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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으로 몰리는 아베 총리] 극우 스캔들에 사그러져 가는 아베의 꿈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장기집권·개헌 추진하던 아베 절체절명 위기 … 뿌리 깊은 극우 망령 전 세계에 각인 시켜

▎아베 신조 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극우 인사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스캔들에 휘말리면서다. 3월 초까지만 해도 아베는 경제 살리기 등으로 업적을 쌓으면서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3월 5일 치른 집권 자민당 당 대회에서 총재 임기를 현행 ‘연속 2기 6년’에서 ‘3기 9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새 당규를 결정하면서 전후 최장수 총리를 꿈꾸기도 했다. 이 결정으로 아베가 내년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 세 번째로 입후보할 길이 열렸다. 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2020년 도쿄올림픽을 치르고 이듬해 9월까지 총재로 재임할 수 있다. 자민당이 계속 집권한다면 그때까지 총리 자리가 보장된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2019년 8월이 되면, 사토 에이사쿠 총리에 이어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된다. 2019년 11월이 되면 2886일 재임으로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였던 가쓰라 다로를 넘어서게 된다. 최장 재임은 물론 ‘전쟁할 수 있는 일본’ 등 자신의 원하는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도 있다.

아베의 꿈,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아키에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가고이케 야스노리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이 일본 도쿄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국민 지지율도 높고 자민당 내 입지도 탄탄해 아베는 이런 꿈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을 전망됐다. 아베는 올해를 ‘개헌의 해’로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아베는 지난 1월 20일 국회에서 새해 시정연설을 하면서 “올해로 일본 헌법 시행 70년이라는 하나의 단락을 맞이했다”며 “앞으로 맞이할 70년이라는 새로운 단락에 어울리는 헌법이 필요한 만큼 국회의원들이 개헌안 마련에 책임을 다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 마디로 자신이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하는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을 만들 수 있도록 개헌에 동참하라는 압력이다.

이에 따라 아베가 숙원인 평화 헌법 제9조(교전 금지)를 폐지하거나 해석 변경을 통해 사실상 무력화한 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원년이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위해 올해 중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 개헌이 충분한 정도의 우호 의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한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됐다. 이를 통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미일 안보 동맹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자로서 중국에 맞서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아베의 개헌은 일본을 교전 가능 국가로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서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과 본격적으로 맞서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아베는 이날 연설에서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로 지칭했다.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는 표현은 3년째 빠졌다.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와 전략적 이익만 공유하는 나라는 협력 수준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베가 이런 표현을 한 것은 역사 문제 등으로 일본을 힐난하는 한국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의도로도 풀이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의 본산임을 자처하는 미국에 한국은 이를 함께 할 수 없는 나라라고 강조한 셈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한국에 맡기지 말고 일본에 일임해야 한다고 외치는 모양새다.

