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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8) 불을 다루는 능력] 물리적 불이든 마음의 불이든 불은 경쟁력의 원천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인간은 불 덕분에 새로운 진화의 토대 마련...조직에서는 ‘마음의 불’ 조절 능력 갖춰야

▎사진:ⓒgetty images bank
세상이 워낙 왁자하게 돌아가다 보니 묻혀 있지만 지금 횃불 하나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고 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밝힐 성화다. 이 횃불은 2018년 2월 4일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 도착, 경기 내내 타오른다. 하계 올림픽에도 이런 성화가 있다. 그런데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에 왜 성화가 필요할까?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기원이 있기는 하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에서 경기장에 불을 피워 놓았다는 기록에 따라 다시 살린 것이다. 신화에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이 사용하던 불을 훔쳐다 준 걸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무한한 고통을 얻었다. 신들만이 사용하던 불을 훔쳐다 준 것에 화가 난 신들의 신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산꼭대기 바위에 쇠줄로 묶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 프로메테우스를 독수리들이 가만두었겠는가. 매일 찾아와 간을 쪼아 먹었다. 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스포츠 제전, 축제, 종교의식 때 불 피워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때문에 동물에게 불은 대체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사진은 미 캘리포니아의 산불 모습. / 사진:AP=연합뉴스
그렇다고 해도 스포츠 제전에 꼭 불이 필요했을까? 사실 이런 ‘의문의 현장’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뭔가를 하는 자리엔 거의 어김없이 ‘작은 성화’가 있다. 생일 축하를 위해 모인 자리는 물론 죽은 이를 추모하는 곳에서도, 그리고 결혼식이나 종교의식에서까지 우리는 어김없이 불을 켠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그리고 떠들썩한 자리일수록 불은 커진다. 축제 같은 곳에서는 아예 커다란 모닥불을 피운다. 화재 위험이 있거나 실내여서 불을 피울 수 없으면 대형 라이트로 불을 대신한다. 사람이 많아서 모든 사람이 불을 볼 수 없으면 올림픽 성화처럼 높은 곳에 설치해 모두가 볼 수 있게 한다.

어느 한 문화권의 특징이 아니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전통부족들은 지금도 화덕 같은 곳을 중심으로 식사와 생활을 하고, 마을 잔치 또한 커다란 모닥불을 중심으로 치른다. 물론 문명 세계도 마찬가지다. 매일 밤 클럽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젊은 세대도 휘황찬란한 불빛을 중심으로 한바탕 젊음을 불사른다.

동물은 다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불을 이렇게 좋아하는 생명체는 없다. 아니 완전히 반대로 도망가기 바쁘다. 몇몇 영장류가 추울 때 불을 쬐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이건 동물원이나 인간과 같이 사는 곳에서만 그렇다. 인간을 따라 하는 것이다. 동물에게 불은 대체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모든 걸 다 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자연 발화로 산불이나 들불이 날 때 그들은 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절절하게 경험한다.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서식지를 한동안 죽음의 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어난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불은 자연의 저승사자다. 하늘에 있는 불인 태양을 보자. 이 하늘의 불이 이글거릴수록 먹고 살기 힘든 건기가 찾아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 번갯불은 어떤가. 산불과 들불을 일으키거나 그게 아니면 비바람을 몰고 온다.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불(화산)도 마찬가지다.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인간은 다르다. 인간도 불을 두려워하고 공포심을 갖지만 다른 게 있다. 이걸 이용한다. 이용할 뿐만 아니라 불의 원리를 알아 불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불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에게 불은 위험하지만 좋은 것이다. 생명체 중에서 불을 만들고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건 인간이 유일하다. 인간은 언제부터 불을 이용하기 시작했을까? 고고학 연구에서 나타나는 불의 흔적은 100만년 전까지 올라가지만, 확실한 흔적은 50만년 전쯤부터 나타난다. 이후 나타나는 주거지에서는 그곳이 아프리카이든, 남미 오지이든 빠짐없이 모닥불이나 화덕을 사용한 흔적이 나온다. 불이 필수였다는 뜻이다.

