의에서는 합병과 관련된 의결권 행사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오갔다. 민주노총 부위원장인 김경자 위원은 “(합병 찬반에 대해서)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열어서 관련한 논의를 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수준 독립성 보장해야

하지만 홍완선 전 본부장은 “기금운용위가 개별 (합병) 건에 대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열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맞섰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상위 조항인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기금의 운용에 관하여 중요한 사항으로서 위원장이 회의에 부치는 사항’은 기금운용위가 논의할 수 있다. 당시 위원장(복지부 장관)인 문형표 이사장은 유독 이날 회의에는 불참했다. 위원장이 회의에 빠진 것은 2010년 이후 최근까지 열린 36차례 회의 중 단 두 번에 그친다. 안건을 회의에 부칠 수 있는 위원장이 빠졌으니 다른 위원들이 안건 상정을 요구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기금운용위원회가 겉으로는 민주적인 지배구조로 보이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로 구성되다 보니 기금운용에 대한 실질적 의사 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나 국민연금관리공단도 현재 기금운용위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며 “그렇지만 기금운용위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 복지부나 공단의 입지가 약해지기 때문에 바꿀 생각도, 의지도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기금운용위의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확립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하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정권이 지금까지는 세 단계를 거쳐 내려보내던 낙하산을 단번에 꽂겠다는 의지 표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미국 공무원연금(캘퍼스ㆍCalPERS) 이사회는 전직 버스 운전사로도 구성된다”며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기금운용위를 상설화하고 이를 실무적으로 보좌할 수 있는 사무국을 두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금운용위가 최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수준 정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367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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