부인 아키에 스캔들로 치명타


▎극우 교육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쓰카모토 유치원 전경.
하지만 갑자기 불거진 스캔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아베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스캔들에 불을 붙인 인물은 오사카 모리토모 학원의 가고이케 야스노리 이사장이다. 가고이케는 아베의 열렬한 지지자임을 자처해 왔는데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교육자이자 학원 경영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지방정부와 수의계약을 통해 초등학교 건립에 쓸 부지로 쓰기 위해 국유지를 매입했다. 문제는 평가액의 14% 수준인 1억 3400만 엔(약 13억5800만원)의 헐값에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명백한 특혜 의혹이다. 가고이케는 곤경에 빠졌다. 누가 어떻게 관여해 특혜를 주게 됐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사건은 애초 아키에 스캔들로 시작됐다. 아키에는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를 가리킨다. 아키에는 문제의 발단이 된 초등학교의 명예 교장이기 때문이다. 헐값 매입의 배후로 아키에가 지목된 것은 물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학원이 비리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초등학교 건립 기금을 모금하면서 학교 이름을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로 붙이면서다. 가고이케 이사장과 아베 총리 부부 사이에 비리 커넥션이 있을 것이란 의심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이름에 생존 인물이자 현직 총리의 이름을 붙여 ’기념 소학교‘로 명명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아키에 여사는 지난 2014년 4월 모리토모 학원이 운영하는 쓰카모토 유치원을 방문했다가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극우 교육을 받은 원생들이 “아베 총리는 일본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다. 감동한 아키에는 이들이 추진하는 극우 초등학교의 명예 교장에 이름을 올리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 가고이케는 2월 16일 일본 국회 증언에서 “아베 총리로부터 기부금 100만 엔(약 1013만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아키에로부터 “아베 총리가 주는 기부금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이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열성 팬을 자처해 왔지만 궁지에 몰리자 아베와의 ’비밀‘을 밝히며 살 길을 찾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증언만 있지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아베 측은 “그 학원에 돈을 기부한 적 없다. 영수증 등 기록도 없다“라며 이를 강력 부인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가고이케가 이런 증언을 할 이유도 없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기부가 사실이라면 아베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특혜 의혹이다. 아베나 아키에가 모리토모 학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베가 자신의 극우 성향과 통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학원 이사장에게 기부금을 주고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만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모리토모 학원의 극우 교육이다. 이사장이 극우 성향의 사상을 갖는 것은 일본 국내법상 문제가 없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시대착오적인 극우 교육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이 학원은 심지어 유치원생들에게 노골적인 편견을 조장하는 극우 교육으로 악명이 높다.

이 유치원이 2015년 운동회에서 아이들에게 외치게 한 구호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아베 총리 힘내” “한국이 거짓 역사를 가르치지 않도록 부탁해” “센카쿠 제도, 다케시마, 북방영토를 지키자” “일본을 악당으로 취급하는 중국과 한국이 마음을 고쳐먹고 역사교과서로 거짓말을 가르치지 않도록 부탁해” “안보법제가 통과돼 다행이다. 일본 힘내” 등의 구호를 유치원생이 외쳤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학부모들에게 “한국인과 중국인은 싫다”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재일한국인과 중국인”이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유치원에서부터 극우사상과 시대착오적인 차별을 가르치는 셈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아침마다 유치원생들에게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외우게 한다는 점이다.

이 유치원은 원생 학대 및 보조금 부정수급 등의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일부 학부모가 “상시로 학대 행위 및 민족차별적 발언 등이 있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오사카부 교육청에 낸 상태다. 뿐만 아니고 유치원 교사들이 아이가 오줌을 가리지 못하면 심하게 혼을 내거나,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는 횟수를 제한하고, 아이들을 발로 차는 등 학대 행위를 수시로 벌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학부모들은 유치원 교사가 유치원 측에 불만을 제기한 학부모의 아이 도시락을 강제로 버리는 등의 행위도 발생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인권침해, 차별조장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닌 셈이다.

