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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반이민 행정명령 속내는] 트럼프의 중동 전략이 담긴 ‘반 이민 행정명령’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테러 무관한 중동 7개국 입국 금지... 미국·사우디 이익 맞아떨어진 결과

▎사진:중앙포토
지난 1월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가 거칠다. 대표적인 것이 반이민 정책이다. 트럼프는 1월25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행정명령을 한 데 이어 1월27일엔 중동·아프리카 7개 무슬림 국가(시리아·이라크·이란·리비아·예멘·수단·소말리아) 국민에게 90일간 비자발급 및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국민을 ‘불법이민자’, 7개 무슬림 국가 국민은 ‘잠재적 테러위험자’로 모는 차별적인 조치라는 비난이 미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자칫 전 세계 16억 무슬림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조치는 글로벌 종교인 이슬람을 ‘테러를 유발하는 종교’로 본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종교·문명권간 대결과 충돌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개국 모두 사우디의 숙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미국 전역에 혼란과 반발을 몰고 왔다. 1월 28일(현지시간) 뉴욕 JFK공항을 가득 메운 시위대.
따지고 보면 미국에서 1975년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테러 중 이들 7개국 출신자는 없다는 것이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지적이다. 미국에서 테러를 일으킨 사람들의 출신 국가는 이번에 트럼프의 조치에서 모두 빠졌다는 얘기다. 9·11테러를 보자. 비행기를 납치해 충돌 자폭 공격을 실행하거나 시도한 19명의 알카에다 대원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 15명이고 아랍에미리트(UAE) 출신이 2명, 이집트와 레바논 출신이 각각 1명이다. 알카에다의 수뇌부였던 오사바 빈라덴은 사우디 출신(조상은 예멘에서 건너옴)의 건설업자였고, 2인자였다가 빈라덴 사망으로 1인자가 된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이집트 출신의 외과의사다. 그럼에도 이런 위험 인물을 배출한 사우디와 이집트, UAE는 이번 조치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조치가 미국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는 트럼프 논리의 허점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번에 미국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국가의 대부분은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국가로 통하는 사우디의 숙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예멘은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의 눈엣가시인 이슬람 시아파가 집권하거나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따지면 시리아를 제외하고는 사우디와 국경을 맞대거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특히 이란은 이슬람 종파적으로는 물론 역사적으로 사우디와 견원지간이다. 양국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갈등과 충돌을 거듭해 왔다. 특히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벌어진 1979년 이후 양국은 세 차례에 걸쳐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1981~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에는 사우디가 같은 수니파인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감싸고 돌았다. 이란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란은 ‘순교자의 국가’다. 어디를 가든 1979년 이슬람 혁명이나 이란·이라크 전쟁 희생자의 사진이 포함된 현수막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희생을 낸 전쟁 중에 뒤에서 적을 도운 사우디는 이란에 원수일 수밖에 없다. 이는 이란 신정 정권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사안이다.

양국은 1988년부터 3년간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이끈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1902~89)가 사우디의 알사우드 왕조의 바탕이 되는 와하비즘을 이단이라고 비난한 것이 계기다. 2016년에는 사우디가 자국의 시아파 지도자인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전격 처형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이를 계기로 이란인들이 테헤란의 사우디 공관을 공격했고, 사우디는 이를 빌미로 이란과의 국교를 일시 단절했다. 이는 지난 35년 동안 세 번째 충돌에 해당한다.

미국-사우디 사전 교감 있었을 것

사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와 시아파의 본산인 이란은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오랫동안 갈등했다. 두 나라의 갈등은 중동·이슬람 사회에서 친서방과 반서방 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양국은 각각 중동의 친미국가와 반미 국가의 대표주자다. 사우디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전통적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을 안보와 국제관계의 기본 축으로 삼고 있다. 미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하다. 사우디는 이란이 중동지역에 이슬람혁명을 수출하려고 시도해 지역 안정이 흔들린다고 지적해 왔다. 사우디는 이란이 사우디를 비롯한 페르시아만 지역 이슬람 국가들의 군주제를 전복시키고 이란식 민중혁명을 배후조종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를 지배하고 있는 알사우드 왕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반면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의 초대 최고 지도자인 호메이니 이래 반미·반서방을 외쳐왔다. 미국과 서방이 자신을 탄압한 팔라비 왕조를 지원하고 이슬람을 무시했다는 게 이유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은 “사우디가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고 비난해 왔다.

