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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살아 숨쉬는 그 곳, 폴란드] 파란만장한 역사 발 길 닿는 곳이 문화유산 

 

폴란드 = 김세원 카톨릭대 교수
코페르니쿠스·쇼팽의 나라... 관광객 유혹하는 바르샤바·크라쿠프·브로츠와프

오랜 세월 숱한 전쟁과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에 시달려온 폴란드는 파란만장한 역사로 인해 우리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다. 수세기동안 강대국들의 분할 통치를 받았고, 123년 동안 지도에서 사라졌다. 1918년 독립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나치 독일과 소련에 분할 점령됐다가, 1945년 해방됐다. 지동설을 제창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음악가 프레드릭 쇼팽,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과학자 마리 퀴리, 동유럽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같은 위인들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폴란드 문화유산부 초청으로 7박8일 동안 폴란드의 세 도시를 방문했다.


▎바르샤바 와지엥키공원 내 와지엥키 궁전.
지난해 12월, 바르샤바의 프레드릭 쇼팽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북위 52도로 위도가 높아서인지 오후 4시인데도 어둑어둑했다. 거리마다 특색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경쟁하듯 불을 밝히고 있었다. 첫 방문지는 폴란드 국립박물관의 현대 미술실. 레고로 만든 나치의 유대인 집단수용소, 폴란드 공산정권 지도자 야루젤스키가 계엄령을 선포한 날의 풍경을 담은 ‘1981년 12월13일 아침’ 등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둘째 날 아침, 와지엥키공원에서 시내 투어를 시작했다. 겨울이라 풍경은 회갈색이었지만 끝없이 펼쳐진 숲길과 호수에서 공작과 청설모, 청둥오리가 노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1764년 폴란드의 마지막 왕으로 선출된 스타니스와브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는 호수 안에 만든 인공섬을 사들인 뒤, 섬 안에 있던 목욕시설을 보수해 여름 궁전으로 개조했다. 러시아 에카테리나 여제의 연인이었던 배경으로 왕이 되었다는 일화가 말해주듯, 그는 정사를 돌보는 것보다는 공원과 궁전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 그의 재위 31년만인 1795년 결국 폴란드는 3개 강대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다.

예로졸림스키에 대로에서 바르샤바의 최대 번화가인 신세계(노비 쉬비아트) 거리를 거쳐 구시가지까지 이어지는 4km 남짓한 ‘왕의 길’은 걷는 여행에 제격이다. 애국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 폴란드 초대 대통령 피우수트스키 등 많은 동상 중에 유독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띈다. 로날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동상이다. 연유가 궁금했다. 레이건 동상은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 타도를 고취한 공로를 기려 2011년 건립됐으며 드골 동상은 1차 대전 후 소련의 붉은 군대가 바르샤바를 침공했을 때 군사고문단으로 파견된 드골이 붉은 군대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운 것을 기려 2005년 세워졌다고 한다. 폴란드 대통령궁, 바르샤바대학교 등 유서깊은 건물들 중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곳은 20살 나이에 고국을 떠나기 전까지 쇼팽이 다녔던 성 십자 성당이다. 본당 내부 왼쪽에서 두 번째 기둥에 쇼팽이 파리에서 사망한 후 옮겨진 그의 심장이 보관돼 있다. 쇼팽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2010년 재단장한 쇼팽박물관도 가볼 만 하다. 생전에 쇼팽이 사용하던 피아노와 친필 악보 등 쇼팽의 유품에 멀티미디어 기술을 결합해 그의 시대와 음악을 재현한다.

구시가지 입구에 자리를 잡은 잠코비 광장에서는 18세기 말까지 폴란드 왕들이 거주했던 붉은 벽돌 왕궁, 1596년 스웨덴의 침략으로 당시 수도였던 크라코프의 바벨성이 파괴되자 바르샤바로 천도한 지그문트 3세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으로 85%가 파괴됐으나 과거 설계도와 전경 사진 등에 근거해 대부분을 재건했다. 구시가지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딕에서 바로크까지


▎크라코프 요한 바오르 2세의 사제관.
셋째 날, 바르샤바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20분 만에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11세기부터 16세기 말까지 500여 년간 폴란드의 수도였던 이곳은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 오스트리아 제국의 비엔나와 함께 유럽의 문화·학문 교역의 중심지였다. 독일군 사령부가 위치한 덕분에 폭격을 면해 구시가지엔 수 백 년 이상 된 건물이 수두룩하다. 1364년 카지미에쉬 왕이 설립한 야기엘론스키대학은 중부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 코페르니쿠스, 요한 바오로 2세,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등이 수학했다.

