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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른 시진핑 집권 2기] 세계 최강국 꿈꾸는 ‘중국몽’ 시간표 제시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마오덩시(毛鄧習)’ 반열에 올라 신시대 진입 선언 … “공산당이 중국의 중심” 재천명 시진핑이 꿈꾸는 최강국 로드맵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체대표대회가 10월 18일 개막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대회에서 성과보고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에선 어딜 가나 24자로 이뤄진 중국 공산당의 구호를 볼 수 있다. 각 2자로 이뤄진 명사가 모두 12개, 전부 합쳐 한자 자수가 24자다. 12개 핵심 가치관, 또는 24자 방침으로 불린다.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이 마련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있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다. 내용은 국가 수준의 가치 목표와 사회 수준의 가치 방향, 그리고 개인 수준의 가치 준칙이 각각 4가지씩이다. ‘부강(富强), 민주(民主), 문명(文明), 화해(和解)’는 국가 수준의 목표이고 ‘자유(自由), 평등(平等), 공정(公正), 법치(法治)’는 사회 수준의 나아갈 방향이다. ‘애국(愛國), 경업(敬業), 성신(誠信), 우선(友善)은 개인 가치에 해당한다. 이른바 훌륭한 말은 다 적어놓아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을 연상케 한다. 이 구호는 그야말로 중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공항, 기차역, 버스 터미널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선 물론 한적한 공원에서도 어김없이 볼 수 있다. 심지어 거리 한복판의 간판에도 적혀 있다.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한자와 함께 해당 언어로도 씌어 있다. 서부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경우 한족이 쓰는 한자와 함께 아랍-페르시아 문자를 쓰는 위구르어가 나란히 적혀 있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심지어 이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도 있다. 어린이 버전도 걸려 있다. 길목을 하나 돌아서면 또 보일 정도다.

24자짜리 공산당 구호의 의미

단순한 공산당의 일상적인 선전이나 표어 수준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어떻게든 이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주목할 점은 이 핵심 가치를 정하고 적극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시기가 2013년 12월23일이라는 사실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최고 지도자에 오른 지 1년 남짓 지난 때다. 시기로 보면 이 구호는 시 주석 시대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당이 곧 국가인 당-국가체제이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내놓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은 곧 시 주석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면서 내놓은 ‘중국몽(中國夢)’이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가치관을 열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핵심 가치의 제시와 대대적인 선전은 중국 공산당의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시회주의 이념이 퇴색하고 물신숭배가 새로운 사회 풍조로 자리 잡을 조짐을 보이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중국인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한 12개의 가치관을 등대 삼아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고 국민 통합을 시도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시장경제 발전으로 중국 공산당이 아닌 돈이 지배하는 중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처방의 하나로도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미래 가치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주체는 시 주석이다.

시 주석은 중국의 당·정·군을 장악한 명실상부의 최고지도자다. 정치에선 중국 국가주석, 당에선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군에선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하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당·정·군의 3개 직책을 겸하는 것은 사실 장쩌민(江澤民·88) 이래의 전통이다. 하지만 시 주석은 누구보다 이른 시일 안에 이를 모두 장악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은 81~89년 중앙군사위 주석 직만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최고지도자로 군림했다. 국가 주석 직은 양상쿤(楊尙昆, 1907~98, 88~93 재임)에게 공산당 총서기 직은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 87~89 재임)에게 각각 나눠 맡겼다. 권력을 당·정·군으로 병립해 자신의 사후 과도한 권력 집중을 맡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자오쯔양을 경질하고 장쩌민에게 총서기와 군사위원회 주석 직을 한꺼번에 맡겼다. 장쩌민은 93년이 돼서야 양상쿤이 맡고 있던 국가주석 직까지 차지해 당·정·군의 최고위 직을 모두 맡을 수 있었다. 3개 직책 장악에 4년이 걸린 셈이다. 그의 후계자인 후진타오는 전임자인 장쩌민으로부터 이 세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한꺼번에 받지 못하고 당·군·정의 순서로 차례차례 받았다. 1998년 3월 국가 부주석을 맡아 후계자로 인정되던 그는 2002년 11월 공산당 중앙위 총서기를 물려받아 당의 최고 책임자가 됐으며 2003년 3월 국가주석 자리도 맡았다. 하지만 군사위 주석은 2004년 9월에야 맡을 수 있었다. 권력 이양에 2년이 걸린 것이다.

이들과 달리 시 주석은 이 3개 직책을 장악하는 데 4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오쩌둥(毛澤東) 이래 최강의 권력자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거기에 개혁을 추진하는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와 안보와 보안, 그리고 안전을 동시에 책임지는 국가안전위원회, 인터넷의 반정부, 반사회 활동을 제어하는 중앙 인터넷 안전소조까지 맡고 있으니 무소불위의 권력자다. 중국에서 시 주석은 이미 이번 당대회 이전부터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이었다. ‘마오덩시(毛鄧習)’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마오쩌둥·덩샤오핑과 같은 반열


