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힌두교의 신, 이슬람의 악마 

 

김경준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가축은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고 생필품을 공급해 생존능력을 확대시키는 삶의 동반자다. 늑대를 길들인 개는 인간에게 부족한 후각과 청각을 보완해 사냥 성공률을 높이고 집을 지키는 데 사용됐다. 특히 유목민은 개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했다. 소나 말과 같은 대형 가축은 인간의 근력을 보완해 장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농사일에도 도움을 줘 생산성을 높였다. 양·돼지·닭은 털과 고기, 달걀을 생산하는 자원 공급원이었다. 모두들 나름의 목적으로 가축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 세계에서 더욱 높은 지위를 획득해 신으로 추앙받는 가축도 생겨났지만, 거꾸로 밑바닥으로 추락해 악마로 배척받는 가축도 있었다. 가축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면 받아들이고 피해를 끼치면 퇴출하면 될 텐데 굳이 신이나 악마로 정신적 가치까지 부여해 가면서 숭배하고 증오하는 이유는 역시 인간들의 생존방식 선택에 따른 결과물이다.

인도의 주요 종교인 힌두교는 다신교 체제에서 가축 중에서 소를 신으로 숭배한다. 힌두교도들은 암소를 악을 쫓는 행운의 전도사로 신성시하고, 암소의 우유와 배설물을 소중히 여긴다. 심지어 마을 축제에서는 쇠똥을 이마에 바르면서 은혜를 기원하기도 한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떠돌아 다니는 주인 없는 소를 흔히 볼 수 있다. 인도는 정부 차원에서 소의 도살을 금지하고 있다. 유독 가난한 나라에서 귀중한 단백질 자원인 소를 그냥 두고 먹지 않는 사회·경제적 배경을 종교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한 유목민인 아리안족은 소고기에 대한 금기가 없었고, 고대 인도에서는 최고위 계급인 브라만이 소를 도살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아리안족이 정착하면서 농경민족으로 편입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농경지가 늘어나고 방목지가 줄어들면서 소의 숫자는 자연히 감소했지만, 역설적으로 쟁기질 등 농사에 사용되는 소의 효용성은 더욱 높아졌다. 특히 암소는 송아지를 출산하고 우유를 생산하며 인도의 고질적 문제인 연료까지 생산하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소의 배설물을 잘 말리면 가볍고 잘 타며 재도 많이 나오지 않는 훌륭한 연료가 되며, 농사에 필요한 퇴비를 만드는 데도 요긴한 재료였다. 소를 죽여서 고기를 먹고 가죽을 사용하는 효용도 있지만, 인도의 생존환경에서는 살려서 우유를 얻고 배설물을 활용하는 효용이 전체적으로 더 컸다.

하지만 소고기를 먹고자 하는 수요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소를 죽이지 않는 효용이 크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소고기를 먹어서 느끼는 효용이 더 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고기의 가격과 무관하게 소고기에 대한 수요는 유지되고, 소고기를 먹어서 감소하는 소의 숫자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갈등은 종교와 결합해 해결하기도 한다. 소를 신성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힌두교의 브라만(제사장)은 소를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가축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가르쳤다. 소는 사람들이 소유하지 못하고 숭배하는 대상이 됐다. 특히 암소는 행운과 풍요의 상징이 됐다.

신성한 소를 미천한 인간은 죽일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다. 만약 인간이 소를 죽이거나 소를 먹는다면 교리상 악마로 전락하고 수없이 많은 윤회를 거쳐야 겨우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신이 된 소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배설물을 쏟아놓고, 가난한 사람들도 길에 있는 소 배설물을 수거해서 말리면 연료 문제는 해결된다. 그렇다고 사회가 소중한 자원인 고기와 가죽을 버리지는 않는다. 죽은 소의 고기와 소가죽은 최하층 카스트나 이슬람 교도가 처리하게 해서 사회적 낭비를 방지했다. 힌두교의 소 숭배 이면에는 공동체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소를 먹지 않고 살려서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회·경제적 이익이 내포돼 있다.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해서 고기를 먹지 않지만, 이슬람에서는 돼지를 악마로 간주한다. 이유는 다르지만 결과는 유사하다. 오늘날 아랍지역은 덥고 건조하지만 고대에는 유목생활이 가능하고 식생이 풍부한 곳이었다. 초원지대였던 사하라에 남아있는 고대 암벽화에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하마·악어 등 물에서 사는 동물이 그려져 있어 강과 호수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후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강수량이 줄어들면서 사막이 됐다.

고대 강수량이 풍부했던 아랍지역에서는 돼지를 식용으로 키워서 고기를 먹었다. 선입견이 없이 먹었을 때 돼지는 식감이 뛰어나서 인기를 끌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후가 바뀌면서 물 사용량이 많은 돼지사육이 어렵게 됐다. 땀구멍이 없는 돼지는 체온이 높아지면 배설하거나 진흙구덩이를 뒹군다. 문제는 기후가 메말라지면서 물이 희소해진다는 점이다. 인간이 마실 물도 부족한데, 돼지를 키우기 위해 소중한 물을 쓰는 건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위험 요소가 된다. 더구나 돼지는 잡식성으로 인간과 식량을 놓고 경합한다. 아랍지역에서 가축화된 소·양·낙타는 풀·관목과 같은 거친 식물을 먹는 반추동물로 고기와 젖을 생산한다. 이와 달리 돼지는 곡식과 열매 등 인간의 음식물을 동일하게 먹는다. 건조한 지역에서 돼지고기 가격은 상승하고 소비는 줄어들지만 수요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음식이란 먹고 소화시키는 효용의 측면과 함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기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올라가면 갈수록 돼지고기는 통상적 음식에서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된다. 어떤 사회에나 계층갈등은 있게 마련인 상황에서 돼지고기는 빈부격차를 실감시키는 식재료가 되고, 사회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 시점에서 종교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코란의 가르침에 돼지는 악마이며, 결코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고 접촉하는 것도 피해야 하는 금기이다. 이슬람 신자는 돼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배제했다. 돼지의 퇴출로 아랍지역의 물 사용 효율은 높아지고, 돼지사육과 고기를 먹는 데서 오는 사회적 갈등의 요소를 없애버렸다. 공동체의 고질적 문제를 종교가 해결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이후이다. 오늘날 동남아 국가인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도 많은 이슬람 신자가 있다. 이들 지역은 고온다습해 돼지사육에 최적의 환경임에도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건조한 아랍지역은 종교의 명분으로 돼지를 퇴출시킬 사회·경제적 배경이 있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는 환경적 문제가 없음에도 순전히 종교적 이유로 돼지를 퇴출하는 현상은 본질과 상관없이 결과만 남아있는 사례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03호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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