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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 시대의 주택] 빈집 늘었지만 고령자 수요도 여전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전국 19개 시 빈집 비율 10% 넘어...아파트 구입자 중 60대 이상 비율 14.1%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고령화 속도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노인대국’ 일본을 앞선다. 급격한 고령화는 사회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택시장도 수요 구조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빈 집이 늘고 집값이 급락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곳곳에서 빈집이 늘어나는 등 서서히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가 몰고올 주택 수요 구조 변화를 분석했다. 일본의 주간 경제지 [동양경제]의 특집 기사를 통해 일본의 최근 상황도 살펴봤다.


▎사진:ⓒgetty images bank
고령사회.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또 다른 말이다. 유엔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로 정의한다. 이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8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25만7288명으로, 전체 인구(5175만 3820명)의 14.02%에 이르렀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프랑스 115년, 미국 73년, 독일 40년이었다. 빠른 속도로 늙어간 ‘노인 대국’ 일본도 24년 걸렸다. 우리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17년 만에 고령사회가 됐다.

통계청은 9년 후인 2026년께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더 이를 수 있다고 내다본다.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데 베이비부머(1955~1973년생)의 고령층 진입이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출산률 저하와 고령화로 주택 수요 구조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우리가 더 빠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일본의 패턴을 따를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로 인해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이 하락하기 시작한 1992년 이후 2016년까지 주택 수요가 감소로 집값이 53% 하락했다.

서울도 지방도 … 급증하는 빈집


한국은행도 최근 펴낸 ‘인구 고령화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이런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35년 주택 수요는 면적 기준으로는 29.1%가량 증가하지만 연평균 증가율은 2016~2020년 1.7%, 2020~2025년 1.5%, 2025~2030년 1.2%, 2030~2035년 0.8%로 점차 둔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베이비부머 이전 세대인 1945~1954년생을 고점으로 주택 수요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노후 생계비 마련이 충분하지 않은 70세 이상 가구는 주택을 파는 비중이 커지는 반면, 취업난과 늦은 결혼으로 자산 축적이 더딘 40세 미만 청년 가구가 주택을 사는 비중은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올해 정점을 찍은 후 내년부터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일본이 생산인구감소로 인해 겪은 지방의 슬럼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의 경우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 집값은 올라도 지방에서는 빈집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방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빈집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빈집은 2000년 51만 가구에서 2010년 79만 가구, 2015년 107만 가구(인구주택총조사 결과)로 급증했다. 특히 강원도 태백시 등 전국 19개 시의 빈집 비율은 이미 10%를 넘겼다.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만 하더라도 7만9000가구(서울연구원 조사 결과)가 빈집으로 방치돼 있다. 인천 도원역 주변의 숭의동은 한 때 인천의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빈집 투성이다. 도시는 구도심 쇠퇴와 정비사업 지연, 농촌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빈집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백준 J&K도시정비 사장은 “서울의 경우 뉴타운 사업이 공회전을 하는 등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멈춰 서면서 빈집으로 남아 있는 예가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급락 가능성은 작아


