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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인문학의 바다를 끓이려 하지 마라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장

이른바 ‘고전’은 누구나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읽지는 않은 책일 경우가 많다. 또 200여권 내외라고 일컬어지는 인류 문명의 고전을 접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정작 읽으려 들면 분량도 많을뿐더러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다. 철학·문학·역사 등 다방면에 걸친 기초 지식이 대부분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았더라도 교양으로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헤겔의 정신현상학, 다윈의 종의 기원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모두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전공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은 가깝고도 멀다.

사회적 분업은 학문도 마찬가지이고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 분야의 전공자로 깊은 지식을 쌓은 경우도 다른 분야는 물론 인접 분야의 지식은 한계가 있다. 인문학 전공자들도 해당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는 일반인의 교양 수준에 미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업적 연구자의 특성상 자기 분야를 깊이 파고들기에도 시간은 충분치 않고, 일반 직업인처럼 일을 통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여지도 적기 때문이다.

또한 21세기에는 인문학 전반에 걸쳐 깊이 이해하고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는 불가능할 만큼 지식이 방대하다. 예컨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가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그리스 철학과 중세신학이 주류이던 당시 영국의 고루한 지식인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이해하는 능력의 가치를 통찰한 근대적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베이컨이 평생을 통해 익히려 했던 ‘아는 것’의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의미했고, 이는 당시 존재했던 지식의 양이 그만큼 적었음을 의미한다. 중세시대 유럽의 대표적인 도서관이었던 스위스 장크르-갈렌의 베네딕트 수도원 도서관의 9세기 후반 총 소장서적은 500권 정도였다. 인쇄본 서적이 등장하기 이전 15세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했다는 캔터베리 대성당의 도서관 장서가 2000권이었고, 케임브리지대 도서관도 300권에 불과했다. 서양 최대의 도서관들이 가진 장서가 지금 기준으로 놀라울 만큼 적은 이유는 비싼 책값 때문이다. 2000페이지 성경 1권 제작에 필요한 수도사 1명의 인건비와 양피지 가격을 지금 가치로 환산해보면 대략 2억원 이상이었으니 귀족이라도 성경 1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명예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책을 구경하기도 어려우니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였던 시대다. 지금은 PC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연결해 사실상 전 세계의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다만, 특정 개인이나 조직이 지식 전체를 습득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20세기를 대표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2016년 2월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철학·미학·역사학·문학 등 다방면으로 넘나들었던 천재이지만 오늘날 축적된 지식의 극히 일부만을 섭렵할 수 있었다.

대중교육의 확대와 정보화 혁명의 전개에 따른 지식의 확산으로 자연히 인문학을 비롯한 특정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인의 지식 격차도 큰 폭으로 축소됐다. 일반인들이 오랫동안 특정 분야를 접해온 인문학 전문가들의 독서량과 깊이를 따라가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인문학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요즘에는 일반 직업인 중에서 전문 연구가를 능가하는 깊이와 통찰을 지닌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인문적 교양 차원의 지식을 추구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원전을 접하면 바람직하겠지만 굳이 원전을 고집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안내자로 역할하는 각 분야의 역량있는 전공자들이 펴내는 다양한 콘텐트를 적절히 소화하는 것으로 1차적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다만 해석자이자 안내자인 전공자들 역시 각자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일정 수준 지식이 축적되고 전후맥락을 이해하기 전에 특정 관점에 매몰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바닷물을 끓이려 하지 마라’는 경구가 있다. ‘해답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대략적 범위와 정확한 수치가 필요한 경우를 구분하라’ ‘모든 자료를 찾고 결론을 내리려 하면 어떤 결론도 나지 않는다’ ‘자료의 중요성과 현실적 기대 수준을 먼저 설정하라’ 등의 의미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며 범위도 넓고 축적된 콘텐트도 많은 인문학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광대한 바다와 같은 인문학을 넓고 깊게 접근하는 것은 평생을 책만 보는 전공자도 불가능한데 하물며 인문적 소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일반인에게는 어불성설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에는 바닷물이라도 끓여 보겠다는 설익은 의욕을 무기 삼아 달려들겠지만 직업을 가진 30~40대 입장에서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일반인의 인문학에 대한 접근은 바닷물을 끓이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필요하고 흥미로운 분야를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자신의 삶에서 실용·교양·취미 등 인문학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흥미를 느끼고 접근하기 쉬운 영역에서 가까이 접하면 된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아무리 인문학을 교양으로서 접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쳐도 어차피 모든 영역을 좋아하기는 어렵다. 철학·역사·문화·예술 등의 분야를 섭렵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은 전문가의 영역에서도 사실상 불가능한 경지이다. 따라서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접하다 보면 주변적 영역으로 관심이 확장되고 부분적 지식이 연결되고 통합되면서 자신의 관점이 생겨나게 된다.

필자는 인문학을 주로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접한다. 취미로 역사를 대하며 생각을 정리해 체계를 잡을 수 있었고, 당대의 문화·예술·세계관에도 일정한 관심이 생겨 자연스럽게 지식이 인접 분야로 확장됐다. 또 역사를 그 자체로 읽고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역시 핵심은 역사를 통한 인간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의 기반은 개인적 삶과 사회생활을 통한 경험이다. 성인이 되어 직업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고 업무를 처리하며 생겨난 경험이 역사를 통해 얻은 지식과 만나 숙성되면서 이해의 폭이 확장됐다고 느낀다. 현실적 경험이 없이 책만 읽었다면 그나마 접한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적 지식이 갈무리되지 않아 깨달음의 폭은 매우 좁았을 것이다. 추상적 지식은 현실의 경험과 만나 숙성될 때 실질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점은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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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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