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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분식회계 논란 왜?] 끝없는 탐욕에도 솜방망이 처벌 이어져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조단위 부정에도 투자자만 속앓이…미래 가치 ‘추정’에 유혹의 손길

▎사진:© gettyimagesbank
한때 모뉴엘 신화가 있었다. 로봇청소기 등 가전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가전회사였던 이 회사는 2007년 설립 후 수직상승을 거듭했다. 2010년 1억불 수출의 탑, 2011년엔 2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분식회계로 파산했다. 제조 업체라는 모뉴엘 재무제표에 생산설비인 시설장치 및 공구, 기구 금액이 처음 등장한 건 2010년이다. 그나마도 28억원 규모였다. 제조 업체가 3년 동안 생산설비 없이 매출 2617억원을 올렸다. 2010년에는 28억원 규모의 생산설비로 매출 3000억원을 달성했다. 디자인만 내부에서 하는 회사도 있으니 일단 생산설비 문제만으로는 분식회계라는 확신을 못 했다고 치자. 그래도 모뉴엘 회계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멀쩡한 매출채권을 금융회사에 넘기고, 금융회사가 외상금 채권추심을 대신 수행해 매출채권 대금 일부를 할인받는 팩토링 금액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급격하게 증가했다. 팩토링은 결국 매출채권을 다 회수하지 못 하기 때문에 회사에는 큰 손해다. 그럼에도 팩토링이 늘어난다는 건 회사가 심각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매출액이 폭증하는데 팩토링도 함께 폭증한다는 건 실제 매출이 아니어서 회사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역보험공사는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모뉴엘을 보증해줬고, 시중은행들은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믿고 이 회사에 막대한 대출을 해줬다.

미국에선 ‘사기 회계’로 불러

분식회계는 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려고 사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재무제표 등을 허위로 기재하는 행위다. 우리는 회계 부정이라고 하고, 미국에선 ‘사기 회계(accounting fraud)’라고 한다. 미국에서 쓰이는 사기 회계가 본 의미와 가장 가깝다. 분식회계의 문제는 단순히 불법을 저지른 회사가 과징금과 징계를 당하는 데 그치지 않는 데 있다. 모뉴엘 사건처럼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은행이 대출을 해줘서는 안 되는 회사에 대출을 해줘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하고, 상장사의 경우 주주 등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날리는 일이 벌어진다.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년이 넘는 특별회계감리 끝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 짓고, 지난 5월 1일 ‘조치 사전통보서’로 이 회사와 감리 담당자인 회계법인에게 알렸다. 조치 사전통보서란 금융감독원이 위반 사실과 추후 조치 내용을 통보하는 절차다. 분식회계를 적발해 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최종 결정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감리위원회에서 내린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는 2015년 설립 이후 4년 연속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하다가 단숨에 1조9000억원의 흑자를 올린 부분에서 발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3300억원을 합작 투자해 세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고, 이 회사 지분의 시장가격을 4조8000억원으로 평가해 이 가치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장부에 반영했다. 이렇게 시장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던 건 바이오젠이 5.4%인 지분을 최대 ‘50%-1주’ 살 수 있는 콜옵션 권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측은 이 기간 바이오젠이 주식을 취득해 이사회가 어떻게 운영되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율이 50%가 넘는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분류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2016년 5월 당시 비상장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이 일자 금융감독원은 한국공인회계사협의회에 감리를 요청했다. 금융감독원은 비상장사의 경우 외부 단체에 감리를 위탁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 해 11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을 강행했다. 금융감독원은 상장사가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특별회계감리를 2017년 5월 시작했고, 그로부터 1년 후 분식회계라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른 제재 등의 조치는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를 거쳐 확정된다. 감리위원회에 상정된 금융감독원의 제재안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2005~2015년 금융감독원이 상정한 징계안 중 15% 정도가 감리위원회에서 약한 제재로 수정됐다. 다만 이번엔 감리위원회의 심의가 아니라 삼성 측 요청에 따라 법원처럼 금융감독원과 공방을 벌일 수 있는 ‘대심제’로 열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식회계의 역사는 깊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 분식회계 사건에 대한 처벌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의 원조이자 백화점 격인 기업은 옛 대우그룹이다. 2005년 검찰은 대우그룹이 저지른 분식회계 규모가 41조원 규모라고 밝혔다. 전통적인 기법인 매출 부풀리기, 자산 부풀리기가 많이 쓰였다. 대우 무역부문은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수출계약서·선하증권 등을 가짜로 만들어 국내 은행에서 수출어음을 할인받아 매출을 만들었다. 대우 건설부문도 건설공사 수주를 받은 적이 없는 10개 국가에서 인도 자동차공장 공사 등 공사를 한 것처럼 꾸며 각 국가별 가짜 재무제표로 1998년 5000억원이 넘는 가짜 당기 순이익을 만들었다. 대우자동차는 계열사 대우차판매에 차량 1만3000대를 판 것으로 위조해 1000억원이 넘는 가짜 매출채권을 만들었다. 실제 수출이 없었는데도 수천억원대 설비와 장비 공급 계약서를 만들어 이를 매출로 잡기도 했다. 매출과 자산을 허위로 늘리는 동시에 대우는 부채를 허위로 축소했다. 1996년 대우자동차는 스위스 UBS로부터 2억 달러를 빌리면서 아르텍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중간에 내세워 마치 외자 유치로 자본금이 2억 달러 늘어난 것처럼 꾸몄다. 재고자산을 허위로 늘려 잡고, 회수가 불가능한 매출채권을 우량채권으로 만드는 일도 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은 1999년 출국해 무려 5년8개월 간 해외 도피생활을 하고 나서 2006년 항소심에 출석해 추징금 17조8000억원에 징역 8년6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1년 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다. 추징금은 여전히 미납 상태다.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사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인 2003년엔 SK글로벌이 1조5817억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검찰에 적발됐다. 자산과 이익을 부풀리는 방법을 썼다. 해외 법인과 외상매입금을 위조했다. SK글로벌은 제품·원자재 등을 구매하면서 물건을 받고나서 대금을 치르지 않은 외상매입금을 장부에서 누락시켰는데, 이 액수가 1조원이 넘었다. 해외 법인이 손실을 입었는데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으며, 가짜 매출채권을 버젓이 회계장부에 기입해 넣었다. SK글로벌이 이처럼 불법 행위를 했던 이유는 SK증권이 미국 JP모건이 판매하던 태국 바트화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1997년 2000억원대 손실을 입은 게 발단이었다. JP모건은 SK증권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회사를 살려내는 듯했지만 이는 SK가 나중에 이자까지 쳐주면서 다시 사들이기로 이면계약을 맺은 결과였다. 막대한 손실을 SK글로벌 해외 법인들이 떠안았고, 이를 포함한 기존 적자를 감추려고 분식회계를 했다 최태원 회장은 당시 구속기소됐다가 7개월 후 보석으로 풀려났고, 최종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석달 후 광복절특사로 사면됐다.