▎중국 우루무치의 공원에 걸린 중국 공산당의 24자 방침. 한족의 한자와 위구르족의 아랍페르시아 문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 사진:채인택 기자
그런 시 주석이 2050년까지 중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겠다며 중국몽의 시간표를 내놨다. 10월 18일 베이징에서 개막한 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로드맵이다. 시 주석은 이날 3시간 24분에 걸친 연설에서 ‘신시대’ 진입을 선언하고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란 목표를 제시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과 신중국 성립 100주년(2049년)을 기점으로 중국몽 실현 계획과 스케줄을 공개했다. 시간표에 따르면 2020년까지는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시기다. 2020년부터 2035년까지는 샤오캉 기반 아래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하는 기간이다. 2035년부터 21세기 중엽까지 ‘부강하고 민주문명적이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중국을 변모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 중국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2050년에는 미국을 누르고 세계의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용어를 보면 24자 핵심 가치관에 나와 있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시 주석의 속내와 꿈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전까지 시 주석은 갈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시기적 목표는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표가 선명하다. 2020∼2050년의 30년을 둘로 나누고 2035년까지 전반 15년은 샤오캉 기반에서 선진국으로 부상하고 후반 15년은 이러한 바탕에서 세계적인 강대국에 올라선다는 구상이다. 최종적으로 종합 국력은 물론 국제 영향력 면에서도 선두 국가로 떠오른다는 목표를 잡았다. 누가 봐도 현재 글로벌 패권국가인 미국과 경제는 물론 국제 관계에서도 경쟁해 누르겠다는 의미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유난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강조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중국 사회의 기강을 다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은 “개인주의, 분권주의, 자유주의를 단호히 방지하고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 기풍을 진작하고 개인주의, 황금만능주의를 배격하겠다는 경고다. 반부패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면서 사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선언이다. 개인주의와 분권주의, 자유주의를 적으로 돌리면서 서구식 가치관의 유입을 경계하고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겠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시장 경제를 허용해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와 권력집중, 중앙통제를 변함없이 유지해온 중국식 체제에 자신감을 보이면서 이를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중국식 사회주의가 미국식 자본주의나 자유주의,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야심도 엿보인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같은 첨단기술 발전을 중국이 주도해 이를 중국의 정치적 개혁이 아닌 마르크스레닌 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데 활용해 새로운 미래를 맞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바일을 비롯한 디지털기술의 발달이 2011년 ‘중동의 봄’을 불러왔듯이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발달은 사회를 더욱 파편화하면서 개인주의 경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사회가 그렇게 흐를 경우 자유주의 속에서 사는 서방 세계도 새로운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현재 쿠바·베트남·라오스와 함께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 4개의 공산체제 국가다. 이들 나라는 헌법에 일당독재를 비롯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를 명문화하고 있다. 북한도 강력한 중앙통제에 일당독재를 넘어 세습독재를 행하는 나라이지만 어쨌든 ‘공산주의’라는 표현은 2009년 헌법에서 삭제했다. 대신 김일성과 김정은의 사상을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시진핑식 디지털 마르크스레닌주의’ 강화


▎사진:연합뉴스
공산당 일당독재가 명문화된 중국은 첨단기술이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시주석은 이번 당대회에서 첨단기술 발전으로 야기될 변화를 오히려 체제를 공고하게 다지는 방향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AI 등 첨단기술이 개발돼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의 통제는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인터넷 등에 대해 치밀한 통제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글은 검열을 수용하고 당국의 지시에 순응할 수 없다며 중국에서 철수했다. 구글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세팅한 서구인들이 중국을 방문하면 당장 검색·뉴스·지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 신기술 개발에 일일이 통제로 대응할 경우 혼란을 부를 우려가 커진다. 대신 시 주석은 이 신기술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구와 사뭇 다른 것은 물론 독특하기까지 하다.

이는 ‘시진핑식 디지털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이념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중앙집권적이고 권력이 집중된 정치와 경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시 주석의 방침으로 보인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러시아 혁명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부흥하겠다는 의지다. 시 주석이 당대회에서 한 “21세기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는 반드시 강대하고 설득력 있는 진리의 힘을 과시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는 이런 의지가 엿보인다. 결국 경제 발전으로 해이해진 공산당에 대한 존경심과 체제에 대한 일부의 냉소주의, 서구문화에 대한 추종을 차단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시 주석 개인의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당연히 들어있다. 이번 당 대회를 계기로 시 주석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수준의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는 중국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체제에 위협이 되지만 않으면 어지간하면 넘어갔던 개혁개방 중심주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졌으니 이제는 공산당을 중국의 핵심으로 다시 전면에 부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덩사오핑이 말했던 흑묘백묘(黑猫白猫)론, 즉 검은 고양이든 휜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노선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쥐를 잘 잡는 것은 물론 당의 노선에 철저히 따르는 고양이만 기르겠다는 뜻이다. 쥐를 잡더라도 아무 쥐가 아니라 시 주석과 공산당이 노리고 지시하는 쥐만 잘 잡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중국 전반, 특히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중국이 21세기의 새로운 경제를 이끌기 위해 AI나 빅데이터 같은 첨단기술에 투자를 늘릴 게 명약관화하다. 이를 먼저 장악하고 공산당 지배를 확실하게 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투자를 더욱 신속하게 결정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첨단기술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성장을 노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단순 조립을 비롯한 사양산업이나 저부가가치 산업은 중국에 투자할 기회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중국은 자국에 도움이 되는 첨단기술을 가진 초우량 기업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 시장 진출 자체가 막힐 수도 있다.

흑묘백묘 시대 저무나

특히 한국의 한류산업을 비롯한 외국 문화산업은 직격탄을 맞을 운명이다. 중국 공산당의 뜻과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든지, 아니면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 대한 문화 교류 통제는 쉽게 멈출 가능성이 더욱 작아졌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적인 문화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작품에만 중국의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시 주석이 일일이 지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당국자들이 ‘알아서’ 지침을 하달하고 통제를 하는 방식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 세계 문화산업에서 격렬한 논쟁을 부르게 될 것이다. 21세기 중국 문화계는 물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산업을 향한 중국의 새로운 문화혁명이 시작된 셈이다. 시 주석의 디지털 굴기는 중국 내부는 물론 세계에 만만치 않을 충격을 줄 전망이다. 중국에서 다시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1406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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