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삼성 미전실 해체 그 후] R&D 인력 채용 50% 감축설 ... 뒤숭숭한 바이오 계열사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전문가들 “중장기 사업 차질 우려” vs “악재보다 호재 많아 비관은 금물”

▎인천 송도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위한 세포 배양 실험을 하고 있다. / 사진: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삼성이 3월 1일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하면서 바이오 부문 계열사의 일자리 창출과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본지 1375호 커버스토리 참조)에 각 계열사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 부문이 삼성전자처럼 완비된 체제를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인 만큼, “미전실 해체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의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에서는 신규 사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3월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의 바이오 부문 계열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는 최근 연구·개발(R&D) 인력을 당초 계획보다 50% 줄여서 채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애초 80여 명을 채용하기로 내부적으로 확정, 서류 심사부터 면접시험까지 모든 전형을 마쳤다가 막판에 40여 명만 최종적으로 채용했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내부 사정을 아는 업계 한 관계자는 “총수(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다 미전실 해체 계획까지 전해지면서 경영진이 대규모 신규 채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일자리 창출과 사업에 차질 없을 것”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다. 가장 최근에 채용이 끝난 쪽은 박사급 R&D 인력으로 수시 채용”이라며 “40여 명의 석사와 학사급 채용이 완료된 것은 그 이전 일이라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삼성그룹 공채와는 별개의 채용 공고를 냈다. 두 달여간 각종 전형을 거쳐 올 2월 말 생물·의약학, 생명·화학공학, 수의학 전공자 등 박사급 R&D 인력을 충원했다.

인천 송도에 본사를, 수원에 전자소재연구단지를 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회사 규모를 키우고 R&D에 박차를 가해 단기간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대규모 채용 계획에서부터 이런 움직임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올 초 삼성바이오에피스 측은 “올 한 해 200여 명을 채용할 것”이라며 “인재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현재 임직원 수는 약 600명. 2012년 회사 설립 당시 약 100명에서 5년 만에 인력 규모를 여섯 배로 키울 만큼 신사업 확장에 적극적이었다. 그룹 측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을 했다.

삼성은 지난 2010년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2차 전지, 태양광, 발광다이오드 등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미래 먹거리 육성에 나섰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신약의 R&D를 담당, 삼성의 바이오 사업 육성 계획을 최전방에서 수행하는 기업이다. 최근 들어서는 바이오시밀러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등 그룹 측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표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매출은 1475억원으로 전년 대비 517% 증가했다.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쓰이는 바이오시밀러 ‘베네팔리’로만 유럽 등지에서 11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비록 영업손실이 1002억원이었지만 이 역시 전년보다 600억원 이상 감소한 수치다. 올 초 유럽에서 당뇨병 치료용 바이오시밀러 ‘SB9’의 판매 허가도 받아 올해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측은 미전실이 해체됐어도 사업 진행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미전실 해체와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별도 지침이 내려온 바는 없다. R&D 센터 착공 등의 준비에도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월 277억원을 주고 사들인 4만3000㎡ 규모 송도 부지에 올 6~7월 중 R&D 센터 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총수 구속에다 미전실까지 해체되면서 직원들은 동요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창 ‘탄력이 받은’ 사업에 타격이 있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원한 내부 관계자는 “사실상 ‘아노미 상태(무질서의 혼돈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며 “어쨌든 총수가 계속 투자를 크게 해오면서 회사가 이 정도 성장한 것인데 바뀌는 체제 하에서 그게 가능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삼성은 바이오 부문에서만 지난해까지 약 4조25000억원을 조달해 바이오의약품 생산 설비 구축과 바이오시밀러 R&D에 투자해왔다.

R&D 인력 채용 규모의 50% 감축설이 나온 배경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통상 기업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부터 후순위로 미루는 경향이 강하다. 직원들은 “바이오는 고도의 전문성과 축적된 경험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며, 채용이 줄어 회사 발전이 저해될까 우려하고 있다. 최근 사내 임원들의 거취 결정이 미뤄지면서 지휘부 구성 속도가 느려진 일도 불안감을 키웠다. 미전실 해체 여파로 전무급 등 주요 임원의 예정된 승진 인사 발령이 보류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계열사별 각자 채용, 순기능도 있어”

삼성의 또 다른 바이오 부문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다. 2011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자회사로 설립된 이 회사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신약 R&D에 집중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렇게 개발된 바이오의약품의 생산을 전담한다. 글로벌 제약사의 바이오의 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일도 한다. 마찬가지로 근래까지 분위기가 좋았다. 지난해 매출 2946억원, 영업손실 304억원으로 실적이 전년(생산 부문만 집계했을 때 매출 674억원, 영업손실 431억원)보다 확연히 개선됐다. 그룹(미전실)의 든든한 조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이제부터가 문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일단 오는 6월 2000억원 규모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유상증자에 참여, 이제 막 속도를 내기 시작한 사업이 더뎌지지 않도록 추가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삼성전자와 달리, 계열사별로 자율 판단하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덜 잡힌 바이오 부문은 타격이 클 수 있다. 당분간 대주주인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라며 “오너가 아닌 이상 (전문경영인들이) 소극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인재를 채용하는 등의 과감성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올 상반기까지는 그룹 공채를 유지하고, 하반기부터 계열사별 각자 채용 체제에 돌입한다. 이 경우 지금까지처럼 미래를 본 인재 채용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그룹 공채에는 규정에 따른 제한도 적잖다. 앞으로 각 계열사에서 좀 적게 뽑을 순 있어도, 상황에 맞게 필요한 인재만 골라서 이전보다 빠르게 뽑아 육성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등 (미전실 해체가) 순기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나친 비관론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구자용 동부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시밀러 ‘휴미라’에 대한 특허 무효 소송에서 승소해 유럽에서 예상보다 빨리 출시하게 됐다”며 “악재보다 호재가 많다”고 했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이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실적을 내기 시작한 상황이며, 호재까지 더해졌기에 과도기에 적응만 잘 된다면 컨트롤타워 해체에 따른 부작용은 최소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바이오시밀러: 생물의 조직·세포 등의 유효 물질을 이용해 제조하는 약인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모방해 만든다.

1376호 (2017.03.2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