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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눈보다 더 빨리, 더 자세히, 더 오래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카메라 기술의 눈부신 발전 … 사진으로 새로운 시간의 미학 구현

▎[사진3] 미니어쳐, 2017
카메라의 역사는 속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839년 프랑스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 1787~1851)가 세계 최초로 사진술을 발명했습니다.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 Type)’라 부르는 은판사진술입니다. 은판에 화학약품을 입혀 빛에 노출시키면 사진이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사진은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카메라를 “조물주가 만든 마법의 발명품”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당시는 초상사진에 대한 수요가 많았습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 이후 중산층의 성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중산층들은 귀족들이 초상화를 그려 집에 걸어두는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중산층에게 초상사진은 고급 취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에는 초상사진을 찍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30분 동안 꼼짝 않고 있어야 했습니다. 초기 은판사진술은 노출시간이 30분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두터운 정장을 차려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실소가 나옵니다. 흔들리면 다시 찍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진사들은 ‘브래디 스탠드(brady stand, 사진1)’라는 고정장치를 이용했습니다. 머리와 허리를 받쳐 흔들림을 줄이는 도구입니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뒤에는 고정장치가 받치고 있습니다.


▎[사진1] 브래디 스탠드
전가의 보도 ‘순간 포착’

카메라 기술의 발전은 눈부십니다. 렌즈의 성능과 셔터장치가 개선됐습니다. 지금은 ‘똑딱이’ 카메라도 1/4000초 이상의 속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고급 기종의 경우 연속사진도 1초에 10장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제 카메라는 사람의 눈보다 더 빨리, 더 자세하게, 더 오래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어떤 대상을 볼 때 흘러가는 동영상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는 피사체의 경우 수 백분의 1초 단위로 이어지는 단면, 단면을 자세하게 볼 수 없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사진의 문법을 바꿔 놓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이 사진의 교과서가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좋은 사진은 시각의 내성으로부터 멀리 달아납니다. 눈에 익숙한 장면은 흥미를 잃습니다. 순간 포착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진가들이 가장 즐겨 하는 표현 형식이 됐습니다.

[사진2]는 큰고니 네 마리가 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장면입니다. 셔터 스피드 1/1000초로 찍은 것입니다. 날개와 발, 물방울 튀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구현됩니다. 연속 사진을 보는 듯합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날개가 아래로 처지며 양력을 받고 날아 오릅니다. 고니의 몸짓이 유체역학의 교재 같습니다. 비행기 이륙 장면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미국의 사진가 조던 매터(Jordan Matter)는 무용수를 이용해 우리 삶의 순간 순간을 연출해서 찍습니다. 아주 빠른 셔터 스피드로 찍은 몸의 미학은 우리 삶을 춤의 경지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무미 건조한 일상에 생명을 불어 넣으며 우리 삶을 더 가꾸고 사랑하게 만듭니다.

순간 포착만이 사진의 전부는 아닙니다. 카메라는 사람의 눈보다 훨씬 더 오래, 자세하게 봅니다. 캄캄한 밤에도 노출시간을 길게 주면 대낮같이 환해집니다. 노출시간은 수 백분의 1초는 물론 ‘1분, 2분…’, ‘1시간, 2시간…’, ‘1일, 2일…’ 등 이론적으로는 무한대까지 가능합니다. 오랜 시간의 흐름과, 피사체의 움직임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는 사진의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를 ‘장노출’ 사진이라고 부릅니다. 시간을 길게 하면 할수록 움직이는 피사체는 뭉개지고, 사라져 흔적만 남습니다. 빛을 내는 물질은 시간의 흐름만큼 길다란 선으로만 남습니다.

사진가 김아타는 장노출의 문법으로 ‘움직이는 것들은 사라진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철학을 사진에 담습니다. 소재도 다양합니다. 월드컵 축구장, DMZ, 뉴욕 증권가, 인도의 시장골목에서 심지어 섹스 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에서 길게는 6-7시간까지 장노출 사진을 찍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On Air Project’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방송중’이라는 뜻입니다. 스틸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사진가의 도발적인 수사입니다.


▎[사진2] 이륙, 2014
장노출의 문법 ‘움직이는 것들은 사라진다’

풍경사진가 마이클 케냐는 흑백필름을 이용해 시간을 담습니다.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구름의 흔적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잔잔하게 뭉개진 파도는 억겁의 시간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바다와 하늘이 장노출 효과로 여백이 됩니다. 사진 속에 깊고 그윽한 동양적인 선(禪) 세계가 구현됩니다.

[사진3]는 바다 풍경입니다. 큰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장면을 1분간 찍은 것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사라집니다. 거친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파도와 하얀 포말이 뭉개져 산에 운해가 드리운 것처럼 보입니다. 바다에서 찍은 산의 미니어처가 됐습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04호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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