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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 (15)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잘 만든 의자는 시대를 초월한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덴마크를 대표하는 명품 … 북유럽 디자인 열풍 타고 사상 최고 매출액 기록

‘헤이(Hej)’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에서 모두 통하는 인사말이다. 철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하나다. 북유럽 4개국은 비슷한 언어만큼이나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재빨리 침체를 벗어난 점도 닮았다. 위기 극복의 저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 나왔다. 각국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출신 ‘히든챔피언’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시장을 휘젓는 북유럽의 숨은 강자들을 소개한다.


▎Swan™ / 사진:Republic of Fritz Hansen™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튼튼한 의자를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모님께 빨간 속옷을 선물하거나 친구들에게 거하게 한턱 내는 데 돈을 쓰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일본 인테리어 전문가 오자와 료스케는 저서 [덴마크 사람은 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의자를 사는 것은) 마치 이상적인 파트너를 찾는 것과 같다. 돈과 수고를 들여서 가구를 선택하고, 그렇게 엄선한 가구를 자신의 아이나 손주 세대에게까지 몇 십년이고 남길 수 있도록 소중히 다룬다.’ 단순히 의자 하나가 아니라 소중한 장소를 채우는 평생의 동반자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 때문일까. 덴마크 디자인을 대표하는 가구 중에는 유독 의자가 많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덴마크 디자인전’에서도 대부분의 공간을 채운 것은 의자였다.


덴마크 디자인을 대표하는 것이 의자라면, 덴마크 의자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프리츠 한센(Fritz Hansen)’을 꼽을 수 있다. 덴마크 디자인을 넘어 북유럽 디자인을 관통하는 기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회사가 자사를 ‘프리츠 한센 공화국(Republic of Fritz Hansen)’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소비자가 일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드는 프리츠 한센은 가구계의 명품으로 통한다. 디자인 체어 하나에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그러나 프리츠 한센이 명품인 이유는 비싼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가구에 깃든 역사와 장인정신, 품질이 밑바탕이 됐다. 프리츠 한센 공화국의 역사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급스러움 넘어 혁신의 상징으로


▎1930년 프리츠 한센 공장 풍경. ‘스완 체어’를 제작하고 있는 아르네 야콥센(오른쪽). / 사진:Republic of Fritz Hansen™
덴마크 남부 낙스코브에서 캐비넷을 제작하던 목수 프리츠 한센은 1872년 수도인 코펜하겐 중심가에 공장을 연다. 프리츠는 아들 크리스티안과 함께 고품질의 가구를 생산하는 데 집중했다. 이런 사실이 입소문을 타자 명망있는 가문들을 중심으로 주문이 밀려들었고, 이는 프리츠 한센 브랜드의 명성을 쌓는 데 일조했다. 고위층 사이에서 상당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게 된 프리츠 한센의 가구는 덴마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크리스티안스보르성을 가득 채우는 역할을 했다. 크리스티안스보르성은 지금까지도 덴마크 의회 의사당과 총리 관저,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밖에 코펜하겐 시청사, 대법원, 코펜하겐대학 도서관 등 상징적인 건물에는 모두 프리츠 한센 가구가 들어갔다.

