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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차이나 인사이드] 시진핑의 절대권력 쟁취는 절반의 성공 

 

김재현 칼럼니스트
당 주석제 부활 불발로 집단지도체제 유지 … 마오쩌둥·덩샤오핑 반열은 ‘글쎄’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체대표대회가 18일 개막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과 후진타오 전 주석(왼쪽), 장쩌민 전 주석이 당대회장에 입장해 박수를 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온갖 억측이 난무했던 중국 19차 당대회가 폐막했다. 이번 당 대회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다. 폐막 다음날인 10월 25일, 베이징 유력 일간지인 신경보(新京報)는 1면을 시진핑 주석을 클로즈업한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10월 25일 11시50분에 개최된 정치국 상무위원회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시진핑 주석이었다. 앞장선 시진핑 주석만 손을 흔들며 입장하고 뒤를 따른 리커창 총리 등 다른 상무위원은 가볍게 박수를 치면서 입장했다. 시진핑 주석은 “신사숙녀 여러분, 동지친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로 서두를 연 후 다른 6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한 명씩 소개했다.

리커창(62) 총리가 제일 먼저 소개됐고 새로 상무위원회에 진입한 리잔수(67) 중앙판공청 주임, 왕양(62) 부총리, 왕후닝(62)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오러지(60) 당 중앙조직부장, 한정(63) 상하이시 서기가 순서대로 소개됐다.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차기 후계자는 상무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력 주자였던 후춘화 광둥성 서기와 천민얼 충칭시 서기는 25명의 정치국원에만 이름을 올렸다.

이번 당 대회에서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당장(黨章·당헌)에 포함됐다. 이로써 중국 공산당 당장에 포함된 행동 지침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 ‘과학발전관’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등 모두 6가지가 됐다. 시진핑 주석과 달리 장쩌민 전 주석과 후진타오 전 주석은 자신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은 ‘3개 대표론’과 ‘과학발전관’을 당장에 포함시키는데 그쳤다.

후진타오는 전문경영인, 시진핑은 오너경영인

시진핑 주석은 전임 주석인 후진타오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 축구 포지션으로 표현하자면 시진핑 주석은 원톱 스트라이커다.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인 후진타오 주석은 전문경영인처럼 안정을 중시하며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홍얼다이(혁명 원로 2세대)’인 시진핑 주석은 오너경영인처럼 거침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2인자인 리커창 총리는 시진핑 주석의 그늘에 묻혀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 내치를 담당하며 민심을 다독이던 원자바오 총리 같은 존재감이 없다.

상무위원회 구성도 시진핑 주석의 독주체제를 뒷받침한다. 상무위원 대다수가 시진핑 주석의 측근이다. 특히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과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은 시진핑 주석을 그림자처럼 보필하는 시자쥔(習家軍)의 핵심 인물이다. 이들은 해외 순방 때도 항상 시진핑 주석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난 7월 베를린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 때도 각각 시 주석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았다. 왕치산 대신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오러지 조직부장도 시진핑계다. 한정 상하이 당서기는 상하이방으로 분류되지만, 시진핑이 상하이 당서기를 지낼 때 상하이 시장으로 지낸 인연이 있다. 리커창 총리와 왕양 부총리가 공청단파로 분류되지만, 왕양 역시 시진핑 총리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한때 국가 주석직을 놓고 겨뤘던 리커창 총리만이 시진핑 주석과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다.

19차 당 대회는 시진핑 주석에게는 절반의 성공이다.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시진핑 사상’을 당장에 삽입하면서 1인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 주석제 부활과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유임하고 68세 이상은 은퇴한다)’ 폐기에는 실패했다. 20차 당대회가 열리는 2022년에는 시진핑 주석도 69세로 연령 제한에 걸리게 된다. 특히 상무위원회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 주석제가 부활되지 않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 주석제가 도입되면 집단지도체제가 붕괴되고 시진핑 주석은 명실상부한 절대 권력자가 된다. 이번 결과는 시진핑 주석이 권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집단지도체제가 와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세력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내비친다. 왜일까? 중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미국 언론인 해리슨 E. 솔즈베리는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저서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황제에 비유했다. 심지어 중국의 긴 역사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가졌던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르지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보다 인격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휘둘렀던 황제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마오쩌둥은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으로 1949년 천안문에서 신중국을 창건했고 그의 옆에는 덩샤오핑이 있었다.

마오쩌둥 없이는 오늘날의 신중국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 창건과 운영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정확히 신중국 설립까지가 마오쩌둥의 공적이었다. 신중국 설립 후 마오쩌둥은 과오만 저지른 ‘나쁜 황제(Bad Emperor)’였다. 세계적 석학이자 [역사의 종언]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중국이 겪은 문제를 ‘나쁜 황제 문제(Bad Emperor Problem)’로 표현했다.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적은,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 정부는 좋은 지도자가 이끌면 훌륭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연정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주요 의사결정을 신속히 내릴 수 있다. 또한 법률적인 문제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할 필요도 없고 포퓰리스트로부터의 압력에서도 자유롭다.

시진핑 주석이 포함된 '세 명의 황제들' 책 나올까?

하지만 나쁜 황제(Bad Emperor)를 만난다면? 무제한의 권력이 선하고 현명한 지도자 손에 주어진다면 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좋은 황제가 계속 계승하리라는 것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후쿠야마 교수는 가장 최근의 나쁜 황제로 마오쩌둥을 꼽았다. 1976년 사망하기 전까지 마오쩌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중국인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마오쩌둥 사후 마오에 대한 비난이 격화되자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공이 칠이라면 과오는 삼”이라는 ‘공칠과삼(功七過三)론’을 내세우며 갈등을 봉합했다. 마오쩌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는 신중국 설립이라는 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같은 나쁜 황제가 다시 출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덩샤오핑이 고안한 시스템이 바로 집단지도체제다.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합의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국가주석과 총리의 임기는 10년으로 제한했다. 또한 68세가 넘으면 상무위원이 될 수 없었다. 모두 또 다른 마오쩌둥의 출현을 막기 위한 제도다.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가 절반의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마오쩌둥은 개국황제요, 덩샤오핑은 1842년 아편전쟁 후 140년 가까이 내리막길만 걷던 중국을 다시 강대하게 만든 개혁황제다. 10년 후 시진핑 주석이 포함된 [세 명의 황제들]이라는 책이 출판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어렵다’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시진핑 주석의 권력이 무소불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너무나 거대한 산이다.

※ 김재현(zorba00@gmail.com) -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에서 MBA를, 상하이교통대에서 금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칼럼니스트로서 중국 경제·금융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도대체 왜 한국을 오해하나], [파워 위안화: 벨 것인가 베일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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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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