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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문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글로벌 R&D센터장] 호텔 조식 대신 냉동식품 먹는 만두박사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30년 간 냉동식품 연구개발 전념 … ‘비비고 왕교자’ 등 히트상품 탄생 주역

▎8일 수원 CJ블로썸파크에서 만난 강기문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글로벌 R&D센터장이 해외에서 판매 중인 ‘비비고 왕교자’를 소개하고 있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속재료에 변화를 준 것이 특징이다.
1년에 200일 가량을 해외에서 보내는 강기문(59) CJ 제일제당 식품연구소 글로벌 R&D센터장은 호텔 조식을 먹지 않는다. 벌써 10년째다. 해외 출장지에서 그의 아침식사는 언제나 냉동식품이다. 미국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세계 어딜 가든 마트에 들러 냉동식품을 먼저 본다. 식사를 하기 전 인증샷을 찍어 구성을 면밀히 살핀 후 맛을 보며 배울 점을 찾는다. 지난달 20일부터 보름 일정으로 다녀온 미국 출장에선 ‘레디밀(ready meal)’ 메뉴를 집중적으로 먹었다. 레디밀은 데우기만 하면 한 끼 식사가 되는 일종의 가정 간편식으로, 현재 미국 냉동식품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2월 8일 경기도 수원 CJ블로썸파크에서 만난 강기문 센터장은 “미국 냉동식품은 완벽한 한 끼가 되도록 메인요리와 채소·소스 등을 함께 구성한 것이 특징”이라며 “국내에서도 조만간 레디밀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센터장은 CJ제일제당 냉동식품의 살아있는 역사다. 제일제당과 일본 아지노모토의 합작회사였던 제일냉동식품 개발팀에 1988년 입사한 그의 첫 임무는 육가공 상품개발이었다. 치킨너겟이나 떡갈비·만두가 주요 생산 제품이었다. 그중에서도 강 센터장은 냉동만두에 주목했다.

“당시 만두는 집에서 손으로 빚어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냉동만두 판매량이 좀처럼 늘지 않았습니다. ‘알찬만두’ ‘새댁만두’ ‘매운만두’ 등 새로운 제품을 계속 내놨지만 결과가 영 시원치 않았어요. 그러던 중 길가에 내놓고 파는 분식집 만두가 눈에 들어왔죠.”

9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판매하던 냉동만두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강 센터장은 분식집 만두처럼 속에 당면을 넣으니 식감이 풍부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또 고기를 쪘을 때보다 구웠을 때 맛있는 냄새가 나는 점을 응용해 군만두 개발에 나섰다. 모양에도 변화를 줬다. 3개 면을 비슷한 너비로 만든 이전 만두 형태에서 벗어나 굽기 편하게 납작한 모양으로 바꿨다. 그렇게 97년 내놓은 ‘백설 군만두’는 출시 6개월 만에 매출 80억원을 올린 데 이어 한 달 평균 매출이 10억원에 달하는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냉동식품 매출 5년 만에 1500억원→4000억원


▎강기문 센터장이 지난달 다녀온 미국 출장에서 먹은 냉동식품. 먹기 전에는 항상 인증샷을 찍는다.
2000년대 들어 CJ제일제당은 한국 식문화를 세계에 알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비전을 세웠다. 나라 간 식문화 차이가 크지만 만두는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식품이었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중국의 딤섬, 미국의 브리또처럼 형태나 재료는 달라도 싸먹는 음식이라는 점은 같았다. CJ제일제당은 만두를 필두로 해외 식품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강 센터장이 2000년 처음으로 미국 현지 만두 시장 조사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이후 CJ제일제당은 미국 옴니식품을 통해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미국 만두 시장을 공략했다. 강 센터장은 2006년부터 1년여간 미국에서 근무하며 만두회사와 M&A(인수·합병)를 추진하는 동시에 현지 공장 설비 건설을 도왔다. 한편으로는 냉동식품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며 현지인의 입맛을 연구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미국에서 출시한 ‘미니완탕’이다. 일종의 물만두다. “초반에 한국 제품을 그대로 미국에서 팔았는데 반응이 없었어요. 전자레인지에 만두를 돌리니 만두피가 딱딱해지며 맛이 없어졌거든요. 전자레인지만으로 요리할 수 있는 만두를 고민하다가 홍콩 샤오롱바오가 생각났죠. 만두소에는 부추 대신 고수를,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어 현지인의 입맛에 맞췄고요.”

