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양재찬 칼럼] 그들만의 잔치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1월 수출이 403억 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11.2% 증가했다. 수출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보인 것은 4년 만이다. 지난해 7월까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였던 것과 비교하면 서프라이즈 수준이다.

수출 증대의 일등공신은 반도체다. 총수출의 15.9%에 해당하는 64억 달러로 사상 최대다. 반도체 D램값이 올 들어 39% 급등한 덕을 봤다. 이런 수출 통계가 나오기 하루 전엔 미국 가전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미국 기업 월풀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사 났다’며 잔치를 벌일 만한데,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 수출이 늘어도 일부 대기업, ‘그들만의 잔치’일 뿐 침체일로인 경제에 구세주 역할을 못해서다. 수출 대기업이 잘돼야 중소 하청업체와 가계까지 떡고물이 돌아가 내수에도 보탬이 된다는 낙수효과가 작동을 멈춘 지 오래다. 수출이 증가해도 이익을 내는 것은 소수 대기업일 뿐, 이들이 고용을 더 늘리거나 임금을 크게 올리는 게 아니라서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수출입은행이 연구용역을 의뢰한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 효과 분석’을 보면 수출 대기업 매출이 1% 증가할 때 하청 업체는 1000분의 5 수준에 불과했다. 매출액 가운데 수출 비중이 10% 증가해도 고용은 3.5% 증가에 그쳤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수출 일변도’다. 소비 진작과 내수 활성화 방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유일호 부총리가 찾은 현장은 인천남동공단 내 수출업체. 그는 “수출이 2년 연속 감소했기 때문에 올해 많이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마저 증가세를 지속할지 불투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세계 무역질서가 흔들려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다음 보호무역 조치는 뭔가.

트럼프는 중국·일본 등이 환율을 조작한다고 공격했다. 한국도 이들 국가와 함께 미 재무부의 환율 관찰대상국에 올랐으니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조정 압박을 받을 게다. 미 재무부가 환율조작국 지정 관련 보고서를 내는 오는 4월이 고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카드 또한 미국이 언제 꺼내들지 모른다.

미국, ‘그들만의 잔치’에 대한 한국 정부 대책은 막연하기 짝이 없다.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미국산 자동차와 항공기 등의 수입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 수입 확대를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부처 간 조율도 안됐음이다. 미국 신정부와의 협의 채널 구축은 ‘이른 시기’일 뿐이고, 범부처대표단의 미국 방문도 ‘필요할 경우’다. 그러면서 미 의회 보좌관들을 초청하겠다는데, 의원도 아닌 보좌관들이 한국에 온다고 무슨 힘이 되겠는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반발해 각종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중국에 대해서도 “보복 조처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아 공식 대응이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이제라도 나라 안팎, 그들만의 잔치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통상업무를 총괄하는 범정부 조직을 만들어 선제로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실효성 있는 내수 활성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사심 없이 총괄 지휘해야 할 황교안 총리는 ‘대통령 아바타’ 행세에 바쁘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그를 대선 후보로 끌어들일 태세이니 경제와 나라 꼴이 어찌 될지.

1371호 (2017.02.1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