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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가리 돈’이란 코인 ... ‘쪼가리’란 뜻의 비트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일반적으로 ‘동전’으로 불리는 주화는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보통은 원형으로 생긴 모습이다. 이 동전의 역사는 꽤나 긴 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원형의 돈 중앙에 구멍을 내어 줄로 꿸 수 있었는데 반해 서방에서는 음각이나 양각으로 인물 등의 형상이 들어가 있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인류가 돈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문명이 싹트기 시작한 즈음과 거의 같다고 한다. 초기에는 돌, 조개 껍데기, 소금 등이 돈의 기능을 했다. 그러나 무게와 함량이 일정치 않고 휴대도 불편하며 잘 썩거나 닳아 반복 사용이 불가능한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해줄 금속으로 만든 돈이 드디어 기원전 7세기경에 오늘날 터키 지방에 자리한 ‘리디아’란 나라에서 출현했다. 리디아에는 금과 은이 많이 나와서 리디아인들은 금과 은이 섞인 ‘호박금’으로 ‘주화’를 만들었다. 이 주화에는 사자머리가 새겨져 있어 이 돈의 이름은 ‘리디아의 사자’라 불렸다. 이 주화는 표준화된 무게와 함량을 지켜 매우 믿음직한 교환수단이 됐다. 그런 덕에 이 돈은 지중해 주위의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리디아는 큰 부를 축적했고 서아시아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후 서방에서 출현한 주화, 또는 동전은 음각이나 양각으로 인물이나 동물 등의 형상이 들어가 있는 형태를 나타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표준이 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칼 모양을 한 ‘도폐(도전)’나 농기구 모양의 ‘포전(布錢)’이 통용됐다. 둥근 모양의 주화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진시황 이후이다. 진시황은 중국 통일 후 기존의 화폐를 모두 없애고 ‘진반량(秦半兩)’이라는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낸 형태의 동전을 도입했다. 그 동전은 말 그대로 구리 합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후세에 지폐가 나오고 무게나 주조 비용 때문에 동전의 위상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자국 통화를 발행하는 거의 모든 나라가 아직도 동전을 주조해 유통시키고 있다. 동전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코인(coin)’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쿠네우스(cuneus)’이다. 이는 ‘쐐기’나 ‘모서리’ 등을 뜻한다. 로마제국 시절 주화는 금속 덩어리나 금속판 위에 쐐기 모양의 정을 올려 놓고 망치로 쳐서 문양을 새겨 만들었다. 이게 영어로 도입되면서 14세기 말에는 ‘찍어 눌러 만들어진 것’에서 ‘쪼가리 돈’으로 의미가 발전하며, 동전이라는 오늘날의 의미와 유사한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동전, 좀 더 정확히 주화가 널리 쓰이면서 인류의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예를 들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라는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도 이 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통화제도가 도입된 초기부터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이 무게 자체가 그 가치를 나타냈다. 사람들은 이런 ‘제대로 된’ 주화를 수집해 녹인 후에 다시 다른 싸구려 금속과 혼합해 위조 주화를 유통시키면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장에는 좋은 주화는 모두 퇴장되고 함량이 낮아 가치가 의심되는 돈만 남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대륙 발견 이후 대규모의 은광이 속속 개발되면서 은의 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자 각국이 금 본위제로 전환했다. 그러다 금의 공급이 모자라자 아예 금이나 은 등과의 관계를 끊고, 구리 등 비교적 싼 금속으로 만들되 법으로 주화의 가치를 정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전 자체는 요즘에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과 전자결제가 일반화되면서 동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전을 만드는 비용이 동전의 액면 가치보다 상회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인지 민간에서는 이를 녹여 금속을 뽑아 파는 범죄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0원짜리 동전이 예전의 1원짜리 동전과 엇비슷해질 정도로 작아지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동전을 나타내는 ‘코인’이라는 말 자체는 디지털 시대가 깊어가면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비트코인(Bit Coin)’이 세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정체가 모호한 일본인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안한 온라인 가상화폐, 즉 디지털 통화이다. 그 내용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발권력을 부여해서 새로운 화폐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개인 간의 신뢰 문제, 나아가 통화 시스템의 안정성은 ‘블록체인’이라는 공개된 거래장부를 도입해서 해결하려고 했다. 개인 간에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공개된 장부에는 새로운 기록이 추가돼 이 시스템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또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은 2100만개로 정해져 있어 화폐 남발에 따른 가치 하락 문제에도 대응하려고 했다. 비트코인은 이미 온라인상에서 어느 정도 결제 수단이 됐다. 이 새로운 가상통화는 오프라인상에서도 가치를 가지게 되어 인터넷 환전사이트에서 이를 구매하거나 현금화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1 비트코인의 국제시세가 2만 달러까지 돌파했지만 각국의 규제로 이후 가격은 급등락을 거듭하며 출렁거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1 비트코인이 연초 2600만원대까지 가다가 가치의 절반 이상이 하락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도 이렇게 조정받은 현 시세가 ‘거품’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계속 되고 있다. 거품인지 아닌지 여부는 시간을 두고 보아야 알게 될 것이지만 이런 와중에 시장 과열의 후유증을 염려한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강력한 규제의 움직임도 점점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1일 금융위원장이 “비트코인을 금융 거래로 보지 않는다”며 “무분별한 투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발언한 후 지난 1월 11일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지’를 시사하는 발언도 뒤따랐다. 이후 오비이락인지 큰 폭의 가격 조정이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당국의 거래 규제 시사가 가격 폭락의 주된 원인이라고 원망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이 뒤따르자 청와대는 “거래소 폐쇄는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천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가상화폐 규제 반대의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필자 주위에서도 요즘 ‘비트코인’이 연일 화제다. 몇 년 전 심심풀이로 사놓았던 얼마 간의 비트코인으로 일확천금을 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 큰 맘 먹고 비트코인에 투자했더니 반 토막이 나서 큰 낭패를 보고 있다는 지인도 있다. 하지만 이미 비트코인이 우리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비트코인’의 ‘비트’란 영어 단어의 여러 뜻 중에 ‘쪼가리’가 있다는 것이다. 전술한대로 코인이라는 말의 원 뜻에 ‘쪼가리 돈’도 있었다. 성경의 시편에 나오는 ‘집 짓는 이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라는 말처럼 쪼가리 돈으로 시작한 동전이 한때 인류의 경제를 좌지우지했듯이, 비트코인도 그런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지금의 암호화폐 투자 광풍이 디지털 기술 발전의 씁쓸한 한 단면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뿐일까?

1419호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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