동물에게 불은 공포의 존재


▎증기기관과 석탄을 이용한 화력(火力)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실제로 불은 생존의 중심이었다. 모든 동물이 무서워하니 맹수를 쫓는 데 그만이었고, 추울 때 체온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기온이 낮은 곳에서 불은 생사를 좌우하는 생명줄이었다. 또 낮에 활동하는 생명체는 어두워지면 활동을 멈춰야 했지만 인간은 불 덕분에 ‘낮’을 늘릴 수 있었다. 이뿐인가? 먹기 힘든 걸 익히거나 끓이면 소화가 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균 작용을 하니 질병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식물이 개발한 독(탄닌)을 처리하는 법을 개발한 동물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있다 해도 오래오래 씹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인간은 불로 익혀 독을 제거한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고사리를 거의 먹지 못하지만 인간은 데쳐서 맛있게 먹는다(그래서인지 우리는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이렇게 탄생한 ‘요리’ 덕분에 인류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엄청나게 늘릴 수 있었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얼마나 될까? 한 연구에 따르면 3만여 가지나 된다. 잡식도 보통 잡식이 아니다. 덕분에 충분한 열량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인류는 어떤 생명체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웬만한 기후변화에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박스 기사 참조].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불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진화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강한 턱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기에 여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턱이 작아지면서 뇌가 커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최대 특징이 뇌라는 걸 생각하면 불은 인류를 진화시킨 원동력이었다. 이뿐인가? 나무나 돌 같은 도구나 무기를 불에 단련시키면 훨씬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없어도 살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었다.

당연히 불을 잘 이용한 집단이나 사람이 엄청난 이점을 누렸을 것이다. 집단에서 불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힘 있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그 능력은 지위로 연결되었을 것이며, 지위는 권력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태양신이나 불에 대한 숭배 문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를 벌한 신들의 신 제우스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무엇이었던가. 번갯불이었다. 다른 많은 문화에서도 번갯불은 하늘이 화를 내는 것을 의미했다. 이 번개가 땅에 내리쳐지는 게 벼락인데 벼락을 맞는 건 천벌을 받는 것이었다(‘벼락 맞을 소리’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2600여년 전 생겨나 천년 이상 번성한 메소포타미아의 조로아스터교는 이런 불을 중시한 종교였다.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불의 힘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는 천년 왕국 동로마제국을 새로운 불, 그러니까 화약을 이용한 대포로 무너뜨렸다. 묘한 건 이 대포가 엉뚱한 후폭풍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동로마제국의 패망으로 지금의 중동지역이 이슬람의 수중에 들어가자 유럽은 인도에서 수입하던 후추 같은 생필품을 구할 수가 없어 후추가 금값이 되는 궁핍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바다를 통해 인도로 가는 길을 찾으려 했는데 그 와중에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뜻하지 않는 행운으로 서양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문명세계에서도 불은 새로운 힘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불을 만들어 낸 덕분이었다. 소와 말로 만들어내던 힘, 즉 마력(馬力)을 증기기관과 석탄을 이용한 화력(火力)으로 바꾼 산업혁명이 그것이다. 미국은 이 석탄 체제를 석유에서 생겨나는 불로 바꿔 새로운 제국이 되었다(덕분에 석유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큰 소리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또 원자폭탄이라는 엄청난 ‘불’로 2차 대전을 끝냈다. 불을 다루는 능력, 그중에서도 그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자신들만의 불(에너지)’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렇듯 개인 차원이든 집단 차원이든 불은 생존의 중심이었고, 인류는 불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 화덕이든 모닥불이든 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공동의 문제를 토의하고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전통부족들은 지금도 이렇게 한다. 다시 말해 공동체란 불을 가운데 두고 모이는 사람들이었다.

