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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철강 관세부터 올린 이유는?] 기술 따라잡지 못하니 가격 흔드는 전략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시설투자 비용, 기술 격차 때문에 주요 변수는 가격…환율도 가격에 영향 미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했던 대로 3월에 중국을 겨냥한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시작은 철강이었다. 미국은 3월 23일부터 철강은 25%, 알루미늄은 10%의 수입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브라질·멕시코·호주·아르헨티나·유럽연합(EU)·한국은 5월 1일까지 관세 부과가 한시적으로 면제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면제 협상국 중 가장 먼저 협상을 마쳤다. 관세는 면제되나 2015~2017년 간 평균 판매량의 70%에 해당하는 쿼터를 적용받았다. 수입 쿼터제도는 정해진 수량만큼만 수입을 허용하는 조치다.

미국은 자국 철강공장 가동률을 올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미국의 2017년 평균 철강 설비 가동률은 약 74% 수준이다. 이를 80% 수준으로 올리려면 최소 1300만t을 더 생산해야 한다. 그만큼 철강 수입을 막아야 한다. 2017년 미국의 철강 수입의 약 37%에 해당한다. 시작은 철강이었지만 중국과 미국이 서로 보복에 가까운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보호무역이 불러올 세계 교역 축소, 그리고 이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포스코·고려아연 등 기술력 압도적


트럼프가 철강산업부터 관세를 부과한 건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정하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4월11일 팟캐스트 ‘이리온’ 녹화 스튜디오에서 “철강산업은 막대한 시설 투자비용, 기술 격차 때문에 결국 가격으로만 움직이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리온은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2016년 시작한 경제 팟캐스트다. 윤지호 리서치센터장은 이날 “원자재나 소재 산업의 ‘해자’는 낮은 비용의 생산, 신기술 딱 두 개”라며 “원자재를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기업이 있는 상황에서 싸게 못 받아오면 죽는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는 경쟁사가 넘볼 수 없는 뛰어난 제품, 경쟁사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시장점유율을 뜻한다.

정하늘 연구원은 “포스코가 승자가 된 건 선진국이 따라오지 못 하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기술 경쟁력은 굉장히 뛰어나다. 미국이 철강 제품에 관세를 매기려는 이유도 기술을 못 따라오기 때문에 가격을 건드려서 승부를 하려는 것이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법을 적용한 후 더 좋아지고 있다. 고려아연에는 퓨머라는 기술이 있다. 원광의 30%는 버리는 건데, 여기서 다른 부산물을 뽑아낸다. 거의 99%를 뽑아낸다.”

철강산업은 어느 나라에서나 기간산업이다. 경제성장률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경기에 따라서 공급을 줄일 순 있어도 늘리기는 힘들다. 제품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7년 동안 10조원을 투자해 고로를 만들었다. 수요가 는다고 해서 고로를 뚝딱 만들어낼 수 없는 구조다. 매출총이익률이 다른 업태에 비해 낮다. 원재료 가격이 곧 제품가격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관세와 함께 환율 카드도 들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에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결과에서 한국 정부와 환율에 관한 협상을 했다고 명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건 현 시점에선 결국 원화가치 절상이다. 철강제품의 주요 시장은 현재 중국이다. 미국 수출량의 두 배 이상을 중국에 수출한다. 그럼 중국 철강 수요는 어떨까? 우려와 기대가 혼재해 있다. 철강제품의 수요는 주로 부동산 건설, 인프라 건설에서 나온다. 중국 수요에 대해 엇갈리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중국의 철강제품 생산량이 최근 몇 년 간 크게 늘었는데 부동산 건설 투자는 줄어드는 경향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 부동산 건설 투자를 늘리면서 부채도 크게 늘자 민관합작투자(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 제도를 도입했다. 발주를 중앙이나 지방정부가 하고, 민간기업이 입찰에 참여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시장 자정효과는 없었다. 지방정부 예산의 10% 이내에서만 PPP를 하게 돼 있지만, 지방정부가 채권 발행을 남발해 건설비용을 댔다. 중앙 정부가 전수 조사에 들어가 지난해 공사가 많이 취소됐다. 더군다나 PPP는 확정수익률을 제시하는데 금리가 오르면 이익이 줄어든다. 민간기업이 금리 인상기에 지방정부가 발주한 건설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없어진다. PPP 규모가 작년보다 줄진 않았지만 더 많이 늘어날 거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까지가 중국발 수요 약화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근거다.

중국 시멘트 가격 보면 철강 수요 보인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를 알려면 먼저 중국 내 토지매입증가율을 봐야 한다. 대부분 부동산 지표는 한달 정도 차이가 있다. 그 달에 마감하고 15일 후에 발표하기 때문이다. 토지매입증가율은 다르다. 선행지수에 가깝다. 중국은 디벨로퍼가 1년 안에 공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전체 투자비용의 50%를 정부에 내야 한다. 그래서 토지매입을 극도로 보수적으로 한다. 때문에 토지매입이 증가하면 공사를 곧 시작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하반기 중국 경제는 시진핑 시대를 알리는 중요한 국가행사인 전인대가 있었다. 환경보호를 위한 동절기 감사도 있었다. 중국에선 감사 기간에 공장을 멈추고, 공사도 중지한다. 그런데도 중국의 토지매입증가율은 지난해 12월 2.4%로 낮아졌다가 2018년 2월 9.9%로 반등했다. 그만큼 실제 착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또 봐야 할 건 중국의 시멘트 가격이다. 시멘트 가격은 현재 3주 연속 올랐다. 시멘트가 건설에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시멘트는 금융화가 가장 덜 된 자재다. 그래서 실제 필요한 데이터가 가장 잘 반영된다. 주간 데이터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중국 경제를 확인할 수도 있다. 전주 대비 1~2%씩 올랐다. 이 두 가지 지표를 보면 중국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철강 제품 공급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 중국은 2016년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상위 1% 중국 철강기업의 적자가 무려 50%에 달했고,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았다. 이 결과 중국 철강기업은 수출에 힘을 쏟았다. 싸게 팔았다.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미국이 고율 관세를 매긴 상황에서 만약 중국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이 미흡해 초과 생산이 지속되면 중국 기업들이 또 밀어내기식 저가 수출을 할 것이고, 이는 제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글로벌 철강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국 제품의 밀어내기 수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 2년 간의 중국 철강산업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척됐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정책 목표는 인수·합병(M&A)이다. 중국 상위 10대 철강기업의 산업집중도를 30%대에서 두 배로 올린다는 게 정부의 목표인데, 상위 기업 M&A가 10건은 있어야 달성이 가능하다. 현재까진 두 개 기업만 합병했다. 하지만 중국 철강기업 대부분은 지방정부의 소유다. M&A를 밀어붙인다면 단기간에 가능하다. 더구나 M&A가 있더라도 인력·시설은 그대로 가져가는 중국식 합병의 특징상 과잉 생산은 어렵다.

1433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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