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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산업계는 지금 ‘오픈 이노베이션’ 열풍] 외부 기술·아이디어 더하고 내부 자원 공유 

 

김석인 KT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기존 ‘폐쇄형 혁신’ ‘아웃소싱’ 대비 생산성 높아…소극적 한국 기업들 적극 활용해야

▎덴마크의 글로벌 완구 기업 레고(Lego)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성공적으로 활용해 2004~2014년 10년 간 매출이 기존 대비 5배로 확대됐다. 사진은 2014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레고 무비]의 한 장면. /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2003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체스브로 교수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똑똑한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라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마디로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한편,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존의 ‘폐쇄형 혁신’이나 ‘아웃소싱(Outsourcing)’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폐쇄형 혁신은 기업 내부에서 이뤄지는 연구·개발(R&D) 활동만을 중시하며 아웃소싱은 한쪽 방향으로 역량을 이동시킨다. 이와 달리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경계를 넘나들며 기업의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므로 차이점이 존재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인터넷의 발전과 융합현상의 급속한 진전, 과거 방식의 폐쇄적 R&D 투자방식의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했다. 단일 기업의 기술과 능력으로는 빠른 사업 환경 변화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며, 소비자의 급변하는 요구에 필요한 요소 기술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양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조직 내부와 외부의 협력관계 아래 가치를 공동 창출해 불확실성의 위험을 줄이고 제품 개발 속도를 극대화시켜 기업의 성장과 이익을 촉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2000년대 초반까지 R&D 중심으로 적용됐지만 2006년부터는 기업 활동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과 집단지성으로까지 확대됐다. 크라우드소싱은 대중(Crowd)과 아웃소싱의 합성어로 생산과 서비스 과정에 대중을 참여시켜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시키고 수익을 참여자와 공유하는 방식이다. 집단지성의 개념은 ‘웹(Web) 2.0’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부상했고, 여러 개인의 협력적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공동체의 능력을 의미한다.

크라우드소싱으로 분위기 되돌린 레고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 프로그램으로 외부 아마추어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기차 모양의 레고 디자인.
덴마크의 글로벌 완구 기업 레고(Lego)는 크라우드소싱으로 신제품을 개발, 시너지 효과 창출에 성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창의적인 놀이문화의 대명사로 입지를 구축하며 흑자행진을 거듭했던 레고는 2003년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주력 시장이었던 유럽과 미국의 베이비붐 시대가 끝나고 저출산 시대로 접어들면서 어린이 장난감 시장이 위축됐고, 일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등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게임이 급부상하자 아날로그 장난감인 레고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다. 이러한 외부적인 시장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레고의 방만한 경영도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레고는 의류, 시계, 출판·미디어·게임, 테마파크 등 비관련 부문으로 사업 다각화를 전개하면서 방만한 경영을 했다.

위기에 몰린 레고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하면서 기사회생에 성공하게 된다. 제품의 기획과 개발 단계에서부터 기존 고객의 아이디어를 크라우드소싱 형태로 확보하고, 이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 집중해 성공을 거두었다. 레고는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Lego Digital Designer)’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이 직접 제품 개발과 개선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실제 완구로 출시했다. 레고 소속 디자이너는 180명에 불과하지만 디지털 디자이너 프로그램을 통해서 외부의 자발적인 아마추어 디자이너 12만 명을 확보하는 효과를 냈다. 또 레고는 성인 레고 팬들로 구성된 20만 명 이상의 AFOL(Adult Fans of LEGO) 중 약 100명을 ‘레고 앰배서더’로 지명하고 이 중 12명을 ‘LEGO Certified Professional’로 선발해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추진했다. 그리고 레고는 PC와 연결해 프로그래밍하는 로봇 제품인 ‘마인드스톰’의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화’했다. 이를 통해 세계 많은 엔지니어가 무급에도 마인드스톰의 구동 프로그램 개발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레고가 추진한 마인드스톰 소프트웨어 오픈소스화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2005년에 한 사용자가 마인드스톰 소프트웨어를 해킹해 임의로 변경한 마인드스톰 제어 프로그램을 인터넷상에 유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레고는 해킹에 대한 법적 조치 대신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개하고 제품 약관에 ‘해킹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면서 해커들에 의해 마인드스톰은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레고는 이런 다양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2005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지난 10년 간(2004~2014년) 매출은 기존 대비 5배로 확대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기프가프(Giffgaff)도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가입자를 모집해 큰 성과를 거둔 사례다. 2009년 설립된 기프가프는 영국 이동통신사업자 O2의 자회사이며 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로 가입자 참여를 통해 기업을 운영한다. 기프가프는 ‘당신이 직접 운영하는 모바일 회사(The mobile network run by you)’를 모토로 삼고 있다. 기프가프는 고객이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를 통해 가입부터 모바일 상품 설계, 신규 사업 발굴까지 직접 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 서비스를 한다. 콜센터나 오프라인 가맹점 없이 온라인 커스토머서비스(CS) 전담 직원 16명이 상품 가입은 물론 고객관리에 필요한 문답(Q&A), 가입자 커뮤니티 운영 등 모든 서비스를 온라인에서만 진행한다.

