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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의 이 한 문장] 유연한 전술이 강한 칼을 이긴다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장
검을 세게 휘두르려고 하면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자세가 흐트러진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공격이 둔해지고 자칫 검이 부러져 위험해진다. 그러므로 검은 적당한 강도로 휘둘러야 한다. 대규모 전투에서도 강력한 군세로 밀어붙이면 상대도 강력하게 대응하므로 오히려 승패를 가르기 어렵다. 그러므로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강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략을 발휘해 다양한 병법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 - 바람의 장

강한 칼이 좋다거나, 약한 칼이 좋다거나 할 수 없다. 다만 적을 베는 칼이 있을 뿐이다. 강하게 휘둘러서 적을 베면 좋은 칼이고, 약하게 휘둘러 적을 베어도 좋은 칼이다. 강하고 세게만 나가면 오히려 약점이 되기 쉽다. 상대방이 세게 나오면 오히려 물러서고, 상대방이 물러서면 나아가서 공격하는 유연함이 강력함을 이기는 역설이 있다.

20세기 중반, 중국 대륙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모택동의 공산당은 병력과 자원의 열세로 생존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때 모택동은 게릴라전을 주창해 공산군의 기본 전술로 삼았고, 결국 중원을 제패했다. 이후 모택동의 전술은 비정규전의 전범이 되었다. ‘16자 전법’으로도 불리는 모택동의 기본 전술 4가지는 다음과 같다. 적진아퇴(敵進我退), 진격해오는 적이나 힘이 우세한 적과는 싸우지 말고 피해버려라. 적피아격(敵避我擊), 적이 아군을 피해 달아나거든 여지없이 공격하라. 적지아요(敵止我擾), 적이 정지하면 집적거리면서 교란시켜라. 성동격서(聲東擊西), 소리는 동쪽에서 내고 치기는 서쪽을 쳐라.

모택동이 게릴라 전술을 주창하기 이전에 일제 치하의 조선 독립군은 강력한 적군을 유연한 전술로 섬멸하는 전범을 만들었다. 1920년 김좌진과 홍범도가 지휘하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병력과 장비의 절대 열세를 극복하고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만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접경지대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일본은 1920년 6월 대대급 정규군을 투입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홍범도가 지휘하는 독립군은 조선인 마을이 있던 봉오동으로 일본군을 유인한 후 매복 지점에서 총공격을 퍼부어 대승을 거뒀다. 상하이 임시정부 군무부는 일본군 전사 157명, 부상 300여 명의 전과를 발표했으며, 독립군 전사자는 4명에 불과했다.

봉오동 전투의 참패에 절치부심하던 일본은 전열을 정비해 전면공격에 나섰다. 1920년 10월, 19사단 9000명을 중심으로 총 2만 명의 정규군 군단 규모 병력을 편성해 독립군 근거지로 진격했다. 김좌진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 1600여 명과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중심의 1400여 명이 연합한 3000여 명의 조선독립군은 기만전술로 만주 오지 삼림지대인 청산리로 일본군을 유인했다.

10월 21일부터 시작되어 26일 새벽까지 일주일 동안 10여 회의 전투를 벌인 끝에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고, 독립군 전사자는 100여 명에 불과한 대첩이었다. 일본군은 무적황군(無敵皇軍)을 자처하며 병력과 화력의 절대적 우세를 믿고 전면 공격을 감행했으나, 독립군은 매복과 기습을 반복하면서 적을 유인하고 병력을 분산시켜 승리의 여건을 만든 다음, 결정적 순간에 지세를 활용한 강력한 반격으로 역사에 빛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1371호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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