▎전국적으로 빈집이 100만 가구가 넘는다. 사진은 부산시의 한 재개발 구역 내 빈집.
이런 빈집은 고령화 등으로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국내 빈집이 2025년께 전체 주택 수의 약 13%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빈집 비율 13%는 현재 일본의 빈집 비율과 맞먹는 수치다. 연구소 측은 “나라 전체가 빈집 공동화 현상에 몸살을 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전철을 밟듯 빈집이 급증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과거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한다. 한국은행도 ‘인구 고령화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빈집이 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전체 주택시장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거래도 원활해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인 1988년 단독·다세대주택 비중이 69%로 아파트(맨션)의 2배가 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 아파트 비중이 59.9%로 단독·다세대주택 비중 38.8%보다 높다. 주택매매회전율(연간 매매건수를 재고 주택량으로 나눈 비율)도 지난해 10.4%로 0.3% 수준인 일본을 크게 웃돈다. 한은은 “아파트는 거주 편의성으로 청년 가구 선호도가 높고 처분이나 임대 등이 용이해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며 “앞으로도 아파트 매매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공급 과잉이 장기화할 여지도 적다는 평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공급 방식이 기존 주거지의 재개발·재건축 위주여서 공급 과잉이 장기화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고령화에 따른 부동산시장의 충격은 고령자들이 노후 생계비 마련이 충분하지 않아 주택을 파는 시점이 언제가 되느냐의 문제”라며 “주택에 대한 애착이 크고, 투자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고령화에 따른 충격이 조기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최근 주택시장에선 고령자들이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유 자금을 보유한 고령층들이 오히려 왕성한 부동산 투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이 작성한 ‘최근 5년 간 연령대별 아파트 구입자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아파트 구입자 중 60세 이상은 11만2036명으로, 2011년(7만1254명)보다 5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아파트 구입자 수 평균 증가폭(17%)보다 3.3배 정도 수준의 수치다. 하지만 29세 이하, 30~34세의 아파트 구입 건수는 각각 16.5%, 17% 줄었다. 이는 젊은층이 일자리와 소득 부족으로 주택 구매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체 아파트 구입자에서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도 늘었다. 5년 전에는 전체 아파트 구입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10.5%였지만, 지난해에는 14.1%로 증가했다.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주택시장에 강력한 구매층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일본에선 도심 회귀 가속도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선 2000년대 들어 은퇴 주거지 선택과 관련해 자기 집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전원주택과 대규모 실버타운이 인기를 끌었지만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도심이나 도시 근교로 돌아오고 자신이 살던 집에서 젊은이들과 왕래하면서 활발하게 살아가는 은퇴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45세 이상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86%가 자기 집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에선 65세 이상 노인 중 94%가 자기 집에서 살고 있을 정도로 노후에도 내 집에서 사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특히 이미 지방으로 이주하기로 마음먹은 은퇴자들 상당수가 이주 계획을 접고 대신 자신이 거주하고 있거나 젊은 시절 거주했던 지역을 찾아다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서울·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령층의 주택 매입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심은 집값이 비싼 반면 교통이 편리하고 병원 등 편의시설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도심이나 도심 접근성이 좋은 신도시에 집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고령자들의 도심 회귀 현상으로 도쿄 지요다·주오·미나토구는 인구 증가 현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도쿄에서도 인기가 많은 지요다구는 인구가 계속 늘어 36년 만에 6만297명을 돌파했다. 주오구는 올 1월 인구 15만 명을 돌파했고 2025년에는 2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외곽으로 단독주택을 지어 나갔던 고소득 노인들이 주거 환경이 편리한 도심 지역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고령자들의 도심 회귀 움직임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박스기사] 흉물 ‘빈집’ 되살릴 대책은 - 올 초 빈집 정비 제도적 근거 마련


빈집이 늘자 정부는 올해 초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 빈집 정비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은 빈집 중에서도 개발이 어려워 방치될 우려가 있는 소규모 주택의 가로정비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가구 미만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재건축은 조합설립 없이 주민합의체만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0가구 미만 소규모 재건축은 주민 20명 이상의 동의만 있으면 별도의 조합 없이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2~3인의 집주인이 동의해 최소 단위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자율주택정비사업도 마련했다. 2014년 10월 도입된 건축협정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건축 협정과 달리 필지를 구분하지 않고 합치는 방식이다. 건축협정은 2필지 이상 소유자들이 서로 합의해 용적률·건폐율을 통합해서 산정하는 등의 특혜를 받아 맞벽 건축과 같은 방식으로 재건축을 진행하는 제도다.

이와 별도로 각 지자체별로 빈집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빈집을 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한 후 주거 취약 층에 저렴하게 공급하는 ‘빈집 살리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주시는 올해 초부터 빈집을 리모델링해 주거취약계층(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 전주형 사회주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이 사업을 위해 올해에만 5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일본도 중앙·지방정부 차원에서 빈집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에선 특히 민간 업체를 중심으로 빈집을 임대한 후 개·보수를 하고 이를 다시 재임대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돼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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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호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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