수십 만 년 동안 이런 패턴은 우리 마음 속에 내면화되었고 우리는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무언가를 할 때 자연스레 불을 가운데 두는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올림픽이나 생일파티는 물론이고 많은 의식에서 케이크 같은 먹을 것과 불을 가운데 두고 모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무언가’가 화합을 위한 것이든, 영원한 관계를 염원하는 것이든 으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된 것이다. 또 그렇게 둘러 있는 것 자체가 상징화되어 우리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면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생성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첨단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워크숍에 갔더니 3박4일 일정이 끝나기 전날 밤 캠프파이어를 했다. ‘축제’처럼 술과 음료와 먹을 것이 풍족하게 제공되었다. 이유를 물으니 ‘단합을 위해서’였다. 자신들은 언제나 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 역시 오래된 마음에서 나오는 무의식적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불이 하나 더 있다. 우리 모두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뜨거운 마음, 열정이 그것이다. 이 우리 안의 불 역시 인류 역사에서 나타나는 물리적인 불이 그런 것처럼 어떻게 사용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당대에 내로라하는 조직을 이끌게 되는 이들은 이 불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때 그렇게 하고 은근한 화롯불이어야 할 때는 또 그렇게 할 줄 안다. 앞으로 나서야 할 때는 과감하게 횃불 같은 비전을 제시해 캄캄한 어둠을 밝힌다. 그렇게 모두의 가슴에 불을 붙인다. 젖은 나무 같이 축축한 마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불타는 열기로 바꾼다(이게 바로 진정한 동기부여다!). 그렇게 조직을 성장시키며 그 조직 생태계에서 태양과 같은 존재가 된다. 아마 그들의 눈빛이 형형한 건 마음 속 불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만의 불을 만들 수 있는가

그들은 불의 특성을 잘 알아 ‘불 조절’을 통해 조직을 리드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불이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뜨겁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구성원들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한다. 너무 가깝게 다가가면 타 버릴 것이고, 너무 멀게 대하면 추워할 것이니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는 거리를 유지한다. 그들이 온기를 필요로 할 때는 다가가 주고, 더워할 때는 멀어져 준다. 일을 맡길 땐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 속 불을 일으키고 사용할 수 있게 멀찌감치 서서 지켜봐 준다. 그런 능력이 있어야 그들도 자기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을 다루는 역량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에서 배우는 능력에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불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대개 학습력이 탁월하다.

물리적인 불이든 마음의 불이든 불은 경쟁력의 원천이다. 자신만의 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그리고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능력이 달라진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당연히 이런 불을 다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끔이지만, 있는 불도 꺼트리는 차가운 사람을 본다. 조급함에 수시로 불을 질러 사람들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거나 까맣게 태우는 이들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번갯불이 치고 화산이 폭발하는 곳은 폐허가 된다. 폐허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 그러니 조직을 이끌고 있다면 항상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어떤 불을 가졌는가? 이 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정말 가끔은 자기 안의 불이 꺼졌는데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열정이 아니라 관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박스기사] 비만 능력이 인류를 만들었다?

인류는 같은 대형 유인원들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유전자로 보면 침팬지와 1.6% 차이 정도다. 그런데 어떻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미국 헌터대 인류학과 허먼 폰처 교수팀과 다른 공동 연구자들은 사람과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의 생리적 특성을 비교 조사했다. 조사 결과 두드러진 차이가 나는 항목이 있었다. 체지방 비율이었다. 인간 여성의 체지방 비율이 41%, 남자가 23%인데 반해 침팬지 암컷은 9%, 수컷은 8%에 불과했다. 고릴라는 암컷 14%, 수컷 15%로 침팬지보다 높았다. 오랑우탄은 암컷 23%, 수컷 16%이었다. 하루 총에너지 소비량은 인간 여성이 2200㎉로 유인원 암컷 가운데 가장 많았다. 남성은 2700㎉로 고릴라 다음으로 많았지만 고릴라는 덩치가 인간보다 훨씬 크니 체중을 감안하면 인간 남자가 훨씬 높다. 이 수치는 뭘 의미할까? 먹을 게 귀했던 시절 인간은 가장 많은 열량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가장 활동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뇌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뇌는 신체의 2%에 불과하지만 20% 이상의 에너지를 쓴다. 물론 이런 결과는 불 사용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능력이 문제다. 살기 좋은 시대가 되어 언제든 비만으로 직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16호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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