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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자본의 두 얼굴] 시세차익 챙기고 경영권까지 위협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국내에 등록된 외국인 펀드 2만개 넘어…현금 많고 배당성향 높은 기업 먹잇감 될 수도

▎사진:© gettyimagesbank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월 29일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시가총액은 632조1521억원이다. 전체 시가총액의 32.83%를 차지한다. 외국인 투자자의 시가총액은 2016년 429조7344억원, 지난해는 585조1247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보유 비중이 50%가 넘는 종목은 61개다. 이 중 외국인 비중이 가장 큰 곳은 기계제조업체인 이에스산업으로 98.52%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동양생명(84.68%)·한국기업평가(84.5%)·SK텔레콤(83.6%)·LG유플러스(77.25%)·S-oil(76.56%)·한국전력(74.13%) 등 순으로 높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포스코도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50%가 넘는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늘고 있는 점은 국내 증시에 긍정적이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늘어난다는 건 국내 금융시장이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수 상승 모멘텀이 강해진다”며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는 아직까지 저평가돼 있고 최근 정부가 도입한 스튜어드십코드 영향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하자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반기를 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엘리엇이 여론몰이에 나서면 국민연금마저 돌아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급제동이 걸렸다. 엘리엇은 회사와 주주들에게 이득이 돌아가야 한다며 현대차그룹 측에 기아차 소유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주식 적정가치 검토·자산화, 배당지급률 순이익 기준 40~50% 수준 개선 등을 요구했다. 주주인 엘리엇의 주장은 어찌 보면 타당해 보인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명확히 하고, 회사 수익을 증대해 주주가치를 시현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엘리엇과 같은 해외 투기자본은 ‘소액주주를 대변한다’는 명분을 들면서 경영권 간섭을 통해 주가 차익을 거둔 후 빠지는 전략을 쓰고 있다.

SK·KT&G, 경영권 방어 위해 거액 투입

이런 점은 과거 사례에서도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해외 투기 자본의 악연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3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는 외국계 4개 펀드와 연합해 SK텔레콤의 지분 9.85%를 확보하고 SK그룹 경영에 관여했다. 이들은 SK텔레콤의 계열사 지원 등으로 주가가 저평가됐다며 경영진 교체, 사외이사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SK텔레콤은 사외이사 확대, 배당금 상향 등 요구를 받아들이고,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에 2조원을 써야 했다. 타이거펀드는 1년여 만에 지분을 모두 팔고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03년에는 영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 자산운용이 SK 주식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에 오른 뒤 경영 개입을 시도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소버린 역시 SK의 오너가 적은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허점을 파고들었고, 계열사 청산, 경영진 교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SK는 적극적인 백기사 모집에 나서는 등 1조원가량의 비용을 투입한 후 어렵사리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삼성물산이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주식 5%를 매집하고, 경영권 참여와 인수합병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삼성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주가는 올랐고, 헤르메스 그 사이를 틈타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팔아 300억원의 차익을 거두고 떠났다. 2006년에는 미국 억만장자인 칼 아이칸이 KT&G 주식 6.59%를 매입한 후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1명을 확보,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개입을 적극 시도했다. KT&G는 당시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칼 아이칸은 그해 12월 주식을 매각해 약 1500억원의 차익을 얻고 떠났다. 2015년과 2016년에도 엘리엣은 각각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 삼성전자의 분할과 미국 나스닥 상장 등을 요구 조건으로 내세워 압박했다.

이처럼 해외 투기자본은 지배구조에 취약한 국내 기업을 상대로 위협하며 이익을 챙기고 있다. 때문에 오너의 지분율이 낮은 기업들은 이들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이 높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포스코·현대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지역 경영간섭 늘어


문제는 해외 투기자본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또 그동안 이들의 공격 무대가 미국이었다면 최근에는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투기 자본이 기업 의결권을 확보해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한 사례는 총 66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6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인데, 662건 중 106건이 아시아를 무대로 한 것이었다. 이 중 한국에서 벌인 활동은 24건이었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해외 투기자본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외국인 집합투자기구(펀드)는 3월 말 기준 2만1328개로 지난 10년 간 112.7% 증가했다. 개인과 기관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등록한 외국인 투자자의 국적은 미국이다. 3월 말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상장주식 625조1510억원 중 미국 투자자는 41.4%인 259조140억원어치를 갖고 있다. 이는 두 번째로 비중이 큰 영국(47조7270억원)의 7.6%와도 격차가 큰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 증시에서 미국인 투자자, 그 중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자랑하는 펀드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예컨대 헤르메스는 현재 삼성전자·롯데정밀화학·KCC·이노션 등 국내 17개 상장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이들 기업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당장은 아니지만 M&A이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단기 차익을 노려 공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현금과 자사주가 많으면서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노미리 동아대 교수는 ‘헤지펀드 행동주의가 증가한 원인과 대응방안’을 통해 ▶배당 성향이 낮지만 현금성 자산이 많으며 ▶연구개발(R&D)비 비중이 경쟁사 대비 낮고 ▶기관투자가 보유 지분이 많은 기업 등이 해외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3월 말 현재 32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KCC와 롯데정밀화학의 배당수익률은 1~2%대다.

일본처럼 다양한 지배구조 갖춰야


일부에서는 해외 투기자본이 한국식 지배구조에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순기능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주주 행동주의의 역기능도 물론 있지만 이들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가치가 높아지는 건 순기능”이라고 말했다. 김예구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주주 행동주의가 실제로 기업의 장기 성장에 기여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라면서도 “주주 행동주의 투자 이후 해당 기업의 수익성이 평균적으로 향상되며, 향상된 수익성은 장기간 지속된다는 실증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시장과 기업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주주 행동주의의 강화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본구조·지배구조·사업전략 등의 측면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기업들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해 일본처럼 다양한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대기업은 상장사의 경우 ▶이사회+감사역회+회계감사인(감사역회 설치회사) ▶이사회+감사 등 위원회+회계감사인(감사 등 위원회 설치회사) ▶이사회+지명·보수·감사위원회+회계감사인(위원회 설치회사) 등 3가지의 선택로가 있다. 비상장사의 경우 ▶이사회+감사역회+회계감사인 ▶이사회+감사 등 위원회+회계감사인 ▶이사회+지명·보수·감사위원회+회계감사인 ▶이사+감사+회계감사인 ▶이사회+감사+회계감사인 등 5가지 지배구조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일본 대기업들은 자기 상황에 맞는 지배구조 모델을 정관으로 채택하고 있다. 소니와 일본우정지주회사는 ‘위원회 설치회사’ 유형을, 도요타와 소프트뱅크 등은 ‘감사 등 위원회 설치회사’ 유형을 채택했다. 최근 도쿄와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한 일본법인 라인(LINE Corporation, 네이버 계열사)은 ‘감사역회 설치회사’ 모델을 채택했다.

이와 달리 한국 상법은 기업들에 자산 규모별로 한정된 지배구조 유형을 강제하고 있다. 자산 2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이사회+감사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구조를 무조건 적용해야 한다. 자본금 총액 10억원 이상인 기업은 ▶이사회+감사 ▶이사회+감사위원회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한경연 유환익 혁신성장실장은 “이런 강제 조항이 기업 경영의 안정성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회사 지배구조가 획일화된 형태로 수렴되도록 하는 것이 기업들이나 주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1437호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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