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Life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깔끔한 단맛으로 여성 취향 저격 

 

서영수
벌레 먹은 찻잎에서 태어난 타이완의 10대 명차 ‘동팡메이런’

▎동팡메이런 찻잎과 차.
동팡메이런(東方美人)은 힐링 티(Healing tea)다. 우울증에 갇히고 무기력에 사로잡혔을 때 동팡메이런을 한 모금 마시면 메마른 마음과 지친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는 위안이 된다. 천연 꿀 향으로 후각부터 매료시키는 동팡메이런이 따뜻한 물과 만나면 날씬한 찻잎이 수줍게 춤추며 투명한 물을 석양에 물든 골드바처럼 럭셔리한 색으로 변화시킨다. 자연섭리를 활용하는 독특한 재배방식과 특화된 제조기술이 어우러져 완성된 동팡메이런은 쓰고 떫은맛을 배제한 깔끔한 단맛으로 여성 취향을 저격한다. 버려져야 마땅한 벌레 먹은 찻잎에서 상처를 딛고 차(茶)로 부활한 동팡메이런은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기에 최적화된 차다.

농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차


▎동팡메이런 창시자로 알려진 장아신이 살았던 베이푸는 중국에서 건너온 객가로 구성된 마을이다. 90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펑펑차를 판매하는 ‘바오지(寶記)’
동팡메이런은 반발효차로 분류되는 청차(靑茶) 계열에서 발효도가 가장 높은 중발효(重醱酵)차다. 동팡메이런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차나무 품종 중 하나인 청심대유종으로 대부분 만든다. 최근에는 사계춘·취옥·금훤·백로·황심오룡종·백연 등으로도 동팡메이런을 만든다. 수량이 적고 모양과 맛이 뛰어난 백모후종으로 만든 동팡메이런은 돈을 주고도 진품 구하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차나무로 만들어지는 동팡메이런은 차를 만드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동팡메이런의 원료는 반드시 벌레 먹은 찻잎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팡메이런은 붉은색으로 변이를 일으켜 구부러지거나 구멍이 생겨 정상적으로 발육하지 못한 찻잎을 사용해 만든다. 초록애매미충이라고 부르는 소록엽선이 찻잎 진액을 빨아먹으면 찻잎은 테르페노이드 계열에 속하는 항체물질 파이토알렉신을 분비하며 붉게 변한다. 이때 발생하는 화학반응이 동팡메이런의 맛을 좌우한다. 100여 종류가 넘는 소록엽선이 찻잎을 충분히 빨아먹도록 유도하기 위해 차나무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다. 화학비료와 발암물질이 포함된 농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차라는 점이 부각되며 건강을 1순위로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소울 푸드로 인기 만점이다.

동팡메이런은 ‘동방의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우아한 이름 대신 ‘펑펑차(膨風茶)’라는 우스운 이름으로 탄생했다.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한 객가의 방언에서 ‘허풍 떤다’는 뜻인 ‘펑펑’이 차 이름으로 명명된 사연은 두 가지 주장이 있다. 100여년 전 마오리시앤 터우펀에 사는 건망증이 심한 차농(茶農)이 농약 살포하는 시기를 놓쳐 소록엽선이 창궐해 어린 찻잎을 모두 갉아먹어버렸다. 한 해 농사를 망친 차농은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며 조금이라도 손해를 복구하려고 벌레 먹은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타이완에서 생산된 모든 차가 모여 유통되는 따다오청에 가져갔지만 벌레 먹어 구멍이 송송 뚫린 차를 사려는 사람은 없었다. 영국 차 상인이 차향에 이끌려 우연히 차를 맛보곤 전량 수매하며 높은 가격을 쳐줬다. 터우펀으로 돌아간 차농은 마을 사람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동팡메이런이 펑펑차로 작명된 또 다른 주인공은 타이완 수도 타이베이 남쪽 80km에 위치한 신주시앤 베이푸샹에 살았던 장아신이다. 1895년 4월 17일부터 타이완을 통치했던 일본 식민지 초기에 열린 차 전시회에 벌레 먹은 차를 출품한 장아신은 타이완 총독부에서 차를 고가에 전량 구매했다고 베이푸샹에 돌아가 자랑했지만 이웃 모두가 헛소리로 치부했다. 며칠 후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나서야 장아신이 한 말은 사실로 인정받으며 ‘펑펑차’는 유명해졌다. 동팡메이런은 100여년 전 게으름과 건망증 덕에 우연히 만들어진 객가문화 산물이지만 현재 타이완을 대표하는 10대 명차다.

‘펑펑차’라는 우스운 이름으로 탄생

동팡메이런은 64년 동안 영국을 통치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과 인연이 있다. 향기가 뛰어난 ‘펑펑차’를 마신 빅토리아 여왕은 차 이름이 ‘허풍차’라는 사실이 안타까워 훌륭한 차에 걸맞은 이름을 찾아주기로 마음먹고 ‘동양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과 같다며 ‘Oriental Beauty(동방미인)’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명품을 빛나게 해주는 장치로 사실이 아닌 과장된 스토리텔링이다. ‘동팡메이런’이라는 이름은 ‘펑펑차’ 판매 촉진을 위한 세미나에서 타이완차엽개량장 책임자인 우진둬가 제안하고 타이완 국무충리 위궈화의 동의를 얻어 1982년부터 사용했다는 사실이 정설이다.

동팡메이런은 별칭이 많다. 샴페인처럼 부드럽고 향이 높아 샹빈우롱이라는 별명과 흰솜털인 백호가 많아 부르는 바이후우롱, 완성된 찻잎이 다양한 색을 갖고 있어 우써차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판좡차, 타이완우롱, 주옌차, 푸소우차로도 불린다. ‘펑펑차’ 탄생 설화를 가진 베이푸에서는 아직도 ‘펑펑차’와 ‘동팡메이런’을 함께 사용한다. 예전에는 저급한 비속어로 천대받던 ‘펑펑차’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유머가 살아있는 이름으로 친숙하게 다가온다.

동팡메이런 창시자로 알려진 장아신이 살았던 베이푸는 중국에서 건너온 객가로 구성된 마을이다. 객가를 타이완에서는 ‘하카’라 부른다. 하카문화가 살아 숨 쉬는 베이푸는 체험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27년부터 90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펑펑차를 판매하는 ‘바오지(寶記)’를 찾아갔다. 타이완 최고의 차 전문가, 우더량 선생 추천으로 알게 된 바오지는 4대째 차를 만들어 팔아온 구청챈과 아들 구이핑이 5대째 대를 이어 차업을 하는 곳이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업에 정진하는 모습에서 타이완 차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404호 (2017.10.1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