크라쿠프 시내 관광은 구시가지의 중앙시장광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14세기 처음 세워진 광장 중심의 직물길드회관은 세계 최고(最古)의 옷감 의류 전문 쇼핑센터라 할 수 있다. 높이 82m의 첨탑 두 개가 우뚝 솟은 맞은 편, 성 마리아 성당은 1288년 고딕양식으로 처음 건립되었다가 14세기에 벽돌 고딕 바실리카 양식으로 재건축됐다. 15세기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천재 건축가 비트 스트보슈가 제자들과 함께 12년에 걸쳐 제작한 높이 3m의 마리아 승천제단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천국이 지상에 도래한 듯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광장 지하에는 2010년 개관한 리네크 중앙박물관이 있다. 발굴 현장을 그대로 살린 6000㎡의 드넓은 전시장에 첨단기술을 가미해 12세기 장인들의 공방과 상점, 지하수로, 주거지 유적 등 중세의 생활과 사회상을 재현했다.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카지미에쉬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비스와강 상류 카지미에쉬 지역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에 있는 바벨 성은 크라쿠프가 수도였던 시절 5세기 동안 폴란드 통치자들의 거주지였다. 성으로 올라가는 진입로 벽에는 날짜와 사람 이름이 새겨진 벽돌들이 이어져 있다. 화재로 성이 파괴되었을 때 재건축 성금을 낸 시민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바벨성은 서기 1000년 크라쿠프의 주교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처음 건설된 이래 수 백 년 동안 증·개축을 거듭한 까닭에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 등 건축 양식이 혼재돼 있다. 성 내부는 71개의 홀이 고딕식 회랑을 따라 연결돼 있고 홀마다 갑옷, 검, 타피스트리, 대형 초상화 등 왕들의 유물과 진귀한 예술품들로 가득하다. 수세기에 걸쳐 군주들의 대관식이 거행됐던 바벨대성당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으로 떠나기 전까지 봉직했던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검사용으로 채혈한 교황의 피를 유리병에 담아 유물로 보관하고 있으며 지하에는 군주들과 성직자들의 무덤이 있다. 성당에 딸린 20개의 예배당 가운데 지기스문트 1세의 지시로 이탈리아 건축가 바르톨로뮤 베레치가 건립한 황금빛 돔형 지붕의 지기스문트 예배당이 르네상스양식의 걸작으로 꼽힌다.

관광 명소가 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소금광산의 수호 성인 킹카공주.
넷째 날, 크라쿠프에서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을 찾았다. 비엘리츠카는 크라쿠프 역사지구와 함께 1978년 유네스코가 최초로 제정한 12개의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문을 열자 좁고 가파른 나무계단이 나타났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처럼 보이지만 378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64m에 위치한 1단계 지역에 이른다. 200만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은 물이 증발하면서 총 길이 300km, 두께는 500~1500m나 되는 소금층이 형성되었다. 과거 소금은 ‘회색의 금’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했다. 한때는 왕궁 전체 수입의 3분의 1이 이 소금광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곳에선 서기 1290년부터 소금 채취가 시작돼 1996년까지 700여 년 동안 7500만t의 소금을 캐냈다.

수백 년간의 채염 과정에서 2300개의 공간과 9개 층에 걸쳐 총 길이 250km, 깊이 327m의 갱도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길이 3km, 지하 1층(64m)에서 3층(135m)까지 20여 개의 공간만 관광코스로 공개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16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소금광산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광부들이 채굴 뒤 남은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면서 다채로운 조각 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지하의 폐쇄된 공간에서 가스 폭발 같은 위험에 노출된 채 온종일 소금을 캐내야 했던 광부들의 고된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틈틈이 공간을 예배당이나, 성인과 유명인의 기념공간으로 꾸미고 암염으로 만든 수많은 조각작품을 남겼다.

1493년 코페르니쿠스의 방문을 기념해서 만든 ‘코페르니쿠스 방’, 노동자의 수호 성인을 기린 성안토니우스 예배당, 킹가 공주의 전설을 새겨놓은 ‘전설의 방’, 전설 속 난쟁이 광부들의 방, 14세기 광산법을 개정해 광부 권익 보호에 앞장섰던 카시미르 대왕과 요한 바오로 2세, 광부들의 수호신인 성녀 바르바라, 이곳을 방문했던 괴테의 조각상 등이 만들어졌다.