프리츠 한센 가구가 고급스러움을 넘어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난 계기는 1930년대, 아들 크리스티안 한센이 너도밤나무 목재를 구부리는 실험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에 획기적인 시도로, 프리츠 한센은 지금까지도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카레 클린트가 디자인을 맡아 이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제작했다. 1936년 선보인 ‘처치 체어’다. 이후 2004년까지 70여년 간 프리츠 한센 컬렉션으로 꾸준히 팔렸다. 의자 다리의 자연스러운 굴곡이 포인트인 이 제품은 지금까지도 북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꼽힌다. 목재를 구부리는 기술은 더욱 발전해 프리츠 한센이 라미네이트 목재 가구를 만들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프리츠 한센은 철제 캐비넷 제작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에서는 처음으로 철제 가구를 생산하는 등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40년대는 프리츠 한센에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전쟁통에 미처 베지 못한 광활한 월넛나무숲이 덴마크의 극심한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프리츠 한센은 죽은 나무를 헐값에 모두 사들였다. 이로 인해 차익을 남길 뿐 아니라 월넛을 주재료로 한 새로운 시리즈의 가구를 선보였다. 건축가 한스 베그너가 1943년 디자인한 ‘차이니즈 체어’가 대표적이다. 베그너는 전쟁 후 어려워진 살림살이를 생각해 소형 아파트에 어울리는 저렴한 가구를 디자인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특히 목제가구 디자인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나무 본연의 아름다움을 살린 의자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해 대중의 관심을 받은 프리츠 한센은 고객층을 넓히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앞서 카레 클린트, 한스 베그너와 같은 내로라하는 디자이너가 프리츠 한센 디자인에 참여했다. 프리츠 한센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품 디자인 대부분이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가구 생산을 넘어 디자인 회사를 지향하는 프리츠 한센에는 여전히 디자인 부서가 없다. 내부 소속 디자이너를 두지 않는 대신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다. 외부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프리츠 한센의 디자인 철학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영감을 얻어야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현재 프리츠 한센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이다. 아욘은 2011년부터 프리츠 한센과 협업하고 있다. 그가 디자인을 손으로 그리고 색칠해 회사에 전달하면 스케치가 컴퓨터와 3D 프린터를 통해 재탄생된다. 그렇게 처음 선보인 ‘파븐 소파’와 2013년 출시한 ‘로 체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어 ‘아날로그 테이블’ ‘프리 체어’ 등 끊임없이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지난해 론칭한 액세서리 라인 ‘오브젝트’도 하이메 아욘이 참여한 작품이다.

디자인 부서 두지 않고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


▎올해 선보인 ‘시리즈 세븐’은 트렌드를 반영해 의자 다리에 브론즈 소재를 사용했다. / 사진:Republic of Fritz Hansen™
프리츠 한센의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덴마크 디자인의 거장으로 불리는 아르네 야콥센 역시 20년 넘게 프리츠 한센과 협업했지만 한번도 회사에 소속된 적은 없다. 그는 건축과 조경, 텍스타일, 가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 한계치를 실험해 가구 제작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1952년 출시한 ‘앤트 체어’다. 개미를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무늬목을 구부리는 스팀 밴드 비니어 기술로 제작됐다. 그는 세계 최초로 합판을 이용해 등받이와 좌판이 하나로 이어진 일체형 의자를 만들었다. 원목가구의 단점으로 꼽힌 무게를 줄인 대신 4개가 아닌 3개의 다리를 이용한 인체 공학적 설계를 통해 편안한 의자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모조품이 많은 의자로 꼽힐 만큼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앤트 체어’는 1950년대 가구로는 획기적인 디자인이었지만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야콥센은 단점을 보완해 프리츠 한센의 스테디셀러인 ‘시리즈 세븐’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1955년 생산을 시작한 ‘시리즈 세븐’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900만개 이상 판매됐다.

야콥센은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였는데, 코펜하겐 중심가의 고급 호텔인 SAS로얄호텔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진정한 건축가는 건물 안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건물 외형은 물론 내부에 들어가는 가구와 조명·조경까지 직접 담당했다. SAS로얄호텔도 예외는 아니어서 직접 이 호텔을 위한 의자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에그 체어’와 ‘스완 체어’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제품은 처음에는 로얄호텔을 위해서만 제작됐지만 이후 프리츠 한센에서 생산해 일반 고객이 살 수 있도록 했다. 야콥센은 프리츠 한센에서 100여개의 제품을 제작했는데 이 중 5~6개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남았다. 야콥 홀름 프리츠 한센 대표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전곡을 들으려면 240시간이 필요하지만 그중 대중에게 알려진 음악은 2시간이 채 안 된다”며 “그러나 그 모든 시도가 있었기에 영원히 남는 클래식 음악이 탄생했듯 우리도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울 키에르홀름 역시 프리츠 한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자이너다. 그는 처음에 프리츠 한센에 소속된 디자이너였지만 경쟁자로 여긴 아르네 야콥센이 회사와 협업을 통해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회사를 나갔다. 이 때문에 그가 소속 디자이너로 일하며 디자인한 제품은 ‘PK22’ 모델뿐이다. PK22 체어는 프리츠 한센 역사상 디자인이 가장 뛰어난 의자로 꼽힌다. 아르네 야콥센이 나무 소재에 관심이 많았다면 그는 스틸 소재를 쓰는 데 능했다. 스틸로 곡선과 직선을 만들어 균형을 맞추고 가죽을 덧입혀 탄생한 의자가 바로 PK22다. 이 제품은 현재 프리츠 한센을 이끄는 야콥 홀름 대표가 30년 넘게 애용하는 가구로 손꼽은 모델이기도 하다. 홀름 대표는 “1980년대 초반, 대학생이 되어 독립해 처음으로 산 가구”라고 소개했다. 다른 친구들이 저렴한 침대나 거실장·식탁을 살 돈으로 그는 값비싼 의자 두 점을 사는 데 탕진한 것이다. 그는 “한동안은 텅 빈 집에서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야 했지만 그 가치는 충분했다”고 말했다. “나에게 PK22 의자는 가족앨범과 같은 존재다. 아이들이 어릴 때 흘린 우유 얼룩이 그대로고, 강아지가 코너를 물어뜯기도 했지만 그 모든 흔적이 내가 살아온 세월을 보여준다. 삶의 일부와 같은 가구, 그게 바로 프리츠 한센이다.”

