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경쟁의 본질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찰리 채플린)

평화롭게 길거리를 지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한 명 한 명을 찬찬히 뜯어보면 격렬한 감정이 휩싸여 있거나 불행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관찰된다. 다리 위를 지나는 야간열차의 환한 창문을 통해 멀리서 보이는 승객들이 모두 활기차 보여도 가까이에서 보는 표정에서는 일과에 지친 고단함이 묻어있다. 역사적으로도 큰 변화 없이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던 시기에도 이면에는 사회 내부적 경쟁과 갈등으로 격변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게 마련이다. 인간사회는 물론 자연생태계에서도 불가피한 현상인 경쟁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한 쌍의 동종 생물이 중요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면 조만간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거해 버린다. 수백 만년에 걸쳐 복잡다기한 상호경쟁 작용이 전개되어 오늘날 100만종이 넘는 독특한 생명체가 식별되었다…(중략)…이러한 엄청난 수효를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변종(variety)이다…(중략)…생태계의 경쟁에서건 상거래상의 경쟁에서건 두 가지 모두에서 자연적·조직적 특성이 경쟁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진화한다. 자연에서와 똑같이 기업에서도 누가 살아남고 누가 도태될 것이냐를 진화가 결정한다.’(브루스 핸더슨 [전략의 기원])

자연 역시 멀리서 보면 평화롭지만 가까이서 보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생태 다큐멘터리를 보면 멀리서 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들판이지만 그 속에는 먹이를 찾는 사자, 독수리, 메기들과 이를 피하는 작은 생물들의 숨 막히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땅 밑에서는 나무들끼리 서로 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뿌리를 뻗으며 치열하고 싸우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의 경쟁을 피상적으로 보면 각 개체의 비극과 고통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얼룩말은 개체 차원에서는 생명이 스러지는 비극이지만, 그렇다고 얼룩말 집단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얼룩말을 잡아먹는 사자가 나쁘다고 훈계하는 것도 어불성설의 코미디이다. 얼룩말과 사자는 모두 생태계에서 주어진 각자의 역할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얼룩말과 사자 무리와 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역동적으로 진화시키는 기본 동력이다.

인간사회에서는 경쟁하면 시장을 떠올리고 무한경쟁, 파멸적 경쟁, 비인간적 경쟁으로 도식화해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인간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단선적 논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생태계의 변종 출현과 진화를 인간이 계획할 능력이 없듯이 시장의 경쟁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은 일종의 자연 질서로서, 각자의 역량으로 가치있는 물건을 공급해 시장의 수요자에게 인정받는 과정을 모두 계획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다. 또한 시장의 표면적 현상은 경쟁이지만 내재적 본질은 경쟁을 통한 발견에 있다. 그리고 이런 발견은 정보에 기반한 시행착오와 재탐색의 반복적 과정으로 이루어지고 일단 확립된 평판과 신뢰는 일종의 무형자산이 되어 발견에 드는 비용을 감소시킨다.

우리가 시장에서 단순한 물건을 살 때도 여러 가지 물건에 대한 가격, 품질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판매자와 제조자의 평판을 알아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일단 결정해 구입한 물건을 사용한 후 만족하면 반복 구매가 일어나고 불만이면 기존 품목을 제외하고 다시 탐색의 과정에 들어간다. 또한 기존에 구입하던 제품이라도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이 더 큰 가치를 준다고 생각되면 다른 제품을 산다. 이런 발견의 과정이 모든 상거래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본질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지적대로 사회적 차원의 경쟁은 ‘발견의 방법’이다. 다양한 방식들이 경쟁하는 과정을 거쳐서 가장 나은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는 진화하고 발전한다.

시장은 상호이익을 전제로 성립된다. 상거래는 상호 이익이 되기 때문에 유지되며, 정상적 시장에서 한 쪽이 일방적으로 취하는 이익은 단기간은 몰라도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시장에서 발생되는 부당거래에 대한 정보가 당사자들에게 알려지면 거래 중단, 다른 대안 모색 등으로 거래관계에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계에서의 진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상거래에서도 기존 기업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려는 변종 기업, 즉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려는 혁신 기업들이 출현하면서 사업의 범위를 확장해왔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에 성공한 기업의 숫자와 역량이 임계점을 넘으면, 기존 산업의 질서가 바뀌게 된다. 또한 생태계에서도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멸종이 일어나듯 인간사회와 경제시스템도 기존 판도가 변하는 대변혁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경쟁을 통해 선택을 받는 것은 개별 개체 수준에서는 생존과 소멸,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매우 고단한 과정이다. 하지만 집단의 관점에서는 생존력을 높이며 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경쟁의 개념을 인간사회에 적용해 본다면 경쟁 자체는 자연적이며, 혁신을 통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다만 사회를 발전시키는 올바른 경쟁을 하도록 규칙과 도덕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올바르지 않은 경쟁으로 사회의 역동성을 감소시키고 사회를 퇴보시키는 부분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가치 경쟁이 일어나지만, 공산주의와 같은 계획경제에서는 권력투쟁이 상존한다. 이는 시장경제에서는 수요자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이 살아남고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계획경제에서는 정치권력이 경제적 자원배분권을 쥐기 때문에 권력을 확보해야 살아남고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멀리서 보면 평화롭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두 경쟁이듯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로 피상적으로 보면 평화롭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경쟁이다. 경쟁 자체는 자연과 사회의 본질이다. 다만 건전한 경쟁을 통한 발전의 메커니즘이 살아있는지, 아니면 잘못된 경쟁으로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퇴보하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경쟁은 거지같지만 경쟁이 없으면 거지같이 살게 된다’라는 역설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온 법칙이다. 기업 경영자는 물론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쟁의 본질은 자연과 인간사회가 생명력을 지니고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07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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