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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호기심 시들한 한국] 대학은 기초과학 외면, 현장은 단기 성과 급급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자연계열 박사학위 취득자 민간기업 취업률 14% … 이공계열 자퇴생 연 2만 명

▎중국이 기초과학 분야 발전에 적극적으로 나선 가운데 국내에선 여전히 이공계 인재가 이탈하는 등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2011년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
지난해 10월 노벨위원회가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노벨생리의학상의 영예는 ‘오토퍼지’ 이론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교토공업대 명예교수가 안았다. 이로써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나라가 됐다. 또한 누적 수상자 인원만 25명이다. 이 중 22명은 과학 분야 수상자다. 반면 반도체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불리는 한국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기초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지적 호기심’이다. 요시노리 교수는 ‘자가포식’ 연구에만 50년을 매달렸다. 한국은 1년 단위로 성과를 검증받는 연구가 허다하다. 5000만원 미만의 저예산 기초과학 정부 지정 과제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지적 호기심을 중시하는 풍토가 마련되지 않는 한 기초과학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공계 자퇴생 대다수는 ‘의대 지망생’


지난 1월 4일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기초과학 및 고등과학원 발전 방향’ 간담회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50년간 그랬듯 다음 50년도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을 이끌 것”이라며 “과학기술의 토대가 기초과학에서 나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미래 기초과학 분야를 이끌 인재조차 해마다 줄어드는 실정이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공립대 자퇴생 현황'에 따르면 2013학년 4808명이던 이공계 자퇴생은 2014학년 4869명, 2015학년 5518명으로 증가했다. 사립대 학생까지 더하면 한 해 2만 명에 이르는 이공계생이 자퇴를 택하는 셈이다. 서울대에서도 매년 100여 명의 자퇴생이 나왔다. 자료에 따르면 자퇴한 이공계 학생들의 대다수는 의대 진학이나 약대 편입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대 이공계를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수도권 대학 진학을 위해 반수나 편입을 선택했다. 이와 반대로 인문사회계열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이과로 진학하는 고등학생은 늘고 있다.

국·공립대 이공계 자퇴생은 2013학년부터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3개 국공립대 이공계 자퇴생은 2013학년 4808명에서 2014학년 4869명으로 소폭 상승했다가 2015학년 5518명으로 크게 늘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매년 입학정원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자퇴생은 오히려 증가한 셈이다. 자퇴생의 절반 이상이 이공계 학생인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부산대의 경우 자퇴생 가운데 이공계 학생 비율이 71%(2015년 기준)로 가장 높았다. 이어 공주대 68%, 경북대 67%, 강원대 61%, 전남대 58% 순이었다.

이공계 기피와 이공계 인재유출 문제는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심화됐다. 이에 정부는 대학의 이공계 정원을 늘려 산업 현장의 이공계 인재 부족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상민 의원은 “현재와 같은 일시적인 대책만으로는 이공계열 이탈 현상을 막을 수 없다”며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연구원에게 충분한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과학 및 고등과학원 발전 방향’ 간담회 참석차 1월 4일 방한한 마이클 코스털리츠 미국 브라운대 교수(201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역시 “기초과학 분야 발전을 위해선 정부의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이 돼야 한다”며 “눈앞의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과학 분야를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공계열 인재를 잡는다고 해도 이들이 산업계에서 활약할 기회는 많지 않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이공계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 노동시장 이행실태’에 따르면 자연계열 박사학위 취득자 가운데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경우는 14.7%(2015년)에 불과했다. 공학계열이 44.1%인 것에 비해 낮은 수치다. 자연계열 박사학위 취득자의 민간기업 취업률은 26%(2012년) → 18.2%(2013년) → 18%(2014년)로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교수 등 대학에 취업하는 비율은 2012년 34.9%에서 2015년 62.4%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기명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과학을 하면 모두 교수가 돼야 한다는 편견이 사회에 만연하다”며 “지적 호기심을 기초로 한 과학 연구 결과를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민간 기업에서 이를 실현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원을 매년 채용하고 있지만 다른 계열에 비해 모집 인원이 적은 편”이라며 “채용한다고 해도 당장 급한 사업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단기간에 성과를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기업이 가장 먼저 줄이는 예산이 연구개발(R&D)비”라며 “수익을 내야하는 기업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구 분야에 투자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글로벌 우수 연구기관 100개 중 40개 보유

한국과 달리 중국은 기초과학 분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난해 조사 결과에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소와 대학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로 중국을 꼽았다. 네이처가 최근 4년 사이 평점이 큰 폭으로 오른 전 세계 100대 대학과 연구기관을 선정한 결과 중국 대학과 연구기관은 40개에 달했다. 상승폭이 가장 큰 1위부터 9위까지가 모두 중국의 대학과 연구기관이었다. 기초과학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11개)과 영국(9개), 독일(8개)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은 숫자다. 한국은 기초과학연구원(11위)과 울산과학기술원(50위) 두 곳만 이름을 올렸다.

앞서 중국 정부는 2049년까지 중국을 전 세계 과학기술 선도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기초과학 분야에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하면서 글로벌 기초과학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우주굴기’를 필두로 한 우주개발 연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45억6900만 달러(약 5조1886억원, 2014년 기준)로, 미국(347억4200만 달러)과 러시아(87억2800만 달러)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대부분 우주개발 국가들의 관련 예산이 해가 갈수록 줄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국은 매년 5억 달러가량 늘릴 만큼 우주산업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장은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기초과학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그 결과가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며 “중국 고성장을 이끈 지적 호기심이 또다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1368호 (20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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