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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차이나 인사이드’] 강달러에 발목 잡힌 위안화 국제화 

 

김재현 칼럼니스트
중국 외환보유액 3조 달러 선 붕괴... 자본시장 개방 가속화 불가피

▎사진:중앙포토
중국의 외환보유액 3조 달러 선이 깨졌다. 달러당 7위안을 위협했던 위안화 절하 추세는 주춤해졌지만, 달러 유출이 줄지 않고 있다. 외국기업의 외화유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야심 차게 추진해 왔던 위안화 국제화 행보도 늦춰지고 있다.

중국의 국가 대계 중 하나인 위안화 국제화가 지연되면 미국이 초강대국 지위를 지속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진다. 위안화 국제화는 왜 중요할까. 미·중 대결에서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항공모함이 아니라 기축통화인 달러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대국굴기의 또 다른 표현이다. 대국굴기를 위해서는 경제력과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가 뒷받침돼야 한다. 거기다가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는 문화력(力)까지 받쳐주면 대국굴기가 완성될 수 있다. 미국의 예를 보자. 기축통화인 달러로 대표되는 경제력, 항공모함으로 대표되는 군사력, 그리고 헐리우드·맥도날드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력이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기축통화다.

위안화의 기축통화화를 위한 중국의 야심에 찬 계획이 바로 위안화 국제화다. 통화 국제화를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통화의 유출과 재유입이다. 소비가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 소비국 미국은 전세계 제품을 수입하면서 달러화를 역외로 유출시키고 있다. 미국은 만성적으로 경상적자를 기록하지만 미국채 발행을 통해 해외로 풀려나간 달러를 다시 거둬들인다. 기축통화인 달러는 각국이 대외지급을 위해 비축하는 준비통화로서 세계 각국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은 달러화 자산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통화를 유출하는 주요 수단으로는 경상수지 적자와 자본수지 적자를 통한 방법이 있고, 재유입 수단은 외국의 상품무역 수요와 자본투자 수요가 있다. 바꿔 말하면, 중국은 경상수지 혹은 자본수지 적자를 통해서 위안화를 해외로 수출하고 위안화를 손에 쥔 외국기업과 외국인은 위안화로 중국 상품을 구입하거나 중국에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위안화가 다시 중국에 유입되는 것이다.

달러 리사이클링에 이은 위안화 리사이클링


미국이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서 해외로 달러를 유출하고, 해외 국가나 기관이 미국 자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유입되는 과정이 달러 리사이클링(Dollar recycling)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해도 끄떡없는 것은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면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외환위기 상황에 직면했겠지만 기축통화 보유국인 미국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경제 상황에 따라 달러 가치가 변동하긴 하지만 달러는 여전히 1순위 안전자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위기의 파장이 클수록 달러자산에 대한 선호도는 함께 높아진다.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최대 호혜국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비교적 낮은 위안화 환율을 유지하면서 대미 수출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실현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역내로 유입된 달러를 흡수해 통합관리하고 있는 데, 이 결과가 약 3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이다.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의 상당 부분을 미국채 매입에 사용했다. 2016년 말 중국의 미국채 보유규모는 약 1조 달러에 달한다.

위안화도 달러와 유사한 리사이클링 구조를 갖춰야 한다. 즉, 경상수지 적자 혹은 자본수지 적자를 통해서 위안화를 역외로 내보내야 하는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12년 중국의 자본수지가 1998년 이후 14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본수지 적자가 발생한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자본의 해외진출 가속화다. 중국 기업의 해외 M&A는 2012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2016년에는 약 22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통제 가능한 규모의 자본수지 적자는 감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할 만하다. 미국채 투자보다는 해외 인수합병을 통한 수익률이 높고, 또 자본수지 적자는 위안화를 해외로 수출하는 채널로 활용될 수 있다.

중국의 전략 변화 예의주시해야

위안화가 국제통화, 더 나아가 기축통화의 지위에 오르려면 무엇보다 자유로운 태환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 시장 개방이 필수적이다. 무역과 관련된 경상계정은 이미 1996년 완전히 개방됐다. 즉, 무역 결제를 할 때 위안화와 달러는 제한 없이 교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금융시장과 관련된 자본계정은 아직도 빗장이 걸려있다.

중국은 실물경제에 비해 금융 분야의 발달이 뒤처져 있다. 덩치로만 보면 세계적인 은행을 여럿 거느리고 있지만 금융 서비스는 낙후돼 있다. 중국은 금융과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왔다. 자본시장과 관련된 자본계정은 2000년 개방할 계획이었으나,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후 무제한 연기됐다. 역설적이지만,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중국이 비켜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본시장에 빗장을 걸고 단기 자본이동을 제한하는 등 자본시장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은 자본시장 개방 속도를 가속해 왔다. 2014년 후강퉁, 2016년 선강퉁을 도입하면서 본토 주식시장을 해외투자자에게 개방했다. 일본, 영국, 독일이 경상계정을 개방한 후 자본계정을 완전 개방하기까지 소요된 기간이 각각 16년, 18년, 20년이다. 중국도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서는 자본시장 개방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 그동안 외국인 자금 유출입 채널을 당국의 통제가 가능한 적격해외기관투자자(QFII), 위안화 적격 해외기관투자자(RQFII) 등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자본시장 개방 효과가 미약했다.

하지만,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 확대는 위안화 가치 하락과 해외자본 유출로 인해서 최근 속도가 주춤해졌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강세 때문이다. 강달러 추세 속에서 위안화는 독립변수인 달러의 움직임에 의해서 향방이 정해지는 종속변수에 불과했다. 위안화 국제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안화 기축통화 체제다. 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경제 규모와 성장 추세를 감안하면 위안화 국제화의 완성은 전 세계 경제질서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이다. 속도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위안화 국제화는 중국의 백년대계다.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한국은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정도도 그만큼 크다. 중국이 추진하는 위안화 국제화의 배경, 그리고 외환보유액 하락으로 인한 중국의 전략적 선택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이유다.

김재현 -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에서 MBA를, 상하이교통대에서 금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칼럼니스트로서 중국 경제·금융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도대체 왜 한국을 오해하나], [파워 위안화: 벨 것인가 베일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1372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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