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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하는 LG전자] 구본준 부회장 이사회 의장직 물러나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조성진 부회장 차기 의장으로 … LG그룹 “삼성 행보와는 무관”

▎구본준 ㈜LG 부회장(가운데)이 올 초 경기도 이천의 LG인화원에서 열린 ‘글로벌CEO전략회의’에서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왼쪽), 하현회 ㈜LG 사장(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LG그룹 제공
구본준 ㈜LG 부회장이 LG전자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LG그룹 내부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2월 24일 이사회 결의로 의장직을 더 맡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 부회장은 2011년 LG전자 이사회에 처음 합류해 지난해 3월부터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의장직을 그만 맡더라도 이사회 등기이사로는 남아 계속 경영에 참여할 예정이다. 앞서 LG전자는 3월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정관상의 등기이사 정원을 최대 9인에서 7인으로 변경하고, 구 부회장과 정도현 LG전자 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한다고 지난 2월 공시했다.

구 부회장은 LG그룹 총수인 구본무 회장의 친동생이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의 초기 진입 타이밍을 놓쳐 한창 고전하던 2010년 10월 LG전자 대표로 취임하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자청했다. 이후 지난해 3월까지 5년 반 동안 LG전자 사업 전반을 진두지휘하면서 구 회장을 보좌했다. 지난해 3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어도 이사회 의장으로 여전히 회사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사내이사로는 재선임, 경영에는 계속 참여


3월 13일 LG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관계가 맞다. 이사회 의장의 변경은 공시 의무사항이 아니라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었다”며 “이미 공시했듯 (의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사내이사로서는 계속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구 부회장의 거취 문제와 LG전자 이사회의 향방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는 LG전자가 LG그룹의 핵심 계열사인데다, 3월 1일 삼성이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하고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에 돌입하면서 지금까지 오너 경영 위주였던 재계에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산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되기 때문이다. 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삼성의 미전실 해체와 맞물려 의미 있는 행보로 해석된다.

올 초 LG전자 이사회에서 사내이사는 구 부회장과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정도현 사장, 조준호 LG전자 사장 등 네 명이었다. 이 가운데 조준호 사장은 이사회 업무 대신 현업인 스마트폰 사업 총괄에 집중하는 차원에서 이사회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차기 의장은 조성진 부회장이 됐다. LG전자의 이사회 중심 전문경영인 체제가 한층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 LG전자는 지난해 구 부회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조성진·정도현·조준호 3인의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하면서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강화됐다.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는 이를 조성진 부회장 1인 대표 체제로 재편해 조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전문경영인 체제일 때 가능한 ‘전문성 강화’와 1인 대표일 때 가능한 ‘신속한 의사결정’,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구 부회장은 기대 속에 LG전자 대표로 취임했지만 재임 기간 널뛰기 실적으로 고전했다. LG전자의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2011년 2639억원 감소, 2012년 404억원 증가, 2013년 2488억원 감소, 2014년 3013억원 증가로 매년 개선되는가 싶으면 주저앉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015년엔 6363억원이나 감소했다(이 과정에서 구 부회장이 2013년 전장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육성하는 등,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엔 기여했다는 평도 있었다). 구 부회장이 지난해 3월을 끝으로 LG전자 대표에서 물러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LG전자는 지난해 3인의 각자대표 체제 속에 영업이익이 1조4961억원으로 전년 대비 3038억원 증가했다.

물론 이후로도 구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은 건재하다. 오히려 그룹 차원에서는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구 부회장은 지난해 12월까지 지주회사인 ㈜LG에서 그룹의 신사업 전반을 살피는 신성장사업추진단장직을 수행하는 한편, 지금껏 LG전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전문경영인을 독려하고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LG그룹은 2003년부터 지주회사 중심 체제에 안착해 있어 컨트롤타워로서 ㈜LG가 기능하고 있다. LG전자 이사회 의장을 더 맡지 않는다고 해서 구 부회장의 전반적인 영향력이 축소된다기보다는, LG전자에 한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한층 강화하되 구 부회장은 그룹 사업 전반에 관여하는 일에 더 집중할 계획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유다. 재계는 오너 4세인 구광모 ㈜LG 상무(구본무 회장의 장남)가 앞으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을 때까지 구 부회장이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가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전환하는 1년간 바통 터치를 해주는 차원에서 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았고, 이젠 LG전자보다 그룹 전반에 보다 많이 관여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말대로 LG전자의 전문경영인 체제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구 부회장이 대표직을 맡기 전에는 남용 전 부회장이 2007년 3월부터 3년 반 동안 LG전자 대표로 있었다. 그 전엔 김쌍수 전 부회장이 대표였다. 이들 모두 LG전자 평사원 출신의 전문경영인이었다. 이들은 그룹 측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도합 7년간 전자 부문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LG 측은 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삼성의 미전실 해체와는 무관한 행보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구 부회장께서 물러난 게 먼저다. 삼성 미전실 해체와 그 여파에 대해선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관심이 있는 정도일 뿐 그룹의 큰 방향성이 바뀔 일은 없다”며 “미전실처럼 비공식적인 컨트롤타워도 LG그룹 내엔 없다. 삼성과 LG는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LG는 지금과 같은 지주회사 체제에도 만족하고 있는 분위기다. “순환출자 형태의 지배구조가 아닌 것이 경영 측면에서 장점이 된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재의 지주회사 체제가 가진 장점을 살려가면서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 LG가 가진 경영 방침이다.

“사외이사 자격 요건 지금보다 완화해야”

다만 이 같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결국은 오너 경영의 소극적 형태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기업 이사회가 모든 의사결정의 중심축이라는 건 교과서적인 얘기”라며 “오너경영 중심의 국내 기업들에선 이사회가 완전히 경영상 판단을 하고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오너가 구심점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신 실장은 보완책으로 현행법상 규정된 기업의 사외이사 자격 요건을 지금보다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너경영의 단점을 보완할 만큼 전문경영인 체제가 완고하게 구축돼 돌아가려면 전문경영인 풀이 활성화돼 외부로부터 유능한 인물이 대거 유입돼야 하는데, 사외이사 자격 요건이 다른 계열사에서 몇 년 일했으면 안 되는 등 까다롭다”며 “결국 대학교수나 법조인, 관료 출신들이 사외이사가 되는데 기업 경영에 얼마나 전문성을 가졌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을 온전히 누리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라는 얘기다.

1376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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