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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기자의 ‘라이징 스타트업’(25) 에스지로보틱스] 의료 재활 웨어러블 로봇의 선두주자 

 

최영진 기자
평창 동계 패럴림픽 성화 봉송에 ‘워크온 슈트’ 선보여…LG전자가 투자한 첫 스타트업

▎4월 26일 서울 신수동의 에스지로보틱스 사무실에서 만난 공경철 대표가 패럴림픽 성화 봉송에 이용된 워크온 슈트를 설명하고 있다. / 사진:전민규 기자
지난해 8월 평창 동계 패럴림픽 대회 조직위원회의 한 사무실.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대회 성화 봉송 매니저는 그의 발표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회의실은 그렇게 15초 정도 적막이 흘렀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매니저는 “이거는 넣어야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화 봉송이라는 스토리를 더하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 슈트’가 패럴림픽 성화 봉송을 통해 세계에 소개되는 기회를 얻은 순간이었다.

지난 3월 3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패럴림픽 성화 봉송이 시작됐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패럴림픽 성화 봉송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한국이다. 패럴림픽은 1948년 영국 스토크맨더빌에서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성화 봉송이 시작된 것은 1988년 서울 장애자올림픽 때부터다. 서울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 문 아래에 성화가 설치돼 365일 내내 불이 켜져 있는 이유다. 또 다른 점이 있다. 올림픽 성화는 그리스 아테네 헤라 신전에서 채화되지만, 패럴림픽 성화는 영국 스토크맨더빌과 한국에서 채화가 이뤄진다. 이번 평창 패럴림픽 성화는 제주·안양·논산·고창·청도 등 국내 5개 권역과 영국 등 8곳에서 채화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합화했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의 희망


▎지난 3월 3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열린 평창 동계 패럴림픽 성화 봉송 첫 번째 주자는 워크온 슈트를 착용한 이용로(중앙)씨였다. 공경철 대표(왼쪽)가 이용로씨의 보행을 돕고 있다. / 사진:에스지로보틱
합화식 행사가 열린 후 첫 번째 성화 봉송 주자는 ‘워크온 슈트’를 착용한 이용로(57, 체육학 박사)씨였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고, 이후 걸을 수 없던 이가 워크온 슈트 덕분에 성화 봉송까지 하게 된 것. 워크온 슈트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걷게 하는 ‘기적 아닌 기적’을 보여줬다. 워크온 슈트는 2017년 2월 에스지로보틱스를 창업한 공경철(36,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 대표가 개발한 장애인 보행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이다. 공 대표는 “패럴림픽 성화 봉송이 한국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것도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며 웃었다.

워크온 슈트는 성화 봉송 이전에도 이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16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대회 외골격 착용 로봇 종목에서 세계 3위를 하면서다. 당시 숙제로 주어진 6개의 관문을 통과한 팀은 3팀 밖에 없었을 정도. 공 대표는 “사이배슬론 대회에 나간 워크온 슈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이번 성화 봉송에 사용됐다”면서 “신체에 가해진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무게중심을 낮췄고, 디자인도 고도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이용로씨가 착용한 증강현실(AR) 글래스다. LG전자와 에스지로보틱스가 협업해 개발한 제품이다. 워크온 슈트를 착용하고 보행을 하려면 워크온 슈트에 적용된 화면을 보고 걸어야만 했다. 공 대표는 “하반신 마비자가 워크온 슈트를 착용하고 걸으려면 가슴이나 스마트 목발에 설치된 모니터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위험하다”면서 “LG전자와 협업으로 개발한 AR 글래스는 이런 불편을 해결해줬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30억원을 우리에게 투자했는데, 첫 스타트업 투자였다. 대기업과 함께 협업하면서 웨어러블 로봇 사용의 불편함을 하나씩 해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워크온 슈트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이배슬론 대회 도전이다. 이 대회는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2020년에 또 열린다. 공 대표는 “2020년 열리는 사이배슬론 대회는 지난 대회와는 전혀 다른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2016년에는 지팡이를 사용했지만 2020년에는 지팡이 없이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걷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 대회는 정말 차원이 다른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웨어러블 로봇 상용화 올해 가시화

에스지로보틱스는 워크온 슈트 외에도 ‘엔젤렉스’라는 웨어러블 로봇도 개발했다. 워크온 슈트가 거동이 불가능한 이들을 위한 로봇이라면 엔젤렉스는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이다. 엔젤렉스는 2017년 2월 두바이에서 열린 로봇 디자인 대회 ‘UAE 로보틱스 포 굿’에서 아시아팀 중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했다. 공 대표는 “이 제품을 상용화하는 데 가장 큰 경쟁자는 지팡이”라며 “보행이 불편한 이들이 부담 없이 엔젤렉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기능을 만드는 게 우리의 숙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 큰 행사에 초대됐다. 4월 20일 서울 강서구 마곡에서 열린 ‘LG사이언스파크’ 오픈 행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시선을 끌었던 행사였다. 이날 공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로 무대에 올라 스타트업 진흥책과 창업가로서의 어려움 등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3분, 실제로는 6~7분 정도 발표를 했다고 한다. 공 대표는 “그날 문 대통령과 장관에게 에스지로보틱스가 개발한 제품 시연도 하고, 창업가로서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공 대표의 올해 목표는 워크온 슈트와 엔젤렉스 상용화다. 이를 위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가장 시급한 것이 인증이다. 인증을 받고 품목허가를 받으면 시중에서 판매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워크온 슈트와 엔젤렉스는 기술자 중심으로 개발을 해왔다”면서 “아무리 좋은 기술이 사용됐다고 해도 사용자가 살 만한 것인지, 불편하지 않은지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의료 재활 시장 진입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면, 이제 공 대표에게 남겨진 숙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는 “의료 재활 시장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세우면 다음에는 근로자의 작업을 지원하는 웨어러블 로봇 시장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엔젤렉스는 올해 인증을 받을 계획이고, 워크온 슈트는 내년 초 의료 재활 시장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 대표가 염두하고 있는 근로자 작업 지원 웨어러블 로봇 시장 규모는 2026년 이면 5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1433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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