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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난민으로 전락한 1인 가구] 솔로를 위한 주택은 없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전용 60㎡ 이하 아파트 전체 공급의 29.3% 불과... 고시원·옥탑방·반지하 쪽방 전전

▎서울 노량진동의 한 고시원 내부. /사진:중앙포토
혼자 사는 윤동현(32)씨는 2년 전 취직을 하면서 회사 근처인 서울 개포동의 전용 35㎡(약 11평) 아파트에 4500만 원을 주고 전세로 들어갔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라 낡고 불편하지만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전셋값이 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재계약을 앞두고 이 아파트의 재건축이 본격 추진되면서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윤씨는 “인근 오피스텔 전세는 2억원이 훌쩍 넘어 비싸고, 그렇다고 고시원 같은 데 가자니 살 만한 환경이 못 되는 것 같다”며 “적당한 가격에 혼자 살기 좋은 집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1인 가구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이들을 위한 주택 공급은 뒤따르지 못하면서 ‘미스매치’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전수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1인 가구는 520만 가구로 전체의 27.2%를 차지했다. 499만 가구(26.1%)의 2인 가구 수를 웃돌아 한국에서 가장 주된 가구 유형으로 올라섰다. 1인 가구의 증가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2007년 당시 통계청이 발표한 ‘2005~2030년 장래가구추계’에선 2015년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중 21.1%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도 2인 가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구 유형일 것으로 전망했다. 1인 가구의 증가 추세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증가할 줄은 예상하지 못 했다는 얘기다.

‘2030년까지 2인 가구 대세’ 예측 빗나가


1인 가구가 급증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일단 고령화로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노인 인구가 증가했다. 또 평균 결혼연령 상승으로 독립 후 장기간 혼자 사는 청년 가구도 늘었다. 심지어 ‘나홀로족’ 비중이 크지 않았던 중년층 1인 가구도 급증했다. 40~50대 1인 가구는 2007년 99만5000가구에서 2015년 172만7000가구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인 가구에서 40~5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27.9%에서 33.2%로 커졌다. 1인 가구의 주요 계층이라고 여겨진 고령층 1인 가구(158만 가구, 30.3%)보다 많다. 1인 가구가 전 연령층으로 확산한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자리나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따로 사는 ‘기러기 가족’이 늘고 미혼·이혼 인구가 늘면서 중년층 1인 가구가 증가했다”며 “고령화 같은 자연적인 요인에 사회 변화가 더해진 것이 1인 가구 급증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1인 가구는 빠르게 증가했지만 주택 공급은 사회구조 변화와 어긋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7년 이후 2015년까지 분양된 전체 아파트 가운데 절반 이상(54%)은 2~3인 가구가 주요 수요층인 60~85㎡ 크기의 중형 아파트다. 1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60㎡ 이하 소형 아파트 공급은 전체의 29.3%에 불과하다. 1인 가구의 아파트 거주율은 평균(48%)의 절반(28%)에 불과하지만, 국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53%에서 60%로 커졌다. 허윤경 건설산업 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사업자는 수익성을 보장 못 하는 소형 주택보다는 1970~80년대 방식의 대규모 주택 공급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한동안 주택시장이 호황을 보이면서 건설사가 굳이 소형 주택을 공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전문가는 “그나마 최근 1인 가구 특화를 내세워 공급된 민간주택도 사실상 마케팅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 실제 1인 가구를 위한 주거시설을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주택 가격이 대다수 1인 가구가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민간 공급을 보완해줄 공공주택 역시 신혼부부와 저소득층 2~3인 가구에 초점을 맞추면서 1인 가구는 주택공급의 사각지대로 남았다. 뒤늦게 정부와 지역자치단체에서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절대 공급량이 부족하고 이마저도 ‘고가 월세’ 비판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새로운 주거 유형과 제도 만들어야”


결국 갈 곳을 잃은 1인 가구는 주거비가 비싼 오피스텔이나 주거의 질이 떨어지는 고시원 등으로 밀려났다. 실제 오피스텔·기숙사·고시원 등 ‘주택 외 거처’에 사는 전체 가구 중 59%가 1인 가구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아르바이트·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은 고시원·옥탑방·반지하 쪽방을 전전하는 ‘주거 난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실시한 ‘대학생 원룸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소재 전·월세 세입자 대학생 70.3%가 최저 주거 기준보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아 새누리당 의원은 “1인 가구 대다수가 최저 주거 수준 이하 생활을 하고 있다”며 “고시원 등이 주택법의 적용을 받는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에 1인 가구의 주거 빈곤이 통계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저 기준보다 나은 집을 구해도 주거비 폭탄을 감수해야 한다. 1인 가구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고 월세 거주 가구 비중이 크다. 그만큼 주거비 부담이 큰 편이다.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전체의 64.3%가 전·월세 세입자다. 42.5%가 월세, 21.8%가 전세에 산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한 달 평균 소득 173만8795원 가운데 19만원 정도를 주거비로 쓴다. 전체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다. 4인 가구 주거비 부담(4%)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1인 가구 대부분이 집값이 비싼 도심 지역에 사는 것도 주거비 부담을 키우는 원인이다. 1인 가구의 거주 지역은 도시지역이 79%다. 비도시 지역은 21%에 불과하다.

1인 가구의 높은 주거비 부담은 소비 여력을 잠식해 소비시장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부작용을 심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주거비 부담이 청년층의 만혼과 비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늘어난 중장년 1인 가구가 고령층이 되는 시점에서 고령층 빈곤 문제로 비화할 우려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시장 측면에서도 1인 가구의 저소득층 비중이 크고 주택구매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대형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 매매시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에 맞춰 새로운 주거 유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 연구위원은 “‘1인 가구=작은 집’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연령·계층별로 세분화해 공급 유형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소형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권일 부동산 인포 리서치팀장 역시 “1인 가구는 결혼·취업 등 환경 변수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생활방식에 맞춘 시설·서비스를 갖춰야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김현아 의원은 “지금의 임대차 제도는 지나치게 경직된 측면이 있다”며 “2년으로 고정된 계약기간을 자율화하는 등 임대차 제도를 유연화 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367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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