대규모 분식에도 총수의 사면·복권 반복

최근에도 분식회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기업·중견기업·벤처기업 등 규모와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기업들이 분식회계에 나서는 건 기본적으론 경영 실패를 감추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대규모 적자가 나면 상장, 투자유치, 사업을 하는 데 필수적인 서류발급 중단 등의 문제가 생기고 이는 다시 사업 악화로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은 공사 진행률을 조작해 회계장부를 부풀려 2013년 4409억원, 2014년 4711억원의 흑자를 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2015년 5월 새로운 경영진이 전 경영진 시절의 부실을 털어내는 이른바 ‘빅배스(Big bath)’를 하면서 회계를 바로잡자 2013년 7784억원, 2014년 7429억원의 적자를 본 사실이 밝혀졌다. 대우조선해양에게는 45억원 과징금, 회계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에는 영업정지 1년의 징계가 내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는 수주산업의 특징을 활용한 것이다. 공사 등 수주를 하는 기업은 실제 현금이 들어오는 것과 상관없이 프로젝트의 총 원가에서 실제 발생한 원가 비율을 기준으로 매출을 잡는다. 만약 사업 총원가가 100억원이고 지금까지 70억원이 들어갔는데 수주금액이 110억원이면 매출은 77억원이 된다. 실제 발생한 원가를 총 원가로 나누고 여기에 수주금액을 곱한 게 매출이기 때문이다. 분식회계가 들어가는 부분은 현재 시점에서 전체 원가를 추정하는 부분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발주처가 설계를 변경했고 그 밖에도 원가 증가가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이를 추정치에 반영하지 않고 매출을 늘려잡았다. 회사의 가치든 프로젝트의 비용이든 현재 시점에서 미래의 가치를 ‘추정’하는 곳에 대부분의 분식회계가 숨어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이미 해외 도피나 특사 등으로 빠져나가고 법인과 투자자 등이 민사소송을 오랜 기간 벌여야 하는 구조에서 분식회계를 하지 말라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개인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떤 부분을 잘 살펴야 할까? 금융감독원은 자주 쓰일 법한 분식회계 기법을 골라서 이 부분을 집중 단속하는 테마감리 제도를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회계 기획감리실은 지난해 12월 최근 발생한 회계의혹, 감리지적 결과, 해외 사례 등을 감안해 2018년 테마감리 때 중점 점검할 4가지 회계 이슈를 ▶개발비 인식 및 평가 적정성 ▶국외 매출 회계처리의 적정성 ▶사업결합 회계처리의 적정성 ▶매출채권 대손충당금의 적정성으로 정했다. 최근 5년 간 테마 감리 회계 이슈를 살펴 보면 최근의 분식회계 기법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표 참조]. 실사례는 아래와 같다.

회계법인의 ‘합리적 판단’ 부재도 문제


도로포장 업체 A사는 매출액이 급감해 사실상 영업중단 상태였다. A사가 회생절차를 시작하면서 사업에 필수적인 보증서류를 구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사는 도로포장과 관련된 개발비에 대해 손상검토를 하지 않고 누락하는 식으로 개발비를 과대계상했다. A사 감사를 맡은 B회계법인은 개발비 관련 회수 가능 금액을 추정하면서 A사가 제시한 자료가 합리적인지 검토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 A사가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한 사실을 감사의견에 반영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이를 무형자산인 개발비를 과대계상한 회계부정으로 봤다. 무형자산의 자산평가는 자의적인 해석이 많아서 시장가치 하락, 시장의 변화, 성과 미달 등의 손상징후를 간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회계법인이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지침이다.

분식회계라고 하면 매출채권 허위 발행, 해외 법인과의 허수 거래, 재고자산 늘려 잡기 정도를 생각하지만 무언가를 ‘추정’해야 하는 숫자에서 분식회계의 위험도는 극적으로 높아진다. 건설회사인 B사는 사업수지 악화가 예상되는 사업장의 미래 현금흐름을 낙관적인 추정치로 잡고 합리적 근거 없이 채무상환능력을 좋게 평가해 공사미수금에 대한 대손 충당금(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될 때 현 시점에서는 떼인 것으로 잠정 결정하고 대손충당금 항목에 넣는 것)을 과 소계상했다. 아파트 분양공사에서 사업수지는 분양수입에서 투입원가를 뺀 만큼인데, B회계법인은 분양수입을 추정하면서 검증이나 실제치와의 비교 등 확인 절차를 하지 않은 점이 문제였다.

1436호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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