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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보스와 참모의 관계학(32) 인조와 김자점] 간신에게 날개 달아준 인조의 악수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왕권 강화 위해 김자점 재기용 … 권력 지키려 역모 관여하기도

촉한의 황제 유비는 자신의 수석참모인 제갈량을 두고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한 이 말은 보스와 참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물은 물고기 없이는 의미를 실현할 수 없듯이, 보스와 참모는 진정한 한 팀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 연재에선 한 팀을 이루는 바로 그 과정에 주목한다. 어떻게 보스를 선택하고 참모를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역사 속의 사례로 살펴본다.


▎사진:ⓒgetty images bank
임사홍과 이이첨. 조선을 대표하는 간신으로 꼽히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젊었을 때부터 뛰어난 능력으로 유명했지만 불우한 상황을 겪으면서 삐뚤어졌다는 점이다. 촉망받는 신진 관료로, 빼어난 문장 솜씨에 중국어까지 능통했던 임사홍은 대간에게 소인(小人)으로 찍혀 오랜 시간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며 주목을 받았던 이이첨도 집안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괄시와 불이익을 받았다. 물론 이것이 이후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해줄 수는 없겠지만, 권력에 집착하게 된 주요한 요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간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김자점(金自點, 1588~1651)도 마찬가지였다. 유생(儒生) 신분으로 인조반정을 주도해 1등공신이 된 김자점은 원로 대신들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능력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평소부터 위풍이 넘치고 장수로서의 인망도 넉넉하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인조 3년 7월 20일). 하지만 김자점은 세자빈 책봉 과정에서 인조의 뜻에 반대하다가 노여움을 샀다.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인조는 “자기 당파만 위하고 임금의 뜻은 받들 줄 모른다”라며 그를 삭탈관직 했는데(인조 3년 8월 27일), 반정공신의 위세를 누르기 위한 시범 케이스로 걸렸다는 분석이 있다. 김자점은 2년이 지나 정묘호란이 일어난 후에야 “위급하고 어려운 시기에는 모든 인재를 불러 모아야 한다”라는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다시 관직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김자점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는다.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도원수로 국경방어를 총지휘했던 그는 청나라 군대를 제대로 막지 못했고,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구하러 가지도 않았다. 군사전략적 판단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전쟁이 끝나자 그는 “적을 놓아주고 임금을 버렸다. 즉시 달려 오지 않고 머뭇거렸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인조 15년 2월 10일). 임금을 적의 손에 방치했다는 것은 크나큰 죄로 사형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임사홍·이이첨과 더불어 간신의 대명사

하지만 김자점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신하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지만 병조판서에 제수되었고(인조 20년 1월 16일), 1년 후에는 우의정에 임명됐다(인조 21년 5월 6일). 임금의 뜻을 받들지 않고 임금을 저버렸다는 죄인이 재상에까지 오른 것이다.

인조가 김자점을 재기용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왕권 강화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 유력하다.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네 세력, 즉 ① 인조정권의 대주주인 김류·최명길·원두표 등 공신·문신세력 ② 역시 인조정권의 대주주이지만 중립적이었던 신경진·구인후 등 공신·무신세력 ③ 인조의 국정 운영에 자주 반기를 들었던 청서(淸西, 공신세력과 대립했던 소장관료 등) ④ 인조가 청나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산림(山林, 향리에 은거하면서 학문적 권위와 덕망으로 조정에 영향을 끼쳤던 집단) 중 자신의 편이 없다고 생각한 인조가 무신세력과 친밀했던 김자점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나머지 세력들을 견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김자점은 인조가 죽을 목숨을 살려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리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실제로 김자점은 인조의 뜻에 충실히 영합한다. 인조가 소현 세자의 아내 강빈을 폐위해 사사할 때도 “반드시 상(임금)의 의사에 영합하고자 하여…(중략)…이모저모로 비위를 맞춰 아첨하는 태도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종일관 강씨를 사사하는 것에 대해 옳다고 한 자는 오직 김자점 한 사람뿐이었으므로, 상이 그를 의지하였다”고 한다(인조 24년 2월 7일).

이후 김자점은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는데, 업무만 놓고 보면 큰 흠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임금에게 간언하다가 진노를 산 최명길과 이경석을 힘껏 변호하였으며(인조 24년 2월 21일), 인사(人事)가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인조 24년 10월 4일). 국제 정세에 대해 정밀한 진단을 내렸으며(인조 25년 4월 5일), 재해가 일어나자 곧바로 대신들의 급료 삭감을 건의하기도 했다(인조 25년 9월 3일). 눈에 띄는 업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과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임금의 생각을 무조건 따랐고 임금의 결정에 추호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 잡은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인조의 총애를 받던 후궁 귀인 조씨의 딸 효명옹주와 자신의 손자 김세룡을 혼인시킨 것도 그래서였다(인조 25년 8월 16일).

더욱이 김자점은 권력을 지키고 불리는 일에 치중하면서 무리수를 둔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보장받기 위해 조선 조정에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청나라 역관 정명수와 결탁했다. 정명수를 비롯해 청나라 세력가들에게 뇌물을 바치고자 재산 축적에 혈안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일파를 불리기 위해 몰두하였고, 김류와 최명길 등이 죽고 공신세력의 중심이 된 원두표와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원당(原黨)·낙당(洛黨)의 대결구도도 초래했다. 인조가 죽자마자 그에 대한 탄핵이 이어진 이유이다.

그러나 효종의 즉위 초기만 해도 김자점에 대한 탄핵은 ‘사리사욕을 꾀하고, 뇌물을 받았으며, 권세를 휘둘렀다’(효종즉위년 6월 16일), ‘(공신이라는) 공훈과 존귀함을 믿고서 사치와 방자를 멋대로 하였다’정도였다(같은 해 6월 22일). 구정권의 우두머리에 대한 신정권의 일반적인 공격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작은 문책을 받으면 멈출 수준이었다.

그런데 김자점은 연이어 악수(惡手)를 둔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컸기 때문일까? 권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는 은밀하게 김집·송시열·송준길 등 자신을 공격하는 산림(山林)을 청나라에 고발했다. “새 임금(효종)이 옛 신하(김자점)를 쫓아내고 산림의 인사를 등용해서 군사를 일으켜 청을 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연려실기술). 다행히 이경석·원두표·이시백 등 대신들의 활약으로 사건은 무마되었는데, 자신의 처지가 더욱 위태로워졌다고 판단한 김자점은 이번에는 역모에 관여한다. 아들 김식과 손자 김세룡이 주도하여 귀인 조씨의 아들 숭선군을 옹립하려 한 것이다. 결국 김자점은 처형되고 말았다(효종 2년 12월 13일).

소인도 가려 활용해야 하는데…

이상으로 살펴본 김자점의 행적은 분명 용서받기 힘들다. 그가 아무리 불우한 상황을 겪었든,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싶었든 간에 도리에 어긋난 그의 행동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인조가 김자점을 그런 식으로 다루지 않았다면, 김자점에게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의 행동 역시 달랐지 않았을까? 소인(小人)도 하나의 능력을 갖춘 자이니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려 활용해야 한다는 옛 가르침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인(小人)은 나라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되니, 김자점, 그리고 임사홍과 이이첨의 사례가 분명히 보여준다.

※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 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411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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