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내공(內攻) 경영’의 전제 조건 

 

김경원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장
몇 년 전부터 ‘키덜트(kidult)’란 말이 화제다. 나이상으론 어른(adult)이지만 취미나 취향은 어린 아이(Kid)와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필자의 옆방 교수도 ‘건담’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플라스틱 모형을 수집한다. 하긴 필자도 40대까지는 무협지광이었니 ‘키덜트’ 중의 하나였음이 맞다. 이후에 무협지를 읽지 않은 것은 필자가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어서가 아니라 조직에서 올라 갈수록 시간이 나지 않아서이다.

그 ‘무림(武林)’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내던 그 시절에 읽었던 수많은 무협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공통어가 있다. 무당파나 소림파 등의 정파, 서역무공 등 사파, 장풍, 지풍 등등. 그런데 필자의 뇌리에 가장 중요한 단어로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내공(內攻)’일 것이다. 보통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대부분의 무협지에 반복적으로 나온다.

‘처음 무공을 연마하기 시작해 고수가 되어 갈수록 태양혈(사람의 귀의 위, 눈의 옆쪽)이 툭 튀어 나오고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른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이들이 무림인임을 알고 피하거나 시비를 걸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는 장풍도 쓸 수 있어 잘못 건들면 주먹이 아니라 장풍에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림인이 ‘비법’을 적은 책을 얻거나 하여 수련을 거듭하여 그 내공이 몇 갑자(1 갑자는 60년)를 넘어서는 초고수가 되면 또 다른 모습이 된다. 그의 태양혈은 다 쑥 들어가고 눈빛도 평범한 농부의 순한 눈빛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그가 초고수인지 정말 모른다. 그도 행동을 조심해 싸움을 피하고 시비도 가리지 않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 닥쳐 그가 나서면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된다. 나쁜 인간들은 그가 옆을 스쳐 갔을 뿐이고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을 뿐이데 모두 이마에 작은 구멍이 뚫리고 저 세상으로 갔다. 그의 손가락 바람 즉 ‘지풍’에 당한 것이다.’

그런데 내공을 강화하려는 무림인이 주의할 사항이 하나가 있다. 바로 ‘주화입마(走火入魔)’이다. 내공 강화를 위해 수행하는 기(氣)의 운용을 무리하거나 잘못하면 몸에 이상이 생겨 오히려 내공을 망치는 경우이다.

이 내공은 기업 경영에도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배기량이 4000cc가 넘는 대형 승용차가 즐비하게 생산되고 있다. 필자가 1980년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정말 신기하게 보았던 ‘고래’만큼 큰 승용차들이 우리나라 도로에서도 줄을 이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 큰 덩치를 끌고 다녀야 하니 이들 차 엔진의 출력은 보통 300마력이 넘어간다. 이와 관련해 자동차 엔지니어에게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모임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형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릴 때 그 엔진은 몇 마력을 내고 있을까? 100마력, 200마력 등의 답이 나왔지만 그는 웃으며 10마력이 조금 넘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이런 대형차에 경운기 엔진을 달아도 가속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시속 100km 이상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 차에 달린 엔진이 내는 300마력 이상의 출력은 다 쓸데 없는 낭비가 아닐까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했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힘센 엔진을 얹는 것은 이것이 자동차의 부드러운 출발을 가능케하고 저속에서도 ‘비단’ 같은 승차감을 제공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로 앞에 급작스러운 산사태 등이 나서, 급정거보다 급가속이 필요할 때 운전자와 승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 장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차에 고객들은 비싼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도 갈수록 이런 ‘여유 출력’이 필요하다. 요즘에는 일견 비슷해 보이는 기업들의 실적은 이런 ‘여유 출력’ 즉 ‘내공’이 얼마나 깊으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내공은 제품·서비스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돼 고객들은 이를 귀신 같이 알아챈다. 기업의 ‘내공’이란 돈을 버는 힘 즉 ‘수익력’일 것이다. 수익력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올까? 어느 대기업의 광고처럼 답은 ‘사람’이다. 특히 두뇌의 힘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얼마나 좋은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했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인재가 성공적인 연구개발(R&D)을 주도하고, 고객 감동을 이끌어낼 것이며 세계로 시장을 넓히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최고의 수익력’으로 귀결될 것이다.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다. 이 중 효과가 가장 좋은 것은 아마 ‘두뇌’를 키우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인 교육투자일 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나라에서 1인당 교육비로 가장 많은 돈을 써온 삼성이 오늘날 세계의 초일류기업이 된 것이 그 방증이다. 물론 그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거나 평상시에는 잘 ‘티’가 나지 않는 것이 흠이기는 하다. 해서 훨씬 많은 기업은 업계 최고 수준의 처우나 사원 복지를 동원하는, 직접 ‘돈’을 푸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런데 기업의 인재 확보 노력에는 단서가 하나 있다. 언급한 대로 이런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최고의 수익력’인 바 이런 노력은 기업의 장기 수익력을 갉아 먹지 않는 범위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키운다고, 인재를 유치하거나 빼앗기지 않겠다고 돈을 쏟아 부었다가 기업이 부실화되거나 망한다면 이런 모순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주화입마’에 걸리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 간 리딩 기업을 제외하고는 수익력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일부 기업들이 주도하고, 이들에게 인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른 기업들도 동참한 임금 인상 러시가 만든 양상이다.

이 대목에서 논리의 비약을 한번 해보자.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여러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 복지 강화가 눈에 띈다. 내년 예산의 3분의 1가량이 복지예산으로 편성돼 있다. 복지를 강화하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 특히 출산장려 정책은 국가의 영속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정책이다. 그런데 이런 복지 확충 노력이 기업의 ‘내공’에 해당하는 국가의 장기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30%대로 아직은 세계적으로 아주 낮은 편이라 강변한다. 하지만 이 통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1986년 만든 기준(GFSM)에 따른 것이다. 국가기관이나 공기업의 부채를 모두 제외한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아직까지 이 기준으로 국가부채 비율을 산정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다른 모든 나라는 IMF가 공기업·국가기관의 부채를 포함해 2001년에 만든 새 기준으로 이 비율을 발표하고 있다. 이 비율이 90%가 넘어가면 재정위기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논문도 있다. 만약 우리나라도 새 기준으로 국가부채 통계를 만들면 이 ‘레드존’에 육박하거나 이미 들어갔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도 내공경영의 전제 조건을 생각해볼 시점이 아닐까?

1403호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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