2012년 CJ제일제당은 냉동프로젝트팀을 신설했다. 향후 냉동식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주문이었다. 당시 CJ제일제당의 냉동식품 매출은 1500억원 남짓으로 2020년까지 40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했다. 이 목표는 당초 예상보다 3년 앞선 올해 초 이미 달성했다. 그 1등 공신은 연매출이 1600억원에 달하는 ‘비비고 왕교자’다.

2012년 냉동프로젝트팀장을 맡은 강기문 센터장은 ‘큰 만두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이전까지 국내 업체가 생산하는 냉동만두는 1개당 중량이 13.5g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일본 설비를 들여와 미국에서 생산하는 만두의 중량은 25g에 달했다. 크기는 달랐지만 만두를 먹는 방식은 같았다. 사람들은 만두를 먹을 때 두 번에 걸쳐 잘라 먹었다. “자체적으로 연구를 한 결과 만두를 먹을 때 무심코 속을 확인해보기 위해 반으로 잘라먹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13.5g 만두는 한 번에 먹는 양이 약 7g에 불과하지만 25g은 두 배가량 많이 먹을 수 있어 입안 가득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렇게 탄생한 25g 만두가 2012년 출시된 ‘소고기만두 규아상’이다. 출시 직후 시장 반응을 살피러 간 그에게 한 영업사원이 말했다. “크려면 확실히 크든가, 이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게 애매하네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기존보다 두 배 이상 커진 35g짜리 만두를 내놓자고 주장했다. 25g짜리 신제품을 내놓고 공장 설비를 갖춘 지 불과 6개월 만의 일이다.

“생산라인과 설비를 교체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만큼 확신이 있었죠. 제품이 실패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잘되는 제품은 비슷하거든요. 식품의 경우 맛있고, 새롭고,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하죠.”

25g에서 35g으로 커진 비비고 왕교자는 기존 냉동만두가 고기와 채소를 갈아서 만두소를 만든 것과 달리 각각의 재료를 칼로 큼직하게 썰어 한데 섞는다. 입자가 커진 만큼 만두소가 통과하는 노즐 크기나 이물질을 거르는 필터 입자까지 전면 교체했다. 설비부터 생산과정까지 기존에 없던 방식을 택한 왕교자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다. CJ제일제당과 똑같은 설비를 갖춘 곳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시장 진출 앞둔 비비고 왕교자

비비고 왕교자는 지난해 말 한인마켓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한 달 만에 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가능성을 엿본 이 제품은 연내 미국 코스트코와 샘스클럽에 입점 예정이다. 이달부터 일본 코스트코에서도 판매한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말 베트남 냉동식품업체 ‘까우제’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 러시아 만두업체 ‘펠메니’를 사들였다. 중국 광저우 공장 규모를 3배로 늘리는 공사를 시작했고, 연내 베이징 인근에 신규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경쟁력 있는 글로벌 업체와의 M&A와 지속적인 R&D 투자로 2020년까지 세계 만두시장에서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강기문 센터장의 다음 출장지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식 만두인 ‘짜조’를 응용하면 유럽과 미국에 새로운 수출 활로를 마련할 것으로 내다본다. 고기 대신 감자가 들어간 폴란드식 만두 ‘피에로기’를 한국식 만두와 결합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강 센터장은 “아직 못 먹어본 만두가 더 많다”며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음식인 만큼 기회도 많지 않겠느냐”고 했다.

1372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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