지하 110m 지점에 있는 소금광산의 수호신인 성녀 킹가의 이름을 딴 ‘성녀 킹가교회’는 소금광산 투어의 백미다. 길이 55m, 폭 18m, 높이 12m의 웅장한 공간에 제단과 촛대는 물론, 성서의 중요 장면들을 묘사한 부조와 기독교 성인들의 조각상, 천장의 샹들리에까지 모두 암염덩어리로 제작됐다. 전설에 따르면 13세기 헝가리 왕 베라 4세의 딸인 킹가공주가 크라쿠프의 볼레슬레브 공작에게 시집올 때 폴란드에 소금이 부족한 것을 알고 부왕에게 소금광산을 결혼 선물로 달라고 했다. 신통력을 가진 킹가공주는 폴란드로 오는 길에 선물로 받은 소금광산 깊은 골짜기에 약혼반지를 던지고는 일행이 크라쿠프 근처에 이르렀을 때 땅을 깊이 파게 하였더니 공주의 반지와 함께 암염덩어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 성당은 일반인들의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1896년에 시작해 1935년대까지 3대에 걸쳐 광부들이 성당 건설에 참여했는데 3대 광부가 1935년 20cm 두께로 조각한 ‘최후의 만찬’은 걸작으로 평가받아 나중에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출구 근처에는 기념품점이 있어 소금 입욕제, 먹는 소금, 마그네트, 화장품 등 다양한 소금 제품을 판매한다. 깊이가 9m에 소금 함유량이 32%로 사해(26%)보다도 높은 지하 호수, 암염의 치유효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호흡기 질환자들을 위한 헬스센터, 광산의 채굴 역사, 채굴 도구와 기계의 발전상을 볼 수 있는 박물관, 우체국도 있다. 다행히 지상으로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브로츠와프의 명물, 난쟁이 요정


▎브로츠와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난쟁이 요정.
닷새째, 자동차로 폴란드 남서부 실레지아 지방에 있는 네 번째로 큰 도시 브로츠와프로 이동했다. 지정학적 요충지인 이곳은 10세기경부터 상업이 발달해 일찍 도시화됐으나 여러 나라가 쟁탈전을 벌인 탓에 폴란드 땅에서 보헤미아 왕국, 프로이센(독일)의 영토가 됐다가 1945년 폴란드 품에 다시 안기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점령한 나라에 따라 도시 이름이 브로티슬라, 프레슬라브, 브레슬라우, 브로츠와프 등으로 바뀐 것처럼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다. 폴란드 최대 공업도시이기도 해 삼성, LG 같은 대기업들이 진출해 주재원 등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 학생 수 2만6000명의 브로츠와프대학이 있어서인지 거리는 젊은이들로 넘친다. 1702년 합스부르크왕가의 레오폴드 1세에 의해 설립된 브로츠와프대학은 테오도르 몸젠, 폴 에를리히, 에르빈 슈뢰딩거 등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290년 건축을 시작해 250년 만에 완성한 시청사와 대형시계, 성 엘리자베스 교회가 있는 구시가 중앙광장은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한다. 대부분 제2차 대전 당시 전쟁 포화로 파괴된 건물들을 전후에 복구한 것이다. 첨탑의 높이가 91m나 되는 성 엘리자베스 교회는 원래 128m 높이의 개신교 교회였으나 1529년 폭풍에 탑이 무너져버렸다. 이에 대해 당시 구교도였던 주민 대부분은 개신교도가 벌을 받은 것이라고 여긴 반면, 개신교도 쪽에서는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어 기적이라며 정반대 해석을 내놓았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나폴레옹에 대한 항전을 호소한 지 100주년이 되는 1913년 완공된 백주년관은 강철 콘크리트 유리로 23m 높이의 돔형 지붕을 제작하여 현대 건축기술의 선구적 건물로 평가된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가톨릭의 중심으로 수많은 교회와 성당이 모여 있는 오스트루프 툼스키(성당의 섬) 등도 가볼 만하다.


▎프로츠와프대학 내 레오폴드홀.
키 높이 50cm의 난쟁이 요정 조형물은 브로츠와프의 명물이다. 은행 앞에는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난쟁이, 대학 앞에는 사각모에 망토를 두른 난쟁이, 두 차례 큰 화재를 겪은 성 엘리자베스 성당 앞에는 2인조 소방관 난쟁이 등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곳곳에 그 장소의 특징이나 역사에 맞는 나름의 스토리를 가진 난쟁이 요정들이 배치돼 있다. 폴란드 전설에서는 난쟁이 요정들이 사람과 가까이 살면서 농사짓는 것을 돕거나 나쁜 사람을 물리쳐주는 등 고마운 존재로 등장한다. 이 조형물들은 1980년대 브로츠와프의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공산주의 반대 표식 위에 난쟁이를 그린 것이 시초다. 2005년 시당국이 조각가에 의뢰해 주요 관광지에 동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인기가 오르면서 5개에서 현재는 200여 개로 늘었다. 관광안내소에 가면 난쟁이 동상이 있는 곳을 표시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1371호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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