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트럼프와의 담판에 걸린 김정은의 경제재건 야망 

 

김영희 안보·국제문제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대기자)
판문점 회담의 3대 의제는 비핵화, 남북관계 진전, 한반도 평화체제였다. 중요하다고 생각된 경제가 빠진 것이 눈에 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리 한 말이 있다. 문 대통령은 4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원로 자문단 회의에서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이 대북 국제제재 상황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경제협력은 대북제재의 제한을 받는 것이 많다. 그래서 대북 제재의 전열을 흩트리는 경제협력은 부각시키지 않고 전면에 내세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현명하고 현실적인 판단이다. 북한 지도자가 처음으로 남한 땅으로 내려와서 열리는 최초의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성에 현혹돼 남북 경제공동체까지 깊이 논의한다면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불신, 국내 보수진영의 반발은 남북관계 진전 자체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대북 제재에는 큰 혼선이 일어날 것이다.

경제계가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모두 3개조의 판문점 선언에는 경제에 관한 항목이 세 개나 들어 있다. 제1조 3항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에 설치하기로 했다는 합의는 두 가지 큰 경제협력의 전망을 여는 것이다. 하나는 개성공단의 재개를 시야에 둔 것이다. 개성공단이 재가동돼 공단 입주기업들이 복귀하고 초기 단계의 북한 근로자 5만여 명과 그 가족을 합하면 남북 이해와 협력의 공간은 상상 이상으로 넓어진다. 개성은 궁극에 가서는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큰 규모의 경제 클러스터로 발전해 남북과 중국 경제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서해 평화번영의 시대를 열 것이다. 여기는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이 예상된다.

둘은 동해선·경의선 철도를 연결하고 나란히 고속도로를 닦는 일이다.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쪽으로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고 말하자 김정은은 북한 교통인프라의 미비로 민망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교통 인프라는 북한 경제 재건의 알파요 오메가다. 동해선과 경의선의 연결과 도로 건설은 단순히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그치지 않는다. 연결된 동해선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만나 유럽의 파리와 런던으로 달린다. 물류 이동의 시간이 그만큼 단축된다. 경의선의 연결은 중국 횡단철도(TCR)를 통해 유럽으로 간다. 그래서 두 사업은 모두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대륙 진출의 길이 필요한 일본도 대륙행 버스에 얼른 올라탈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동해선과 경의선 연결 사업은 자체만 해도 정부가 보증하는 안정적인 대북 투자다. 특히 북한의 교통 인프라의 큰 부분이 완성될 때쯤 되면 한국 기업들은 다른 분야에서 이미 대북 투자나 합작기업 설립에 많은 진전을 보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통치이념은 선군정책이었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2018년 신년사와 평창 올림픽을 전환점으로 대화로 전환한 김정은은 4월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이름으로 핵·경제 병진에서 핵을 내리고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혁명적인 노선 전환이다. 왜 그런가?

김정은의 권력의 정통성은 미국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핵 미사일과 개선 도상에 있는 경제 개선에서 나왔다. 그러나 두 가지 불편한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 경제제재로 경제적으로 심각한 압박을 받았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태도 변화가 자신의 북한 압박 정책의 결과라고 자랑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그래서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온다. 둘은 미국의 군사적인 옵션이 진지하다는 사실을 중국을 통해서 알았다. 김정은이 그렇게 경원하던 시진핑을 서둘러 방문한 것도 미국의 선제공격 옵션과 무관하지 않다. 핵과 경제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고 생각된 김정은 체제에서 핵이라는 한 쪽 바퀴가 빠지려고 한다. 그러면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정통성의 절반이 사라진다. 그 절반을 김정은은 경제로 채워야 한다. 북한 경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핵을 포기한 북한이 연 평균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10년 이상 계속해야 북한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경제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연 평균 10% 이상, 최고 15%까지의 성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달러 조달이 문제다. 그래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김정은의 합의를 받아내야 한다. 반면에 김정은은 비핵화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아내야 한다. ‘충분히’는 어느 수준인가. 군사 정치적으로는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이다.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정착과 맞물려 있어 문 대통령의 치열한 중재 노력이 필요하고 또 예상된다.

경제적으로는 대북 제재 해제→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등에서 장기 저리의 차관을 받을 수 있는 조건 만들기→북일 국교정상화로 일본이 북한에 조선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으로 200만~300만 달러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속된 표현으로 ‘빈집에 황소’ 들어가는 달러 러시가 없이는 김정은의 정통성 창출에 필요한 수준의 경제 성장, 주민들의 생활 개선은 불가능하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특히 김정은이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 KBS 여론조사에서 판문점 회담을 성공으로 본다 94%, 김정은과 북한 달라졌다 74%로 나온 것이 한국인 전체의 대체적인 평가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위장 평화쇼라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어깃장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의 마무리는 김·트럼프 정상회담의 몫으로 남겨졌다. 전망은 좋아 보인다.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 대북 강경파였다. 그는 CIA 안에 ‘코리아 작전센터(Korea Operation Center)’를 만들고 한국계인 앤드루 킴을 소장에 앉혔다. 폼페이오는 4월 초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회담하고 만취상태까지 함께 술을 마시면서 흉금을 털어놓은 대화를 했다. 매(hawk)로 평양에 갔던 폼페이오는 비둘기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부터 트럼프의 김정은에 대한 트윗상의 평가도 꼬마 로켓맨에서 존경할 만한 훌륭한 사람으로 돌변했다. 판문점 회담도 성공으로 평가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회담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정치·안보·경제 질서에 지각변동적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비핵화의 구체적·단계적 이행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 대로 디테일에서 악마가 튀어나올 수 있다.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걸림돌이다. 북한 붕괴론자, 선제 공격론자인 볼턴은 김정은에게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요구한다. 김정은은 단계적·동시적 해결을 주장한다. 핵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던 리비아 방식은 실전 단계의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적용될 수 없다. 볼턴의 그런 주장은 임기 내 비핵화, 연내 노벨평화상 수상을 바라는 트럼프에게는 성가신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설계하고 주도한 네오콘의 핵심 멤버다. 트럼프가 그런 사람을 안보보좌관에 임명한 것은 폼페이와와 함께 김정은의 기를 꺾을 강팀을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볼턴이 트럼프의 의지에 반한 시대착오적인 네오콘 노선을 고집한다면 트럼프는 그를 즉각 해임해야 한다. 트럼프는 북미 협상이 동북아의 역사를 바꾼다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1433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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