극우 유치원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매일 같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그토록 굳건해 보였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도 급속히 추락했다. 지난 2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8%포인트 정도 떨어졌다. NHK(8~10일) 여론조사에서는 전달보다 8%포인트가 하락한 51%였다. 아사히신문(11~12일)의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전달보다 3%포인트 떨어지면서 49%를 기록한 것이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통상 60% 전후에서 유지돼 왔다. 그런 점에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 하락은 일본 정계를 흔드는 고강도 지진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연내 중의원 해산과 총선·개헌으로 이어지는 아베의 정치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아베 총리 측근 인사 중에 모리토모 학원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아키에만이 아니다.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나다 방위상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고 한국과 중국을 강하게 공격해 ‘여자 아베’로 불리는 극우 성향의 각료다. 보수 우익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아베의 최측근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현직 방위상으로는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논란을 빚었다. 문제는 이나다가 모리토모 학원 법정 대리인을 맡았음에도 이를 부인했다가 나중에 들통 나면서 거짓말과 진상 은폐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의 관심은 가고이케 이사장과 아베 총리 사이의 특혜 연결고리 규명에 몰리고 있다. 이를 통해 아베 총리와 극우 세력과의 네트워크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고이케 이사장과 아베 총리 사이에는 극우단체 ‘일본회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회의는 평화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는 우익 단체다.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 의원 중 280명, 아베 내각의 80%가 일본회의 소속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정권 지지율이 게속 떨어지면 7월 2일의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크다. 반아베 세력이 그 여세를 몰아 공격을 계속하면 올해 가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실제로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앞으로 일본 정계에서 아베의 강력한 대항마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의 인기가 계속 높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도의회 선거에서는 고이케 지사가 이끄는 ‘도민 퍼스트회’와 공조하기로 해 아베의 힘을 뻬고 있다. 도쿄도의회 선거는 지방선거임에도 거대 인구가 거주하는 수도라는 상징성과 상대적으로 많은 무당파층 때문에 그해 열리는 전국 선거의 풍향계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09년 도의회 선거에서 무너진 자민당은 이어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도 무릎을 꿇으며 민주당(현 민진당)에 정권을 내준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중의원에서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베가 그냥 버티기에 들어갈 것이란 예상도 만만치 않다.

이번 스캔들을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 우익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게 됐다. 일본 우익의 상징적인 장소는 야스쿠니 신사로 통한다. 야스쿠니는 원래 메이지유신 이후의 보신(戊辰)전쟁·세이난(西南)전쟁·러일전쟁·제1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등의 전사자 246만6532명의 명부를 보관하며 제사 지내는 신도 사원이다. 1978년 ‘쇼와(昭和)시대 순난자’라는 적반하장 격의 이름으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인 군인·민간인 14명을 합사하면서 군국주의 상징이 됐다. 1946~48년 도쿄의 극동국제군사재판 판결로 사형된 7명과 재판·수형·병보석 중 병사한 7명이다. 전사자가 아닌 군인에 문관까지 합사한 건 이례적이다. 사망원인 기재란에 ‘법무사’라는 전례 없는 신조어를 썼다. 사형 판결을 받아 교수형으로 처형된 것을 법무로 인해 숨졌다는 황당한 표현을 쓴 것이다.

일본회의와 야스쿠니 신사


▎일본 최대 보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회원들이 2014년 야스쿠니 신사에서 열린 A급 전범 등 합사자 추도 집회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 가요를 부르고 있다.
그 14명의 면면을 알아두면 군국주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괄호 안은 사망 당시 나이) 사형자 7명 중 히로타 고키와 무토 아키라를 제외한 5명은 육군대장 출신이다. 도조 히데키(64)는 총리 재임시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총리·내무대신·육군대신·참모총장을 겸하며 군국주의를 추구했다.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훈령을 내려 무모한 전사자를 양산했다. 마쓰이이와네(70)는 난징 대학살을 자행한 중지나군 사령관으로서 학살을 저지른 부하들을 황군의 명예에 먹칠했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처벌은 하지 않은 혐의다. 전쟁 발발과 관련한 평화에 대한 죄로 A급 전범으로 기소됐으나 무죄선고를 받고 학살 관련의 B급 전범 행위로 사형이 선고됐다. 난징대학살 당시의 일본군과 중국군 희생은 아시아에서 유럽·미국 식민지 독립을 위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이타가키 세이시로(63)는 만주사변 등을 주동해 중국 침략과 미국에 대한 평화의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도이하라 겐지(64)는 특무기관 책임자로 중국에서 모략과 이간질로 만주국 건국과 중국 화북지방의 분리 공작에 앞장서며 국민당 정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기무라 헤이다로(60)에겐 육군차관 당시 개전 책임을 물었다. 버마방면군 사령관으로 영국군에 패하자 괴뢰 버마·자유인도 정부 요인과 일본대사관 직원, 부상병을 버려두고 자신만 빠져나온 것으로 악명 높다. 그 결과가 전범으로 처형되는 일이었다.

