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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도사쿠 기성처럼 인정받는 리더가 되길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역사상 최초의 기성으로 평가... 바둑에 대한 색대른 패러다임 제시

▎역사상 최초의 기성(棋聖)으로 불린 도사쿠(道策) 명인의 초상.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경영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반상경영을 하는 바둑 고수들도 각자 독특한 바둑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것을 흔히 ‘기풍(棋風)’이라고 한다. 기풍은 바둑판의 판세를 운영하는 능력과 특별한 기술력, 기사의 바둑에 관한 철학이 함축된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기성(棋聖)으로 불린 도사쿠(道策) 명인의 경영스타일을 알아보기로 한다.

누구도 도전 못한 출중한 실력: 도사쿠 명인은 1600년대 후반에 일본의 바둑명가 혼인보가의 수장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명인기소(名人碁所)’라는 바둑관직을 놓고 4대 문파가 경쟁을 벌였다. 말하자면 무협지에 나오는 소림파·무당파 등과 같은 도장이 각축을 벌이듯 바둑계 4대 가문이 치열한 경쟁을 한 것이다. 바둑계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때로는 다른 문파에서 도전을 하기도 하고 명인을 끌어내리려는 암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사쿠 명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명인에게 도전장을 던져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없었다. 그 이유는 도사쿠의 기량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이다. 도사쿠에게 도전해서 이길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나 도사쿠 명인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사쿠는 훗날 기성(棋聖)으로 불렸다. 악성 베토벤에 비견되는 바둑계 최고의 영광스런 칭호다. 역사상 세 명의 기성이 있는데 맨 먼저 기성 칭호를 얻은 인물이 도사쿠다. 다른 두 사람은 슈사쿠와 우칭위안이다. 이들이 수많은 고수를 제치고 바둑의 신으로 통하게 된 것은 바둑 분야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타계한 중국 출신 우칭위안 9단 이후 기성으로 추앙되는 인물은 없다. 하지만 추대한다면 한국의 이창호 9단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바둑은 전쟁의 기예 아닌 능률성 겨루는 경기: 도사쿠 명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둑실력 덕분에 그의 지위에 관한 잡음을 잠재울 수 있었다. 기업이나 단체의 리더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리더십에 관한 주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변치 않은 능력으로 지휘하는 입장에 있을 경우 다른 경쟁자의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사쿠 기성은 어떻게 해서 발군의 바둑실력을 갖게 되었을까. 가장 큰 비결은 바둑에 대한 그의 색다른 패러다임을 꼽을 수 있다. 도사쿠는 바둑에 관하여 기존의 다른 기사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졌다. 당시 대부분의 기사들은 바둑을 ‘전쟁의 기예’로 간주해 싸우는 기술을 주로 연구했다. 그러나 도사쿠는 바둑이란 ‘능률성’을 겨루는 경기라고 보았다. 경제적인 사고를 해서 바둑 돌을 능률적으로 사용해서 이기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런 생각은 당시로서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이것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채택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테일러는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로 주먹구구식 공장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의 임금도 높여주는 방법을 도입하게 됐다. 바둑 고수들이 각자 바둑관을 갖고 있듯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나름대로의 경영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사업이란 운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경영자가 있을 것이다. 또한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력이 결합될 때 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인맥관계를 잘 이용해 유리한 사업권을 따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보는 기업가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영관이 사업기획이나 실제 경영에 제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무슬림의 여성관이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는 것과 같다. 경영에 관한 이와 같은 패러다임에 혁신을 가져올 때 새로운 능력을 가질 수가 있다. 도사쿠의 바둑을 통해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환을 하나 들어본다.

[1도]는 도사쿠 명인이 아마추어와 둔 넉점 접바둑이다. 접바둑에서는 통상적으로 상수가 복잡한 전투로 이끌어 하수의 대마를 잡으려는 전법을 쓴다. 말하자면 힘으로 하수를 괴롭히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도사쿠는 백1에 붙이고 3에 붙여 돌의 능률성을 표방하는 방법을 썼다. 상대방 돌보다 내 돌의 효율성을 살리는 전략을 쓴 것이다. [2도]에서 보듯 도사쿠의 이런 능률 중심 전략의 극치는 이후의 진행에서 상대가 흑1로 끊었을 때다. 하수가 이렇게 전투를 걸어오면 상수는 얼싸 좋다 하면서 백7에 뻗어 싸움을 환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도사쿠는 백2에 두어 자기 돌을 버리는 작전을 구사했다. 흑9까지 상변의 백돌 여러 점을 주고 대신 백10까지 좌변에 커다란 집을 확보하는 빅딜전략을 썼다. 자신보다 실력이 약한 하수에게 이처럼 거래하듯 일부를 떼어주고 능률성으로 승부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당시에는 ‘바둑은 전투’라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시대였지 않은가. 이는 경영이란 경쟁자를 꺾고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으로 보는 분위기에서 윈윈의 상생전략을 생각한 것과 같다. 도사쿠 명인의 시대를 앞지른 사고방식이 뛰어난 기술력의 원천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도사쿠는 자신의 바둑경영 패러다임을 시합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또한 바둑수의 선악을 판별하는 ‘수나누기’라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것은 새로운 정석 같은 것이 나왔을 때 흑과 백 중 어느 쪽에 유리한지를 판단하는 특별한 기술이다. [3도]에서처럼 위쪽에 백1에서 흑16까지로 된 모양이 나왔다고 하자. 이런 모양이 나오면 기사들은 누가 유리한지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비유하자면 A회사와 비슷한 제품을 B회사가 만들었는데 어느 것이 좋은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판단을 하기 위해 도사쿠는 아래쪽과 같은 정석형과 비교하는 ‘수나누기’ 기법을 개발했다. 이 정석과 비교해 보면 위쪽의 모양은 흑이 약간 유리하다.

도사쿠 바둑경영의 응용: 뛰어난 능력으로 만인에게 인정을 받으며 ‘기성’이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얻은 도사쿠 명인의 바둑경영을 살펴보았다. 도사쿠의 사례는 비즈니스에도 교훈을 준다. 첫째 경영자라면 부하직원들이 인정할 수 있는 강점을 적어도 하나는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회사의 사장은 제품에 관한 전문성이나 경영능력에서 뛰어난 면이 있어야 한다. 또는 대인관계나 인간적인 면에서 탁월한 면이 있는 것도 좋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사업 분야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빨리 습득하는 능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아무런 강점이 없이 부하들을 부리려 한다면 무능한 리더라는 평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둘째 리더는 현재의 경영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기보다 그것을 넘어서는 창의적 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방식이나 틀에 얽매여 있다면 획기적으로 발전하기는 힘들다. 서점에서커피를 마시고, 카페에서 책을 읽고 바둑을 두는 방식 등 참신한 사고를 해야 한다. 리더가 참신한 생각을 보여줄 때 추종자들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셋째 리더가 자신만의 경영기법이나 노하우를 담은 격언이나 매뉴얼을 개발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97호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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