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문법으로 감동을 해석하고 차용 … 카타르시스 남기는 예술의 힘
▎[사진1] 신세한도, 2015 |
|
좋은 예술작품은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아픈 기억을 들춰내며 눈물 짓게 하는가 하면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짓게 합니다. 때로는 상상력을 발휘해 작가의 정신세계를 들여다 보게 됩니다. 감정이입을 하고 작품을 바라봅니다. 밀려오는 감동에 가슴이 젖습니다. 명작은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승화시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줍니다. 예술의 힘입니다.2015년 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마크 로스코(1903~1970)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입니다. 비평가들은 그를 ‘색면추상’의 선구자로 부릅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사각형 모양의 색으로 인간의 영적이고 근원적인 감성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합니다. 전시장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연출했습니다. 어두운 조명과 원색의 작품이 전시장 공기를 묵직하게 누릅니다. 클래식 음악 공연장 같은 적막이 흐릅니다. 작품 앞에 방석을 깔아 놓고 명상을 하는 공간도 있습니다. 마치 종교시설 같습니다. 작품 앞에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감상자도 보였습니다. 로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나 그 밖의 다른 것들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황홀경,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색면추상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
▎[사진2] 세한도 |
|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 붉은 노을이나 채운 등 강렬한 색채나 빛으로 나타나는 신비로운 자연풍경을 보면 로스코 작품을 오마주(hommage)합니다. 로스코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사진에 차용하는 것입니다. 명작의 감동은 오랜 여운을 남기며 기억에 각인됩니다. 사진을 찍다가 어떤 장면을 보면 사진·그림·영화 등 강한 인상을 받았던 예술작품의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품을 봤을 때 느꼈던 감동을 어떻게 재현할까 고민합니다. 사진에 많은 공을 들이게 됩니다. 사전시각화를 합니다. 빛과 색을 기다립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프레이밍을 합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면 비로소 사진을 찍습니다. 상상력의 산물인 그림을 사진 문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사진3] 방완당의 산수도 |
|
[사진1]은 덕유산에서 찍은 고사목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입니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입니다. 곧게 뻗은 나무와 가지에 하얀 상고대가 피었습니다. 그 자태가 꼿꼿하고, 올곧은 선비를 닮았습니다. 추사의 세한도([사진2])가 떠올랐습니다. 구름이 많고 날이 흐려 배경색이 탁해서 하늘이 개기를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쯤 기다리자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났습니다. 기다렸던 순간입니다. 푸른 빛이 분위기를 더 차갑고 시리게 만듭니다. 사진에 ‘신세한도(新歲寒圖)’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소나무가 주목으로 바뀌었지만 추사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았습니다.
곧게 뻗은 가지에 핀 하얀 상고대
▎[사진4] 개양귀비, 2015 |
|
오마주와 비슷한 개념으로 동양에서는 ‘방작(倣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뜰 방(倣)’ 자입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본떠서 만든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작(模作)’이나 ‘위작(僞作)’과는 다릅니다. 모작은 베낀 것이고, 위작은 속이기 위해 똑같이 그린 작품입니다. 방작은 원작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자기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말합니다. 주로 스승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선대 화가에 대한 존경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추사의 세한도는 명성에 걸맞게 많은 방작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추사의 애제자인 소치 허련(1808~1893)의 ‘방완당의(倣阮堂意) 산수도([사진3])’입니다. 완당은 김정희의 호입니다. 완당의 뜻을 본받아 그린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사진5] 개양귀비가 있는 들판 |
|
[사진4]는 개양귀비 꽃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울산 태화 강변에 수만 송이의 개양귀비 꽃이 핍니다. 관상용이지만 이름에 걸맞게 강렬하고 고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멀리서 보면 푸른 초원에 빨간색 물감을 뚝뚝 찍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망원렌즈를 이용해 멀리서 찍었습니다. 연상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인상파 화가인 고흐가 그린 ‘개양귀비가 있는 들판([사진5])’ 입니다. 물감을 뚝뚝 찍는 고흐 특유의 거친 붓질이 개양귀비 꽃을 멋들어지게 재현했습니다. 이를 사진 문법으로 본떴습니다. 사진 제목을 동양식으로 붙인다면 ‘방(倣)고흐 개양귀비’쯤 될까요.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