두 세력의 균형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이란은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사담 후세인은 수니파를 기반으로 정권을 유지했는데, 그가 사망한 후 이라크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집권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의 아이러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사우디는 바짝 긴장하면서 이라크와의 국경에 거대한 보안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사우디는 살만 국왕이 국방장관 시절이던 2014년 9월 이라크 국경을 따라 길이 814km의 국경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콘크리트 시설물이 아니다. 외부 침입자가 국경을 넘어오지 못하게 5중 벽을 가진 방호벽이다. 20km마다 감시 레이더를 설치하고 벽에 감지센서까지 부착해 물샐 틈 없는 감시망을 구축한다. 하늘에는 정찰기와 무인감시기가 돌아다니면서 24시간 국경을 감시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사이에 설치한 콘크리트 장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비용을 들인 첨단 보안 시설물이다.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따온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장벽의 건설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지만 사우디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어 보인다.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극단주의 테러세력의 공격과 침투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실제적으로는 이란과 가까운 이라크의 시아파가 사우디나 예멘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막는 이유가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국경 장벽 건설은 현재 사우디 왕위 계승 1순위인 모하메드 빈 나예프 왕세자 겸 내무장관이 주도하고 있다. 모하메드는 친서방 성향의 반테러리즘 전문가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루이스&클라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1985~88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보안 과정을 이수했다. 1992~94년에는 영국의 스코틀랜드야드(경찰청)의 대테러 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미국과 영국에서 보안·대테러 전문가로 길러진 셈이다.

경력으로 보면 모하메드는 사우디 ‘왕실 안보’를 책임지기 위해 오랫동안 양성된 정예 요원 같다. 모하메드는 굵은 뿔테 안경에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어 부드러운 인물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테러는 물론 사우디 국내의 반정부 운동에 강경하게 대처해온 대표적인 매파 인물이다. 9·11테러 이후 사우디 내무부의 보안담당 차관보를 맡으면서 이 나라의 대테러 프로그램을 하나씩 손아귀에 넣어왔다. 2004년 내무차관, 2012년 내무장관에 각각 올랐다. 한편으로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버락 오마바 미 대통령이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직접 만나 여성 인권 확대를 약속하는 등 사우디 이미지 개선에도 힘써왔다.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진영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사우디와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는 모하메드가 주도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번 7개국 국민 입국 금지조치도 모하메드와 트럼프 행정부 간의 교감이 바탕이 된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모하메드는 살만 국왕의 동복 형인 나예프(1933~2012)의 아들이다. 살만과 나예프는 모두 사우디를 건국하고 초대 국왕을 지낸 압둘아지즈의 여섯째 부인인 수다이리의 아들이다. 슬하에 성인까지 생존한 7명의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뛰어나 ‘수다이리 7형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 형제는 오랫동안 사우디 왕실과 정국을 주도해왔다.수다이리의 장남이 파드 제 7대 국왕이다. 차남인 술탄(1928~2011)과 삼남으로 모하메드의 부친인 나예프는 왕세제까지 올랐으나 계승 전에 세상을 떠났다. 살만은 6남이다. 수다이리는 아들 둘을 국왕에 올린 기록을 세웠는데 손자까지 왕위에 올리게 된 것이다. 수다이리 7형제 집안이 사우디 왕실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사우디는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국

