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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와 의회 모두 장악한 마크롱의 시대] 식상한 좌우 정치 ‘아듀’ 마크롱식 중도 실험 시작됐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의원 ciimccp@joongang.co.kr
정부 지출 줄이며 사회보장과 고용 유연성 강화... 효과적 복지 정책 강조하며 감세 정책 펼 듯

▎사진 : 뉴시스
지난 11일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민주운동당(MoDem) 연합이 32.3%를 득표해 압승을 거뒀다. 18일 실시된 결선 투표에서도 이런 추세가 유지돼 마크롱의 앙마르슈는 전체 하원 의석 577석 가운데 390~445석을 차지하는 대승으로 프랑스 정계를 장악하게 됐다. 중도우파인 공화당계가 80~125석, 중도좌파인 사회당계는 20~40석으로 사실상 힘이 빠졌다. 이로써 프랑스 정치는 좌파 사회당과 우파 공화당이 양분했던 좌우정치의 시대가 끝나고 마크롱 대통령이 내세우는 중도정치 시대가 문을 열었다.

총선을 통해 강한 리더십을 확보한 마크롱은 공공부문과 노동시장 개혁을 중심으로 프랑스 경제의 재생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한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유럽연합(EU) 개혁과 통합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의 정치와 정책 실험은 기존의 앵글로색슨 모델에 대응하는 새로운 프랑스식 경제사회 모델의 실험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의 홀로서기로, 영국이 브렉시트로 국제사회에서 각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마크롱의 강력한 추진력과 새로운 실험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1, 2차 총선 압승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만든 신당 라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 관계자들이 11일(현지시간) 총선 개표 결과 압도적 우세를 나타내자 환호하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11일(1차 투표)과 18일(결선 투표)에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압승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확신형 정치인’이다. 자신이 앞으로 가겠다는 길이 명확하다. 마크롱은 프랑스를 살리겠다느니,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느니, 정의를 실현하겠다느니 하는 애매모호한 정치적인 수사 대신 자신이 가겠다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왔다. 불확실성이 적은 지도자라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는 대중이 가자는 방향을 따르겠다고 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갈 길을 미리 제시하고 이를 국민에게 선택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강한 지도자로서의 특성을 갖췄다. 그는 대중의 구미에 맞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거부하고 대신 덜 일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프랑스병’을 치유하는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했다.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한 달콤한 정치적인 정책이 아닌 국가라는 공동체의 미래와 국민이라는 구성원의 행복을 최대한 고려한 ‘쓴 약 처방’을 내놨다. 거짓 공약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국가 자원을 엉뚱한 데 써버린 무능하고도 부패한 좌우파 정치인에 신물이 난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마크롱이 외치는 중도정치의 핵심은 실용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최고라는 중국식 흑묘백묘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좌파정책이라는 이유로 우파 정부가 꺼렸거나 우파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좌파 정권이 멀리해왔던 정책을 가리지 않고 프랑스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채택하겠다는 것이다.

마크롱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기조는 정부지출을 줄이고 사회보장과 고용 유연성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복지 등에 정부지출을 늘려 큰 정부를 만들고 선심정책으로 지지를 확보하려던 좌파와도, 정부지출을 줄여 작은 정부를 만들고 민간 경쟁력만 강조하는 우파와도 확연히 구분된다. 중도를 지향하는 마크롱 정책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촘촘한 사회보장으로 국민의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면서 고용을 근본적으로 늘릴 수 있는 고용 유연성 확대를 동시에 주장한다. 사회보장은 좌파가 목소리를 높였던 부분이고, 고용 유연성은 과거 우파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크롱은 이 둘의 병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마크롱은 이를 실제 경제에 적용할 예정이다. 마크롱식 중도정치, 중도정책의 실험이다.

좌우파 정책 장점만 취사 선책


▎마크롱 대통령은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강력한 중도 정치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 사진 : 뉴시스
마크롱의 구체적인 정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재정지출의 대폭적인 감소다. 이를 위해 그는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개를 5년 안에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해고가 아닌 퇴직이나 사직 등 자연감소분을 충원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과도한 공공부문을 줄여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볍게 하겠다는 의도다. 프랑스의 공공부분 지출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55%로 유럽연합(EU) 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마크롱은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개를 줄임으로써 세출 600억 유로를 아끼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공공지출을 GDP 대비 55%에서 2022년까지 52%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정적자 비율도 EU가 요구하는 수준인 3% 이내로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복지 정책도 근본적으로 수술할 예정이다. 특히 실업자들에 대한 지원의 형식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이른바 ‘현금 복지’를 줄이고 일자리 재교육을 강화해 취업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현금복지에서 기회의 복지로 복지의 개념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이런 개혁이 복지를 훨씬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책임한 복지에서 책임 있는 복지, 비효율적인 복지에서 효과적인 복지로 복지정책을 진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크롱은 실업자 재교육과 새로운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녹색경제 전환에 5년간 500억 유로를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다. 녹색경제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터전으로 보고, 여기에 투자하는 것을 일자리 확보를 위한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여기에 일할 인력을 양성하는 재교육도 강화하면서 이를 실업자 재교육의 주요 정책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일자리 마련이야말로 국민에게 최고의 복지정책임을 강조하면서 이의 구체적인 실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과 심야시간 상점 영업 자율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 개혁과 통합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5월 15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마크롱은 세금을 줄이는 데도 앞장설 예정이다. 세금 감면을 기업활동 촉진을 통한 일자리 마련 확대와 국민 부담 경감이라는 양면의 칼로 활용할 방침이다. 그는 일자리 마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활동과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기존 33%인 법인세를 EU 평균인 25%로 확 낮추는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세금 부담을 줄여 기업 활동과 투자를 촉진하는 한편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아 국내 일자리를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금융 투자에 대해서는 부유세를 면제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금융상품에 투자해 투자자금 확보를 용이하도록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좌파 정부는 부자에 적대적인 정책을 취했으며 특히 금융투자 소득에 대해서는 ‘베짱이 소득’으로 여겨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왔다. 징벌적 성격인 부유세 부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기업활동과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사고방식을 전환하겠다는 게 마크롱의 의지다.

