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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찾아간 희망 도전자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40억 명 BOP 시장(저소득층 소비자 시장) 개척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창업 목적이 ‘제3세계 지원’ … 정부 지원 해외 원조의 한계 뛰어넘어

▎베트남 의료진이 힐세리온의 초음파 탐지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스타트업 벤처 ‘노을’의 주무대는 캄보디아다. 농촌을 주로 찾아다니며 말라리아 진단 키트를 공급한다. 이동영 노을 공동대표는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나고 검사 방식도 간편하다”고 자랑했다. 손끝에서 피 한 방울을 뽑아 모바일 디지털 현미경에 넣으면 자동으로 진단을 해준다. 현미경 진단법은 숙련도에 따라 1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노을의 키트는 10∼20분이면 진단이 끝난다. 이 대표는 서울대 바이오메디컬 연구원 출신으로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했다. 이때 제 3세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교 동창 임찬양 대표와 함께 회사를 세웠다. 목표는 ‘말라리아 구제’로 잡았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물려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015년 세계 말라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60만∼70만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이 가운데 90%는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에 집중돼 있다. 치료를 위해서는 빠른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노을은 모바일 진단 키트 덕에 지난 6월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과학기술혁신 포럼’에서 ‘주목할 만한 15개의 이노베이터’로 선정됐다. 앞서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15년 ‘창의적 가치창출 프로그램(CTS)’ 1기 팀으로 노을을 선정했다. 총 3억 원을 펀딩했고, 시제품 완성을 도왔다. KOICA 관계자는 “노을의 진단 키트가 말라리아 퇴치에 실질적인 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CTS 팀으로 선정했다”며 “이들이 실제로 보여주는 실적을 보면 우리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청년 창업은 많이 증가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이 개성 강한 스타트업을 세우는 중이다. 이 중에는 기존 창업자들과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한국이 아니라 해외 그것도 제 3세계가 메인 시장이다. 아이템도 남다르다. 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들고 창업한다. 회사 설립 목적 자체가 제 3세계 소외계층을 돕는 셈이다.

아프리카에 말라리아 진단 키트 제공

오비츠코리아는 방글라데시에 초소형 시력검사기를 보급한다. 제대로 된 정기 눈 검사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인구가 제3세계에만 3억 명이나 있다. 김종윤 오비츠코리아 대표는 “고가 제품으론 소외 계층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힐세리온은 베트남에 휴대용 초음파 탐지기를 제공 중이다. 대형 병원이 없는 오지에서 활용할 수 있어 임신 여성 진단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는 “베트남 보건소를 중심으로 보급 중인데, 간호사와 지역 보건 인력에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주은 닷 대표는 점자 시계를 만들어 아프리카에 공급할 계획이다. 아프리카에만 1160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있다. 김 대표는 케냐를 중심으로 저가형 스마트 점자시계를 제공해 생업에 도움을 주길 희망한다. 이외에도 캄보디아에 태양광 시스템을 보급하는 에너지팜, 모로코에서 결핵퇴치에 나선 제윤, 시리아 난민에게 3D 프린터로 의수와 의족을 만들어 주는 만드로, 캄보디아에서 낙엽 재활용 사업을 펼치는 나무리프 같은 토종 스타트업이 맹활약 중이다.

이들의 주요 후원자 중의 하나로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인 디캠프가 있다. 디캠프 빌딩 한 층을 아예 이들을 위해 제공하며 창업 상담과 금융지원을 한다. 진승훈 디캠프 매니저는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의 문제를 창업이라는 방법을 통해 돕고자 하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늘었다”며 “이들 역시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 적극적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수입 10달러 미만 인구 40억 명이 주고객

제3세계를 찾아간 희망 도전자들은 대략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벤처 기업가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제3세계를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적은 비용으로 기존 정부 지원 사업보다 더 좋은 효과를 거두는 모습이 커다란 동기 부여가 됐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은 다양한 정부 지원 사업을 진행해 왔다. 학교와 병원을 세워주고 음식과 약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인프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정치·종교·경제 문제가 섞여 있어 물질적인 지원만으론 문제를 풀기 어려웠다.

2010년 들어 새로운 접근 방법이 등장했다. 미국·프랑스·호주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돕는 노력이 늘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사회적 기업가들이었다. 프랑스 대외원조 기관 디피드는 기존 원조 방식에 한계를 느꼈다. 그러던 중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아프리카에는 설사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많다. 프랑스의 한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냈다. 투명한 비누 안에 장난감을 넣어 가정에 공급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싶어 손을 열심히 씻었다. 비누를 제공한 마을에서 아이들의 사망률이 거짓말처럼 낮아졌다. 깊은 인상을 받은 디피드 관계자는 ‘오픈 아이디오르’라는 행사를 열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포상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런 기업들은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단체, 개도국 정부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KOICA에서 이를 주목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소외 계층 지원을 꾸준히 해왔지만 한계를 느끼던 중이었다. 한국에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청년 기업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개발도상국에 물 부족 문제, 의료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민간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동시에 청년들의 창업까지 도울 수 있었다. 김성도 KOICA 기술총괄팀 과장은 “KOICA가 개발 협력 난제들을 풀어보려고 다양한 사업을 해왔지만 아직도 못 풀고 있는 난제들이 많았는데, 청년 사업가들의 혁신 아이디어를 접하자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KOICA 기술총괄팀은 벤처기업·액셀러레이터·사회적 기업을 찾아다니며 청년 기업가들을 찾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기업들이 여럿이었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받아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KOICA CTS 프로그램이다. 김성도 과장은 “이전엔 제3세계에서 지원 활동을 펼치려면 일할 사람을 고용해야 했는데, 요즘엔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고용이 아니라 자원자가 나선 덕에 서로 고마워하며 일하고 있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업체 입장에선 글로벌 시장 진출과 국제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제3세계는 구매력이 약하지만 잠재적인 성장성은 적지 않다. 업계에선 연간 소득 3000달러 미만의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있는 시장을 ‘BOP(Bottom of Pyramid·피라미드의 바닥)’라고 한다. 피라미드처럼 아래로 내려갈수록 규모가 커진다는 의미다. 이 곳에 세계 인구의 70%가 있다. 하루 수입이 10달러 미만인 인구 40억 명이 있는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잠재적인 시장 규모가 5500조원에 달한다. 시장 규모가 크기에 지속 가능한 사업을 일궈낼 가능성이 크다. 이동영 노을 대표에게 ‘지속가능한 기업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물었다. 그는 “노을은 말라리아뿐만 아니라 결핵, 빈혈로 영역을 넓히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제3세계에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1367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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