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최대 이익 기록한 일본 재계의 명암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지국장)
대다수 일본 기업에게 3월 말은 가장 분주한 시기다. 결산 시즌이라서다. 회계결산은 물론 새해 예산과 인사 등 처리할 일이 산적하다. 바쁘고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요즘은 기분이 좋을 것이다. 일본 기업의 2017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 예상 영업이익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이 부활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적지 않은 기업이 아직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일본 기업은 ‘쇠퇴의 대명사’로 통했다. 지난 3~4년 전부터 달라졌다. 눈부신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많은 기업이 부진의 원인을 찾아 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 이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장기 침체기를 겪는 동안 구조조정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유형이다. 소니가 대표적이다. 소니의 2017 회계연도 예상 영업이익은 7200억엔(약 7조25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소니가 영업이익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무려 20년 만이다.

그 동안 소니는 PC 부문 등 수익성이 악화된 사업을 정리하는 한편 미래에 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눈’에 해당하는 이미지 센서를 40여년 전부터 개발했다. 실적이 나쁠 때도 이미지 센서에 대한 투자를 이어갔다. 이제는 세계 시장을 거의 독점하는 지위로 성장했다. 이미지 센서에서만 1000억엔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음악·영화·금융·비디오게임·TV 사업 등 ‘일렉트로닉스’ 부문도 포기하지 않고 재건했다. 소니는 그룹의 염원 중 하나인 다각화 노선에 몇 년 전부터 힘을 쏟고 있다. 스마트폰·비디오게임기·TV 등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자가 음악·영상·금융 서비스 등을 줄기는 디지털융합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소니는 하드웨어 판매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트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리커링(Recurring)’ 서비스에도 도전하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은 본업을 고집한 기업들이다. 대개 자동차 회사가 그렇다. 도요타는 2017 회계연도에 2조엔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년 전 미국에서 대량 리콜 사태와 리먼 쇼크의 충격으로 판매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던 때와 딴판이다. 2008년에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사업 확대 노선을 멈추고 모든 개발·생산 공정을 재검토하고 조정했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의 판매 호조로 2017년 세계 판매 대수 1038만대를 기록했다. 혼다(예상 영업이익 7750억엔)·스바루 (3800억엔)·스즈키(3000억엔)·마쓰다(1500억엔) 등도 본업에 집중해 높은 수준의 영업이익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북미 시장에서 어코드와 시빅 두 간판 차종 판매에 집중했고, 스바루는 미국 마니아 시장을 겨냥했다. 스즈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 시장을 집중 공략해 압도적인 선두 기업으로 섰다. 각자 자신의 특징과 강점을 내세우고 키워 높은 실적을 올렸다.

세 번째 유형은 해외 기업과의 과감한 제휴에 사운을 건 기업들이다. 샤프와 닛산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샤프는 액정·LCD TV 사업의 부진으로 2012년부터 4년 간 총 1조엔의 적자를 내고 경영 위기에 빠졌다. 샤프는 자주 재건을 포기하고 대만 홍하이의 산하로 들어가 기업 재건에 나섰다. 애플 아이폰의 생산 위탁 업체인 홍하이는 샤프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 홍하이는 샤프의 주식 60% 이상을 취득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사장 파견을 시작으로 생산·구매·인사· 거래조건 등을 차례로 개선했다. 비용 절감을 거듭하는 한편 홍하이가 샤프의 액정 패널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이런 재건책이 효과를 거두며 샤프의 2017 회계연도 예상 영업이익은 930억엔으로 치솟았다.

닛산에게 2017년은 역사적인 한 해였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의 세계 판매 대수가 1060만대로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2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1위는 판매량 1074만대를 기록한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차지했다. 닛산은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닛산의 선택은 르노와의 ‘글로벌 얼라이언스’ 형성이었다. 1999년 르노와 상호출자 등 포괄적 제휴에 합의했다. 르노 출신 사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출자를 통해 신규 자금을 확보하고 투자도 확대했다. 단기간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르노닛산은 세계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다. 2016년에는 닛산이 미쓰비시 자동차의 대주주로 올라서 현재 세 회사가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형성하고 있다. 닛산의 2017 회계연도 예상 영업이익은 5650억엔이다. 샤프와 닛산의 성공적인 재건은 ‘외국 기업에 팔리는 국내 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있다.

2017 회계연도에 영업이익이 1조엔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일본 기업은 4~5개, 1000억엔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기업은 100개 안팎이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일본 대기업의 실적 호조가 사실상 완전고용으로 이어질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 나아가 일본 경제가 완전 부활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은 ‘노(No)’다. 주가가 이유를 말해 준다. 최근 몇 년 간 세계적인 주가 랠리가 벌어지고 있다. 이례적이라고 할 만하다. 다우지수는 2008년 말 8776t선에서 올 3월 5일에는 2만4874선으로 올랐다. 한국·독일·인도 등도 마찬가지로 역대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주요 상장기업이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올린 일본은 어떨까. 닛케이 평균지수는 리먼 쇼크가 발생한 2008년 말 8859엔에서 올 3월 6일 2만 1417엔으로 껑충 뛰었다. 2.5배 수준으로 올랐다. 그렇지만 이는 역대 최고치는 아니다. 닛케이가 최고 기록을 달성했던 1989년 12월 29일의 3만8957엔과 비교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아직까지 침체에서 허덕이는 기업이 많이 남아서 그렇다. 도요타·소니·히타치·미츠비시·닛산·도레이·후지필름처럼 한국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을 거쳐 부활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지 못한 채 침체에 빠진 기업도 적지 않다. 이런 기업들이 전체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어떤 기업이 아직까지 늪에 빠져있는 걸까. 대체로 전기·건설·조선·전력·지방은행 등 특정 산업군의 기업들이다. 1980년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일본의 한 전기메이커는 음향·영상 기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할 때를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조선업의 경우 글로벌 산업 재편에 뒤처져 사업 축소와 인력 감축을 거듭하며 기업 크기도 점차 쪼그라들고 있다. 전력회사와 지방은행은 정부 규제로 신규 사업자에 대한 진입 장벽이 생긴 덕에 살아남았다. 다만 성장전략을 그릴 수 없는 상태다. 중견 건설업체들은 여전히 공공사업에만 의존하고 있다. 자기 혁신을 못하거나 규제와 정부 보호·감시 아래에 있거나 공공 사업에만 의존하는 기업들이 어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본 상장사의 영업이익 순위를 나열하면 과감한 경영혁신을 계속한 기업의 이름이 위에서부터 늘어서 있다. 이에 비해 주가가 부진한 기업 순위를 보면 버블경제 붕괴의 후유증이 아직까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경제가 부활했다지만 실제 일본 경제와 산업의 재생 작업은 아직 절반의 성공에 불과한 상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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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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