마크롱은 세금 감면을 통해 국민부담도 줄여나가기로 했다. 주택세를 감면해 전체 80%의 가구가 이를 부담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세금 축소가 거의 전국민에게 혜택이 가는 셈이다. 세금 감면이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고용 유연성 확보는 마크롱이 사활을 거는 정책이다. 그는 고용 유연성이 고용 안정성을 해친다는 기존 좌파의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고용 유연성 강화가 해고를 쉽게 해 대량해고 사태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기우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고용 유연성이 떨어지면 기업이 고용을 꺼리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강화하는 것이 일자리 확대를 위한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리고 고용 조건과 업무 시간 등 고용과 관련한 사안의 결정권을 정부가 아닌 개별 기업에 돌려주는 과감한 정책을 펼 예정이다. 이를 시행하면 현재 전국적으로 일률 규정된 일요일이나 심야시간대 백화점 등 영업시간을 개별 기업이나 사업장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법적으로 정해진 주 35시간 근무 요건만 맞추면 나머지는 직장이나 사업장 내에서 노사합의를 통해 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파리 샹젤리제 등 관광지의 백화점이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열 수 있으며 관광객이 많은 일요일 영업도 가능해진다. 쇼핑객이 많은 일요일 엉업시간을 연장하기도 수월해진다. 지금까지 프랑스를 찾는 관광객들은 저녁 시간대나 일요일에 백화점 등이 문을 닫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해 왔는데 이를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정책이 단순히 경영주는 배를 불리고 근로자 업무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끌어올리는 작은 견인차 노릇을 할 것이라는 게 마크롱의 생각이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정부간섭 배제와 노사 자율, 사업장별 사정에 따른 유연한 적용이 정책의 핵심이다.

이 정책은 마크롱이 경제장관 시절 입안했지만 당시 자신이 소속했던 좌파 사회당 정부와 의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우파인 공화당도 유권자의 눈치만 보다가 제대로 밀어주지 못했다. 이때의 좌절은 마크롱이 새로운 중도 정당을 만들어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열망에 불을 붙였다. 적절한 시간에 최상의 경제 활력을 줄 수 있도록 법을 바꾸는 마크롱식 노동개혁은 프랑스의 근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수술에 비견된다. 여기에 마크롱 정책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노동개혁이 마크롱의 ‘1호 정책’인 이유다.

이데올로기적 경계는 따로 없다

마크롱은 프랑스의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사회안전망 강화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마크롱식 중도 정치의 핵심 중 하나다. 기존 좌파는 복지를, 우파는 경쟁력 강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면서 다른 부문은 도외시하기 일쑤였다. 마크롱은 이를 자신의 주장과 이데올로기에 경도돼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정치적인 단견이라고 지적해왔다.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원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경계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경쟁력도 강화하고 복지도 효율적으로 전개되는 치밀한 국민 중심의 정치와 행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마크롱의 생각이다. 좌우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치적인 행동보다 좌우를 아우르고 좌우를 ‘퓨전하며 크로스오버하는’ 큰 정치의 그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마크롱이 추구하는 사회안전망 강화는 단순히 빈곤층에게 현금 복지만 강화해 ‘국가가 먹여살려주는’ 기존의 좌파식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 프랑스에 살면서 생활하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다양한 상황에 처해서도 최악으로는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완충기능을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실업급여 지급 대상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기존의 실업 급여는 임금노동자로 일하다 해고 등을 통해 타의로 직장을 잃었을 때 새 직장을 얻을 때까지 수입을 보전하는 게 핵심 목표였다. 지급 대상과 방식도 이런 목표에 맞춰졌다. 하지만 마크롱은 실업급여를 스스로 일을 그만둔 기업가, 농민, 자영업자 등에게도 지급하기로 했다. 기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도 재도전할 때까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자영업자도 사업이 일시적으로 실패하거나 업종을 바꾸는 기간 동안 실업급여를 받으며 안정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직장 일이 맞지 않거나 사정이 생겨 스스로 사직한 사람도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실업급여를 지원하기로 했다. 임금 노동자의 실업뿐 아니라 수입이 없는 모든 국민을 지원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마크롱식 중도정치의 인간미 넘치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파로부터 국가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지적을 받았던 퇴직연금과 퇴직연령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늘고 있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온정적인’ 정책을 펴기로 한 것이다. 개혁도 필요하고 경쟁력 강화도 절실하지만 노인이나 수입이 없는 사람을 비롯한 힘없는 국민에 대해선 아낌없이 배려하는 것이 마크롱식 중도정치의 핵심이다.

1389호 (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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