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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개미들이 늘 루저일 수밖에 없는 이유 

 

서명수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
확증편향과 ‘고양이와 수탉’…믿고 싶은 것만 믿다가 백전백패

기원 전 6세기 그리스의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인간의 심리를 동물의 행동에 투영한 우화집이다. 이솝은 정글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비법을 번득이는 재치로 풀어내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이솝 우화의 “숲 속의 두 마리 새보다 손 안의 한 마리 새가 낫다”를 인용하며 비효율적 숲 이론을 제시했다. 투자자 행동과 관련이 있는 이솝 우화 이야기를 읽으며 성공 투자의 길을 모색해본다.


▎투자의 귀재 미국의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개인들의 확증편향을 역이용해 큰 돈을 벌었다.
고양이가 수탉을 잡아 날카로운 발톱으로 목을 짓눌렀다.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수탉은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양이님 나는 당신에게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죠?” 고양이는 수탉을 잡아먹을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싶었다. “너는 쓸데없이 한밤중에 일어나서 시끄럽게 울어대잖아. 너는 사람들의 잠을 깨우는 귀찮은 존재야.” 하지만 수탉은 그것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일을 하러 나가는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입니다.” 고양이는 수탉을 잡아먹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댔다. “너는 달걀도 못 낳으면서 주인이 주는 모이만 축내잖아.” 그러나 수탉은 이번에도 그 이유를 말했다. “제가 모이를 많이 먹는 것은 오직 주인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몸이 튼튼해야만 암탉들이 더 많은 알을 낳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병아리들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더 이상 수탉을 잡아먹어야 하는 이유를 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내가 어떻게 변명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그렇다고 내가 이대로 쫄쫄 굶고 있을 수는 없는 없으니까.” 고양이는 말을 마치자 마자 곧바로 수탉을 잡아먹었다.

이미 수탉을 잡아먹기로 마음을 먹은 고양이한테는 수탉의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자는 원래 상대를 힘으로 누르려 하는 경향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 진실이라고 믿고 밀어붙이다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첫 인상 효과라는 것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인상이 나빠 보이면 마음 속에 안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박히고,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그것봐, 내 생각이 맞아어“라며 스스로 의미를 크게 부여해 버린다. 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단점은 쉽게 묻혀버리고 장점은 더 크게 부각시켜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만을 계속 모으게 된다.

모든 정보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심리적 기재가 작용한다. ‘확증편향’이 그중 하나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신념이나 이익에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신념이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정보는 보려하지도, 또 들으려 하지도 않는 심리학적 용어다. 1960년 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이 제시한 개념이다. 확증편향자의 전형적인 특징은 모든 정보를 팩트와 상관없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생각한 것만이 진실이고 그 이외의 것은 모두 잘못됐다고 믿는다.

확증편향은 왜 생기는 것일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의견에 관한 주장을 하려면 그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만 찾게 된다. 반대되는 의견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간과된다. 의견에 긍정적인 증거는 과대평가되고 부정적인 증거는 과소평가돼 결국에는 점점 자기 확신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자기 확신의 이면에는 틀리기 싫어하는 자존심같은 것이 깔려 있다. 어느 누구도 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존심이 세다면 틀렸을 때 입는 마음의 상처를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의견이 맞기를 원하고 다른 부분은 잘 안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항상 맞을 수는 없는 법이다.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매번 100% 맞기를 바랄 수 있을까. 모든 상황에서 한 가지만 보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리더나 전문가 등이 자신의 권력이나 권위, 전문가적 지식을 이용해 왜곡되고 편협한 생각을 밀어붙이거나 하면 불행한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공범 관계였다. 국민들은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어떻게 일개 아줌마에게 국정을 맡기다시피 할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사태가 이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최 씨의 말만을 듣고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참모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귀를 열고 여론을 수렴해 국정을 펼쳐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국민 여론은 고사하고 참모의 말도 거의 듣지 않고 최씨 한 사람한테만 의존했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은 ‘확증편향자’일 가능성이 크다.

재산이 걸린 주식투자에서도 개미들은 자주 확증편향에 빠진다. 개미들이 늘 루저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는 백전백패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확증편향은 특정 종목에 많은 자금이 투입됐을 때 더욱 강해진다. 주가가 상승할 때엔 긍정적 방향으로, 하락할 때엔 부정적 방향으로 아전인수식 해석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가령 주가가 오르고 시장이 들썩이면 경제신문이나 증권사이트의 구독자가 급증한다. 기사내용은 다 엇비슷하다. 유망 종목, 돈 번 투자자 들에 관한 이야기며 주식 호황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구독자들이 신문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는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아예 무시하기도 한다. 주가가 오르고 있는 보유종목에 투자한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고 인정해 주는 기사만 골라 읽는다. 하지만 시장이 하락기로 접어들면 이상하게도 경제신문이나 증권 전문지의 인기가 시들해져 구독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아진다.

실제로 인테넷이 발달하기 전 시장 정보의 주 접근 통로였던 경제신문들은 시장 하락기에 판매가 급감해 골머리를 앓았다. 시장 하락기엔 가치있는 정보가 더 필요한 데도 그렇다. 신문을 끊는 것은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의 아픔을 되새김해 주는 기사를 보기 싫어서가 아닐까. 그러다 손실폭은 더 커지고 결국에는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 심정에 빠진다. 결국 엄청난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주식을 처분하지만 그 때는 주가가 바닥인 경우가 많아 땅을 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조지 소로스, 투자자의 확증편향 역이용해 큰 돈

사들인 주식 가격이 하락해 어느 선에 이르면 가차없이 처분하는 손절매는 꼭 필요한 투자자세다. 기관투자가 같은 전문 투자자는 대개 손절매에 들어가는 주가하락률을 20% 정도로 잡는다고 한다. 그러나 개미들은 보유 주식이 이 정도로 하락해도 처분하지 못한다. 오히려 보유 종목에 유리한 기사나 증권사 자료만 열심히 찾아다니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애쓴다. 그러는 사이 주가는 더 떨어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개미들의 확증편향을 역이용해 큰 돈을 번 사람도 있다. 투자의 귀재 미국의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이다. 그는 시장에 거품이 생겼다 꺼졌다하는 것은 투자자의 확증편향이 크게 작용한 때문으로 보고 이를 이용하면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재귀성 이론’을 주장했다. 시장 상황과 시장참여자 사이에 작동하는 재귀성으로 주가가 변동하고 시장에 거품이 생긴다는 것이다. 주가 거품은 현실과 투자자의 편향성의 간극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까지 이어지다 꺼지고 만다. 그 전환점을 파악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재귀성 이론이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32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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