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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우리 회사에 의미 없는 바둑돌은 없어”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바둑에서 배우는 다양한 경영 노하우 … 부득탐승·공피고아·신물경속

바둑을 잘 두면 기업 경영을 잘 할 수 있을까. 두 영역은 각기 다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바둑을 잘 둔다고 경영을 잘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CEO들은 바둑을 아는 것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바둑과 경영: 독일 IT기업의 카스텐 크라우스 사장은 직원을 채용할 때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수읽기나 상황을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바둑의 습관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인 중에는 바둑에서 치밀하게 수읽기를 하는 습관이 성공적인 경영을 하는 데 힘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바둑의 원리나 교훈을 경영에 적용했다는 경영자도 있다. 바둑의 십계명인 [위기십결]의 부득탐승·공피고아 같은 격언을 되새겨 경영을 할 때 교훈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부득탐승은 이기려는 생각이 앞서면 오히려 패하기 쉽다는 뜻이다. 공피고 아는 남을 공격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격언이다. 이외에도 [위기십결]에는 상대가 강하면 먼저 자신을 지키고, 싸움보다는 타협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둑에서 배웠다는 CEO도 있다.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고 거시적으로 대응하라는 바둑의 관점 같은 것이 그것이다. 바둑에서는 바둑판의 상황을 상대편의 입장에서도 바라보라고 한다. 또한 전혀 관계없는 관전객, 즉 구경꾼의 시각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남의 집이 커 보이면 진다’라는 말도 있다. 사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둑만큼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강조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근래 인간을 정복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사람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둑을 바라보아 바둑팬은 물론 고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외에도 바둑의 전략이나 관습을 벤치마킹하는 경영인도 있다. 리스크가 큰 ‘올인’ 전법 대신 간접적으로 실익을 추구하는 성동격서 전법은 기업 경영에도 필요할 것이다. 바둑에서는 작은 것을 버려 큰 이익을 도모하는 ‘사석전법’을 권장한다. 작은 이익에 연연해서는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프로기사들이 시합을 하고 나서 그 과정을 돌아보는 복기(復棋)를 배우라고 강조하는 CEO도 있다. 복기를 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나 시행착오를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바둑경영의 응용: 바둑에서 기업 경영의 다양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것은 기업인들이 병법서인 [손자병법]을 즐겨 읽는 것과 같다. 기업 경영도 일종의 총성 없는 전쟁이니 경쟁의 방법을 다룬 병법서가 참고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토전쟁 또는 집차지 게임인 바둑의 전략과 노하우가 경영에도 응용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둑경영의 노하우를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경영 장면에서 바둑의 원리나 교훈을 떠올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기업이 어떤 프로젝트로 성공한 케이스를 보고 우리 회사도 그 성공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하자. 이럴 때 ‘신물경속’이라는 바둑 격언을 떠올리면 그 결정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는지 재검토하는 신중함을 보일 것이다. 또한 어떤 직원이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 묵살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면 바둑에서 하수의 엉뚱한 수도 무시하지 않는 바둑의 관행을 생각하며 경청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가 위기에 빠져 비관적인 무드에 빠져 있을 때 뭔가 승부수를 던져보고 안 되면 접을 생각을 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비관하는 것보다 낙관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는 바둑의 상식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인내심을 발휘해 조금씩 만회해 가는 끝내기 고수들의 방식도 참고가 될 것이다.

경영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시각을 습득할 수 있다. 조직관리나 위기관리에 대한 고수들의 방식을 배울 수도 있다. 어떤 어려운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수읽기를 하여 최선의 수를 찾는 의사결정의 노하우를 참고할 수도 있다. 그동안 필자가 ‘바둑과 경영’에 관해 저술한 것으로 보면 바둑에서 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내용은 100가지쯤 된다.

그것을 터득해 경영 장면에 응용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바둑의 용병술을 가미한다면 더욱 더 생생한 경영 노하우를 보유하게 될 수 있다. 예컨대 “바둑돌에도 체면이 있다”고 부르짖으며 자기 돌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려는 프로기사의 사고방식을 응용하면 직원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어떤 CEO는 “우리 회사에 의미 없는 바둑돌은 없어!”라는 장그래의 말을 외치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자신이 약한 부분을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는 고수들의 공부법도 회사의 인적자원 능력을 높이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나만의 바둑경영: 앞에서 본 것처럼 바둑에서 배울 점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기억해 응용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바둑경영 중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두세 가지 정도 기억해 자신의 경영 노하우로 삼는 것이 현실적일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다른 회사와 합병해 직원들이 이질감으로 갈등과 대립을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하자.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내려는 이런 구조를 조절하지 못하면 경영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 경우 경영자는 바둑경영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올 것이다.

바둑은 조화(調和)다.

부분보다 전체를 보라.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한편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고 싶은 CEO라면 다음과 같은 바둑경영 노하우를 받아들이고 싶을 것이다.

복기를 하여 시행착오를 줄여라.

세력(자원)을 전투에 활용하라.

정석은 외운 다음 잊어버려라.


이런 식으로 세 가지 바둑경영 노하우를 실제 장면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필자는 기업인은 아니지만 대학 교육에서 실제로 바둑경영을 응용한다. 한 가지는 어떤 활동이나 행사를 하고 나서 복기를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알아낼 수 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둘째는 프로기사들이 연구모임을 하는 것처럼 대학에서도 교수들끼리 또는 학생들 간에 연구회를 하도록 유도한다. 그 외에도 체면의 리더십, 강점 활용 전략, 무형의 가치 보기 등 바둑에서 배운 노하우를 적용하고 있다. 바둑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고수들의 실전장면에서 나온 노하우를 기억해 가끔씩 놓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도]는 고수의 실전대국에서 나온 모양. A, B, C의 세 군데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한다. 어디가 가장 좋을까.

[2도] 단순히 크기만 따진다면 흑1이 가장 크다. 그러나 이것은 백2에서 4로 두게 하여 공격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3도] 이 경우는 ‘큰 곳보다 급한 곳부터’라는 바둑 격언에 따라 흑1에 두는 것이 정수다. 흑1은 백◎에 대한 공격을 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12호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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