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장
인간과 도구, 대결과 협력의 역사

지구에 출현한 호모사피엔스의 20만년 역사에서 2016년 3월 15일은 큰 분수령이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이 고안한 현존하는 가장 어려운 게임이라는 바둑의 인간계 최고수급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인류는 문명의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이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간과 기계가 만들어가는 미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괴물이 인간을 해친다는 프랑켄슈타인 유형의 플롯들은 인공지능과 접목돼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공상과학영화 [매트릭스] [터미네이터]와 같은 경고장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인간과 도구의 역사적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컴퓨터 역사 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 입구에는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다시 도구는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tools, and then our tools shape us)’는 글귀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20세기 후반의 캐나다 미디어 학자였던 마샬 맥루한의 통찰로 인간과 도구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도구를 ‘자동차 바퀴는 발의 확장, TV는 눈의 확장, 의복은 피부의 확장, 전자회로는 중추신경계의 확장’으로 이해해 도구를 인간 한계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원시상태의 인류는 나약한 존재였다. 힘도 약하고 빨리 뛰지도 못하는 데다 날카로운 이빨도 없었다. 그러나 30만년 전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밤, 낮과 여름, 겨울의 기온 차이를 극복해 생존율이 높아졌고, 야간에 맹수들의 습격에 대비책도 생겼다. 음식을 불에 익혀 먹으면서 식재료의 범위가 넓어졌고 거주지역도 확장됐다. 익힌 음식은 소화가 잘되기에 적은 양을 먹고도 충분했고 먹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불을 사용하기 전의 구석기인들이 채집해서 먹던 분량의 과일과 채소를 먹으려면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먹고 있어야 했다. 실제로 야생의 유인원들은 하루 종일 먹는 데 시간을 쓴다. 무엇보다 익힌 음식을 먹으면서 영양분이 풍부해지면서 창자가 짧아지고 뇌용적이 커졌고 지능이 생겨나면서 도구를 만들고 협력하는 능력이 생겨났다.

불이라는 도구를 발견해 동물과 구별되는 능력을 가지게 된 인류는 1만2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농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수렵과 채집으로 떠돌던 인류는 특정지역에 정착해 매년 일정한 식량을 생산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갔다. 500년 전의 과학혁명과 300년 전의 산업혁명은 물질적 기반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자연에 종속되던 생산의 개념을 인간 창의성의 범위로 끌어들였으며,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생산하고 가공해 일상에서 사용하게 됐다. 마지막은 100여년 전 시작된 전자정보혁명이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발전한 정보기술은 인간의 두뇌작업을 대신했고, 21세기에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간주돼온 추론과 창의성 부분까지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도구가 언제나 환영받지는 않았다. 불, 농업, 과학기술과 기계,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든 도구의 도입 과정에서 모두 일정한 갈등과 다툼이 불가피했다. 기존 질서에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도구와 기술은 피해자와 수혜자를 만들게 마련이고, 기존 질서에서 이익을 받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조직되어 있기에 다양한 형태의 적대감과 반발은 자연스럽다.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초반 자동 방직기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섬유공장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이다. 그들은 ‘기계에게 죽음을, 기계는 우리 미래와 꿈을 짓밟아’라는 구호를 외쳤다.

영국 정부는 나폴레옹과 벌인 전투 때보다 더 많은 병력을 보내 폭동을 진압했고, 100여명이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추방됐다. 이처럼 단기적으로 기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은 발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하는 기반이 됐다. 그리고 공장에서 기계가 대체하는 일자리보다 서비스업 등의 분야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면서 고용률이 높아졌다. 기계 도입 시점의 정태적 예상과는 달리 이후의 동태적 변화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지금까지 새로운 기계가 나왔을 때 이에 반대하는 자연주의적 반응이 항상 뒤따랐듯이 21세기에도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과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도구는 인간을 만든다’는 상호작용의 관점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MIT대학의 앤드류 맥카피 교수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감성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계의 협력’이라는 미래적 관점으로 전환해야 하며 기계와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앞으로 인간 능력의 핵심이 되리라는 예측은 의미심장하다. “저는 굳이 로봇과 경쟁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인간만이 가진 창의성은 기계와 만났을 때 더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계는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고, 이를 통해 참신한 전략을 짤 수 있는 인재들이 지배할 것입니다. 미래학자 케빈 켈리는 이렇게 말했어요. ‘앞으로 로봇과 얼마나 잘 협력하느냐에 따라 연봉이 달라질 것’이라고.”

2017년 5월 알파고는 바둑 세계랭킹 1위인 중국 커제 9단을 3전 전승으로 제압하면서 통산 전적 68승 1패의 기록을 남기고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동시에 치러진 AI-인간 복식전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알파고와 프로기사가 한 팀이 되어 각각 1수씩 번갈아 두는 방식에서 훨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게임이 연출됐다. 이를 통해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인간과 AI의 팀워크’가 미래의 키워드이며 AI를 IA(Intelligent Assistance, 똑똑한 보조자)로 활용하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문명 발달은 도구 발달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불에서 시작해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한 소재와 부품이 정교하게 결합되면서 기능이 향상된 덕에 인간은 육체적 능력을 보완하고 자연적 제약 조건을 극복해왔다. 20세기 후반에 전개된 정보혁명으로 일상용품이 된 PC·스마트폰이라는 획기적인 도구는 정신적 능력을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인간의 역사에서 도구의 발명이 다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경로를 거쳐온 것처럼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인공지능도 인간이 발명한 도구라는 관점에서 미래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399호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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