이런 사우디는 트럼프 정권을 움직일 지렛대가 많다. 석유는 물론 무기 수입도 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정례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는 2015년 808억 달러의 국방비를 썼다. 미국(5810억 달러)·중국(1294억 달러)에 이은 세계 3위다. 러시아(700억 달러)나 영국(618억 달러)보다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3년 사우디의 국내총생산(GDP)은 명목금액 기준으로 7480억 달러(세계 19위)로 1조3045억달러(세계 14위)인 한국의 57%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방비 지출은 344억 달러로 세계 10위인 한국의 2.3배에 이른다. 군사국가인 것이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미국 무기 수입국이기도 하다. 트럼프 정권의 향후 중동 정책이 사우디를 앞세워, 사우디의 뜻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보이는 대목이다.

트럼프의 미국 입국 금지 대상국가에 예멘이 포함된 것도 흥미롭다. 사우디 서남부에 있는 예멘에는 상당수 시아파가 거주한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 영향력을 회복한 이란이 다음 목표로 노려온 곳이 예멘이다. 예멘은 현재 종파와 부족이 복잡하게 얽힌 내전이 진행 중이다.

사우디는 예멘 내전에 개입해 주로 시아파 반군인 후티에 대한 공습에 주력해 왔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이 수도인 사나를 장악하고 수니파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을 압박하자 공습을 통한 군사적 지원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예멘 수도 사나의 이란 대사관이 사우디의 공습을 받았다는 이란 주장도 있었다. 미국은 이 나라에 대해 별 불만을 제기할 이유가 없다. 국경을 맞댄 사우디가 ‘눈엣가시’로 여길 뿐이다. 사우디는 2014년 예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려다 예멘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일단 철회한 상태다. 예멘 국경 장벽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사우디는 트럼프의 임기 중 중동에서 이란 세력을 제거하고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확대하려고 할 게 분명하다. 사우디의 예멘 견제 작전에는 미국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미국이 항공모함을 인근 해역으로 파견해야 공습 효과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이란의 무기가 예멘의 시아파 반군에 전달되는 것을 막아 고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시리아 국민의 입국을 금지한 것은 인도적인 입장에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리아야말로 인도적인 지원과 이주처가 필요한 난민들의 양산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이 이런 정책을 취해주기를 원해왔다. 시리아 내전이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성격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소수파인 알라위파에 속하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해왔다. 사우디는 반군을 지원해왔다. 시리아 내전이 7년째에 접어들도록 포성이 멎지 않는 이유다.

시리아는 알라위파를 포함한 시아파가 인구의 13% 정도를, 수니파가 인구의 74%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친정부파의 주축은 시아파와 기독교 등 소수종교 신자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반정부군은 수니파가 주류다. 서구에서는 시리아 내전의 성격을 독재정권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을 기본 축으로 하고 여기에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 가세한 정도로 여기지만 실상과는 다르다. 서방에서는 알카에다를 계승한 알누스라와 잔학행위로 이름 높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IS를 문제시하지만 잔학행위는 IS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부군과 반군 모두가 벌이는 일상적인 비극이다.

사우디는 기독교도를 포함한 시리아 국민이 빠져나갈 길이 없도록 미국이 조치하기를 원한다. 그런 고립무원의 상황이라면 인구가 많은 수니파가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인간적인 조치의 하나가 트럼프의 시리아 국민 입국 금지조치다. 이민자와 난민의 유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봤던 트럼프 지지자와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이유다.

유가 하락 유발할 수 있어

사우디의 이런 드라이브는 유가 하락을 유발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란이 주요 석유·가스 수출국임에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것은 이라크전쟁과 핵개발에 따른 오랜 국제 제재로 석유를 제대로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초 이란의 핵 합의로 경제 제재가 풀린 것은 사우디에는 재앙이다. 이란이 석유를 합법적으로 다량 수출해 경제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경제회복 속도를 늦추기 위해 사우디는 계속 저유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도 셰일가스를 계속 개발해 유가 하락을 부채질해주기를 바란다. 이란을 고사시키려는 무한 물량전에서 사우디와 트럼프의 이익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1371호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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