고객에게 참여에 대한 재미·보상 제공


▎영국 기프가프(Giffgaff)의 멤버들. 기프가프는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가입자 참여를 장려해 성과를 낸다. / 사진:기프가프 제공
기프가프 가입자들은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거나 새로운 마케팅 아이디어 제안 및 질문에 대답하는 등의 커뮤니티 활동 참여, 사업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등 로열티를 보여주면 그 대가로 포인트를 제공받는다. 이 포인트로 통화료의 100%까지 환급이 가능하며 이런 혜택을 고객에게 즉각적으로 보상해줘서 커뮤니티 참여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참여에 대한 재미와 보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일반 산업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보스턴시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보스턴은 빅데이터와 크라우드소싱을 적극·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도시다. 보스턴은 차량 운전자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도로 노면이 파인 곳(pothole)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도로 관리국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스트리트 범프(Street Bump)’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2012년 말에 보급했다. 시는 40명에 불과한, 한정된 도로 관리국 직원이 수많은 도로 파손 지역을 꼼꼼히 확인하고 신속하게 유지 보수하는 것은 시간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시민들이 직접 수집하는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도로 파손을 신속하게 보수하는 방안인 스트리트 범프 앱을 개발하게 됐다. 스마트폰의 활성화로 사람이 직접 주변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는 인간 센서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즉 스마트폰 앱이 구동되면 GPS와 센서 등이 자동으로 실시간 도로 파손을 감지하는 것이다.

스트리트 범프 앱을 설치한 운전자가 도로가 파인 곳을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앱이 진동을 감지하게 되고, 진동이 감지될 경우 이 데이터가 도로 관리국의 도로 정보 수집 서버로 전송되며 그 지역을 운전하는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정보가 제공된다. 신고가 들어오면 시청에 있는 인터랙티브 지도(interactive map)상에 파손 위치가 기록되고, 도로 관리국은 곧바로 도로 파손 보수를 실시하게 된다. 스트리트 범프가 시민들에게 보급되면서 막대한 양의 도로 노면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되었고, 이를 토대로 도로 관리국은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하게 됐다. 그 결과 신속한 도로 유지보수가 가능해지면서 차량 파손을 최소할 수 있었고 사고 방지를 통해 운전자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시민들이 파손된 도로를 발견해 신고하는 데 많은 절차와 시간이 걸려 신고 건수가 적었다. 그래서 보스턴시는 전체 도로에 대한 전수 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됐다. 그러나 시민들이 스트리트 범프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해 실행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데이터가 실시간 도로 관리국으로 전송되기 시작하면서 신고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그 결과 더 많은 양의 데이터가 축적됐고, 이를 통해 시는 도로 복구에 드는 시간과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외부 기술·지식 활용하는 국내 기업 49.2%


▎미국 보스턴시의 ‘스트리트 범프’ 애플리케이션. / 사진:www.bu.edu 제공
크라우드소싱과 집단지성을 활용한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미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다. 많은 글로벌 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자원의 많은 부분을 기존 전문 집단뿐만 아니라 내·외부의 다양한 집단에서 획득하는 추세이다. 급변하는 시장환경에서는 집단지성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활용해 기업 역량을 제고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경우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오픈 이노베이션 추진에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2016년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외부 기술·지식 활용 실태와 시사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응답기업의 71.1%는 ‘변화와 혁신을 위해 경영활동에 외부 기술·지식을 활용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밝혔지만 외부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절반 수준인 49.2%이었다. 이는 글로벌 선진 기업에 비하면 30%포인트가량 떨어지는 수치다.

한국의 기업들도 성장과 생존에 직결될 수밖에 없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 추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내부에서 개발된 혁신만이 진정한 혁신’이라는 폐쇄형 혁신의 사고 방식에서 탈피해 외부의 우수한 역량을 조기에 발굴, 육성하고 이를 빠르게 내재화하려는 사고방식 전환이 필요하다. 외부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지 않는 한국 기업이 그 이유로 ‘외부 의존성 확대’(43.5%)를 가장 먼저 꼽았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사고방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대중의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한 인센티브 부여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집단지성 참여자의 참여 동기를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비금전적인 보상을 함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지성 활동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공유할 때 일이나 의무감이 아닌 재미(Fun)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야 지속적인 참여 동기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40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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