프리츠 한센의 가구는 매 시즌 유행하는 컬러나 재질로 변화를 주긴 하지만 형태나 생산방식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과거에 비해 주문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수작업을 고집한다. 모든 가구는 로봇이 아닌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든다. 이 때문에 제품 주문 후 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건 예사다. 패션은 물론 인테리어·가구시장에서도 SPA(유통·제조 일괄형) 브랜드가 대세인 점을 감안하면 프리츠 한센의 행보는 역주행에 가깝다. 홀름 대표는 이에 대해 “중고시장에서 수십 년 된 프리츠 한센 제품을 사더라도 그 가치를 느끼고, 오래 쓸 수 있도록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디자인 출시에 10년 이상 걸려


▎1958년 문을 연 코펜하겐 SAS로얄호텔 레스토랑. 아르네 야콥센은 이 호텔만을 위해 ‘드롭 체어’를 한정 제작했다(왼쪽). 프리츠 한센과 협업하는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 사진:Republic of Fritz Hansen™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는 데도 10년 이상의 준비 과정을 거친다. 때로는 출시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디자인이 50~60년 후에 트렌드를 선도하기도 한다. 아르네 야콥센이 1958년 코펜하겐 SAS로얄호텔을 위해 한정판으로 제작한 ‘드롭 체어’는 당시에는 대중화하기 어려운 디자인이라고 판단해 대량생산하지 않았다. 2014년에서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 출시됐고, 이후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다. 홀름 대표는 “장인들이 좋은 재료로 만든 최고의 제품은 ‘시대를 초월한(timeless)’ 아름다움을 지닌다”며 “제품 라인이 한번 출시되면 대개 수십 년 간 꾸준히 팔리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프리츠 한센의 지난해 매출은 6억200만 덴마크 크로네(DKK)로, 약 105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8%가량 성장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1억2500만 크로네(약 220억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145년 역사상 최대 규모다. 본국인 덴마크 내수시장에서는 전년 대비 7% 성장률을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해외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진출한 29개국 가운데 특히 미국과 아시아 국가의 매출 성장세가 두드러져 각각 20%, 31% 늘었다.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에서 ‘북유럽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다. 이에 힘입어 프리츠 한센은 2018년까지 매출 7억 5000만 크로네(약 1316억원)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프리츠 한센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10여년 전 일이지만 최근 북유럽 열풍을 타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난해 국내 매출 규모는 100억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6배가량 늘었다. 올 들어서는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지역 매출 1위(1~3월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프리츠 한센 스토어 서울이 문을 열기도 했다. 프리츠 한센은 세계 어디든 매장을 오픈할 때마다 본사 방침을 철저히 따르기로 유명하다.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제품 구성과 매장 디스플레이, 비주얼 세팅, 쇼룸이 오픈할 장소 선정까지 본사가 담당한다. 쇼룸이 곧 덴마크의 디자인과 문화를 알리는 교두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프리츠 한센의 신념이다. 국내에서는 아시아에서 인기가 많은 ‘에그체어’를 비롯해 베스트 셀러인 ‘시리즈 세븐’, 끝으로 모아지는 알루미늄 다리가 특징인 ‘테이블 시리즈’ 등이 널리 알려지며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프리츠 한센은 창립 당시 가구제조업체에 그쳤지만 이제는 가구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하며 리테일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가구 외에 조명과 디자인 소품 라인도 두고 있다. 홀름 대표는 “퍼니싱 기업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는 가구 회사가 아닌 디자인 회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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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호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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