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새만금 개발에 다시 찾아온 기회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한반도 8월 위기설이 고조됐던 8월 17일 새벽 아제르바이잔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총회에서 우리나라 새만금이 경쟁 도시 폴란드 그단스크를 누르고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개최지로 확정된 것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등 큰 뉴스에 밀렸지만, 한국으로나 새만금으로나 의미 있는 행사 유치에 틀림없다.

폴란드는 전·현직 대통령과 유럽연합(EU) 상임의장 등을 앞세워 유치전을 펼쳤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이 각국 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단스크는 바웬사 전 대통령이 자유노조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인지도 면에서 앞선 그단스크를 누른 새만금의 변신이 주목된다.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하는 만13~18세 168개국 5만여 청소년은 물론 전 세계가 새만금을 주시할 것이다.

4년마다 열리는 잼버리대회는 인종·종교·성별·민족·문화·정치 이념을 초월해 우애를 다지는 전 세계 스카우트들의 야영 축제다. 2023 새만금 잼버리는 25번째다. 한국은 1991년 강원도 고성에 이어 32년 만에 다시 대회를 치른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2023년 8월 전북 부안군 변산면 새만금 잼버리공원 9.9㎢(300만평)에서 12일 간 열린다.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국가별 남녀 스카우트 대원들은 주제 ‘너의 꿈을 그려라(Draw your Dream)’에 맞춰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전북연구원은 대회 개최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를 796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293억원, 고용창출 효과는 1054명으로 예상한다.

관건은 새만금 사업의 진척 상황이다.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인 새만금 예정지는 총 409㎢(토지 291㎢, 담수호 118㎢)에 이른다. 2010년 축조된 세계 최장 방조제(33.9㎞)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역대 정권마다 장밋빛 개발계획을 내놨지만 예산 부족, 컨트롤타워 부재 등의 문제로 차질을 빚었다. 용지 매립은 전체 예정 면적(291㎢)의 10%에 머물고,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199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가 첨단 고층 빌딩이 즐비한 경제 중심지로 탈바꿈한 것과 대조적이다. 물 반 뻘 반 상태인 잼버리 야영지가 보여주듯 매립이 시급하므로 정부는 공공 매립으로 전환을 서두르고 민간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불과 6년 후 잼버리대회가 열리는 만큼 관광레저단지 내 야영지 조성을 위한 매립과 기반시설 조성이 시급하다. 연결 교통망 구축도 긴요하다. 몇 년째 착공조차 못한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와 21년 째 표류중인 새만금 신공항 건설 문제도 결론내야 한다.

잼버리대회 유치는 전북연구원이 분석한 경제효과 외에도 여러 의미가 있다.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대회 성격상 올림픽처럼 경기장 건설이 필요 없고 자비로 참여하기 때문에 예산 부담도 적다. 미래를 짊어질 각국 청소년들에게 한류 콘텐트를 전파함은 물론 대한민국 위상을 각인시켜 얻는 부대효과는 더 크다. 새만금을 미래의 땅으로 인식시키는 한편 전북 군산, 김제, 부안 앞바다를 메워 어엿한 국토로 만든 새만금 개발 스토리는 세계 청소년들에게 도전과 개척 정신 북돋기 교재로 삼을 수 있다.

굳이 잼버리대회 유치의 파급효과를 들먹이지 않아도 새만금 사업은 그 자체로 가치가 크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토지가 확보된 상태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과 인접해 있어 우리가 어찌 하느냐에 따라 새만금을 환황해 경제권의 거점으로 삼아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먼저 해외로 나갔다가 돌아오려는 유턴기업들이 외국 못지않은 여건에서 활동할 만한 규제 프리존을 마련하자. 규제를 혁파하고, 일정기간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이익을 낼 때까지 법인세도 면제하는 산업특구를 조성하는 것이다. 고임금을 피해 중국·동남아 등지로 진출했다가 현지 여건이 예전 같지 않아 유턴하려는 기업들을 끌어오면 적잖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 국내 제조 업체가 해외에 공장을 지어 창출한 일자리가 110만개인 반면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만든 일자리는 7만개에 머물렀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우리 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세계적 흐름인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등 신기술 분야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민간이 기술혁신을 주도하게 해야 할 텐데 시범지역으로 새만금 만한 데가 없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 등을 체험하는 기술 융·복합 멀티플렉스를 이곳에 설치하면 잼버리대회를 스마트하게 치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강점인 정보통신기술(ICT)을 연계한 첨단 친환경 농업 단지도 조성하자. 여기서 중국 등 동남아 국가의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농산물과 식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통일된 한국의 농업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일부 지역을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동물복지와 윤리축산의 시범지역화 해보자. 밀집 사육 방식이 살충제 계란 파동뿐만 아니라 구제역 등 가축질병 유행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친환경 동물복지 농장이 거론되는 터다. 168개국 5만여 청소년이 열흘 넘게 숙박하며 다양한 식재료 등을 구입할 테니 농축수산식품 수요가 상당할 것이다.

5월 31일 제22회 바다의 날 행사가 전북 군산 새만금 신시도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국가 해양력을 높이고, 무너진 해운과 조선산업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새만금 사업에 대해선 청와대 정책실에서 직접 챙기겠다면서 “필요한 부분은 공공매립으로 전환해 사업속도를 올리고, 신항만과 도로 등 핵심 인프라를 빠른 시일 내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올바른 선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 4대강 개발에 쏟아 부은 22조원의 재정을 새만금 사업에 투입했더라면 지금쯤 일부 과실을 맛볼 수 있으리라.

새만금 사업이나 세계잼버리대회 둘 다 지역 사업이나 행사로 치부해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지난 다음 정부 때 개최된다고 소홀해서도 곤란하다. 바다를 메워 만든 땅이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복합리조트 이상의 명품 단지로 조성되는 모습을 세계에 알릴 기회다.

21세기 아시아 시대, 환황해 경제권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새만금 개발사업은 중요하다. 이참에 새만금 사업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환경보호와 산업 유치, 지역발전이란 큰 원칙은 유지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도록. 2023 잼버리대회는 새만금에 기회다.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세계 청소년들이 아시아의 역동적인 나라, 한국을 기억하고 새만금에 투자하거나 다시 찾도록 미래지향적으로 개발하자.

1399호 (2017.09.0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