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히말라야 고려장과 규범적 효도 

 

김경준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젊은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갔다. 연로한 부모가 거동이 불편해지면 산에 두고 오는 풍습에 따라 산길을 올라가는데, 어머니가 계속 길가의 나뭇가지를 꺾길래 이유를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자신을 산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표시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불효의 잘못을 크게 깨달은 젊은 아들은 다시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는 ‘노모의 지혜’ 설화 내용이다. 칠순이 넘은 늙은 아버지를 젊은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으로 가서 지게와 함께 버리고 돌아오려는데 함께 갔던 손자가 지게를 다시 가져오려고 했다. 연유를 물어보니 손자는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지고 오려고 한다고 대답하자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봉양했다는 ‘기로전설(棄老傳說)’ 설화도 있다.

어린 시절 동화의 형태로 많이 접하는 이야기다. 대략 고려장(高麗葬)으로 통칭되는, 나이 든 사람을 버리는 풍습에 대한 비판과 부모의 은혜와 효도를 강조하는 교훈으로 마무리한다. 고려(高麗)라는 명칭 때문에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있었던 풍습으로 생각되지만, 실존했다는 명확한 문헌이나 고고학적 증거는 확인된 바가 없다. 그리고 유사한 설화는 중국·일본·인도를 비롯한 중동과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고려장 설화는 부모의 은혜도 모르는 미개한 인간들이 정신을 차리고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성심으로 봉양한다는 교훈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경제적 함의가 내포돼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히말라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사회에서는 이른바 고려장이 존재했다. 가축을 몰고 부단하게 초지를 찾아 움직이는 유목민의 삶에서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이동이 일상적인 유목생활에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된다. 특히 몽골지역 초원처럼 평지를 움직이는 수평이동보다 험준한 산지를 오르내리는 히말라야 근방 수직이동의 경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존재는 가족이나 집단 전체의 생존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즉 노인을 모시고 험한 산맥을 이동하게 되면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돌발사태에 대처하기도 어려워지면서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동이 느려져 산중에서 겨울을 맞게 되면 집단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히말라야 근방에는 부모의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고 가족들의 이동에 부담이 되면 함께 떠나지 않는 생활방식이 생겨났다.

부모가 연로해 이동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면 자녀들은 이별을 준비한다. 작은 텐트를 치고 불경과 며칠 분의 식량과 물만 남겨놓고 큰 절을 올리며 작별을 고한다. 남은 부모도 떠나는 자식들도 이승에서의 이별이 슬프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헤어진다. 삶의 마지막 며칠 간을 불경을 읽으면서 지내다 세상을 떠난 부모의 시신은 몇 달이 지난 이듬해에 자식이 와서 수습한다.

전통적인 봉건적 효도의 규범에서는 비록 거동이 불편하지만 살아있는 부모를 버리고 가는 히말라야 유목민의 행태는 그야말로 패륜이고 불효이다. 그러나 어떤 풍습이라도 집단의 생존을 위한 나름의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게 마련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이는 히말라야 유목민 개인과 집단의 도덕성이나 효도 개념의 부족에서 발생하는 미개함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이 생존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모시고 히말라야를 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존재하지만, 함께 이동하다가 가족 전체가 죽을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부모에 대한 애정은 유목민 사회라고 다를 것이 없으나 가장인 자식의 입장에서는 효도와 생존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를 히말라야 유목민은 하늘이 내린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풍습으로 만들어 대응했다. 히말라야 유목민이 다른 지역 인간보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서 이른바 고려장의 형태로 부모와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효심과는 별도로 험난한 환경에서 가족과 집단의 생존을 담보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히말라야 유목민의 고려장은 실재하지만 이외에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전승되는 고려장 유형의 설화는 역설적으로 노인 봉양에 대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공통적으로 존재했다는 방증이다. 문명사회라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인 치매가 커다란 사회 문제인 점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개인적 차원에서 불가피한 운명이지만 집단 차원에서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존재한다. 생산력이 낮아 경제적으로 빈곤했던 과거에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노동력이 있는 가족 모두가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가 들어 노동력을 상실하고 활동력까지 상실하는 단계가 되면 다른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하게 된다.

만약 가족 구성원 중 건강한 성인이 나이든 사람을 보살피게 되면 결과적으로 가족 구성원 중에서 2명이 생산활동에서 이탈하게 된다. 생산력이 낮은 수준에서는 가족 전체가 물질적 생존선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생산력이 향상되고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 사회적·가족적 차원에서 나이든 사람을 보살필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난다. 이런 변화로 부모에 대한 효도는 개념적 차원이 아니라 현실적 차원에서 가능하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효도를 도덕과 윤리적 덕목으로 강조하고 권장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난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인간관계의 원초적이고 근본적 형태이자 일종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뒷받침돼야 실행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버리고 먼 길을 떠나는 풍습은 좁은 의미의 규범적 효도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패륜적 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습이 생겨난 사회·경제적 배경을 이해하면 오히려 엄혹한 자연환경에서 집단이 생존하고 후손을 이어나가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애통한 마음과 곧 저승으로 떠나야 하는 서글픈 심정을 억누르고 홀로 남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불경을 읽으면서 주어진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늙은 유목민의 모습은 삶을 대하는 높은 품격을 느끼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 덕목으로 여기는 부모에 대한 효도조차도 개인과 집단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다른 양상을 나타내며, 또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면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02호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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