무토 아키라(56)에겐 중국 침략과 난징대학살 책임을 물었다. 도쿄전범재판(필리핀 등 다른 지역 전범재판 제외) 사형자 중 유일한 육군 중장이다. 히로타 고키(70)는 총리대신과 외상을 지낸 인물로 문관으로는 유일하게 A급 전범으로 처형당했다. 태평양전쟁에 이른 일본의 침략전쟁 정책을 기안했다.

일본의 부끄러운 자화상


▎2013년 말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서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병사한 7명은 군인 셋과 문관 넷이다. 나가노 오사미(67) 해군 원수는 요직을 역임하며 전쟁을 수행했으며 진주만 기습을 승인했다는 이유로 A급 전범으로 기소돼 재판 중 병사했다. 우메즈 요시지로(67) 육군대장은 관동군 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으며 결사항전을 주장했지만 자신은 살아남아 종전 직후 항복문서 서명을 맡았다. 종신형을 받고 복역하다 49년 1월 직장암으로 숨졌다. 고이소 구니아키(70) 육군 대장은 1942~44년 조선총독을 맡으면서 학병제도로 조선 청년을 전쟁에 끌어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총리를 지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50년 식도암으로 숨졌다. 문관으론 외상 출신으로 태평양 전쟁 중 군국주의 외교를 이끈 마쓰오카 요스케(66)가 있다. 국제연맹 탈퇴, 독일·이탈리아와 삼국동맹 결성, 일·소 중립조약 등 제2차대전으로 이어지는 일본 군국주의 외교의 중추였다. A급 전범으로 사형 판결이 기대됐으나 결핵으로 46년 6월 도코대병원에 입원했다가 병사했다. 전범 중 유일하게 영어로 자신을 변호했으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에 단 한 번 출석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인 도조 시게노리(60)는 외교관으로 태평양전쟁 개전과 종전 당시 각각 외무상을 지냈다.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교섭했으며 독일과의 연락을 맡았다. 개전을 미루고 종전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A급 전범으로 금고 20년 판결을 받고 스기다 형무소에 복역중 50년 병으로 숨졌다. 반서구파인 시라토리 도시오(62)는 일본 군부와 손잡고 강경외교에 앞장섰으며 주이탈리아대사를 지내며 삼국동맹 결성을 이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49년 후두암으로 숨졌다. 총리와 쇼와 천황 비공식 고문을 지낸 히라누마 기이치로(85)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웃나라는 물론 자기 나라인 일본까지 불행으로 이끈 군국주의의 섬뜩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력들이다.

태평양 전쟁 종전 뒤 극동군사재판에서 처형된 A급 전범들에겐 무덤이 허용되지 않았다.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양에 수장한 미국은 1948년 11월 12일 도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7명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 같은 해 12월 23일 0시1분 도쿄의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수형 집행 뒤 해가 뜨기도 전에 요코하마 화장터에서 유해를 화장했다. 유골을 분쇄해 재와 함께 비행기에 실어 태평양에 날려보냈다. 묘지를 만들어 줄 경우 자칫 추종자들이 집결해 재기와 명예회복, 심지어 보복까지 다짐하는 성지(聖地)가 될 걸 우려해서다. 하지만 군국주의자들은 집요했다. 그날 밤 몇몇 남자가 심야의 화장터에 접근했다. 전범의 변호사 한 명과 화장터 근처에 있던 절의 주지였다. 이들은 화장터 직원의 안내로 현장에 남은 7명의 남은 재와 뼛조각 일부를 긁어모았다. 인근 절에서 몰래 보관하던 재와 뼛조각은 1960년 아이치현 산가네산 꼭대기에 묻혔다. 지금은 ‘순국 칠사묘’라는 이름의 기념 묘소가 되어 있다. 전범들에게 ‘순국한 선비’란 가당찮은 어휘를 사용한 이곳은 야스쿠니 신사와 함께 군국주의자들의 성지가 돼 있다. 일본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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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9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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