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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5) | 멸종을 이겨낸 비결] 급격한 환경 변화에도 버틸 탄탄한 기본기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2억년 넘게 생존한 악어, 식성·서식지 선정 까다롭지 않고 막강한 면역력 갖춰

▎식성·서식지 선정이 까다롭지 않고 막강한 면역력을 갖춘 악어는 2억년 넘게 살아남았다. / 사진:© gettyimagesbank
프랑스 파리는 볼 게 많다. 처음 가는 이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것만 같은 곳도 있다. 예술가의 거리 몽마르트도 그중의 하나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이트 인 파리]에 나온 뒷골목을 볼 수 있을 것 같고, 예술 가득한 거리를 거닐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 바로 그런 생각으로 몽마르트를 갔다. 없는 시간을 짜내 서둘러 갔는데, 이게 웬 일인가. 돈을 받고 얼굴을 그려주는 몇몇 거리의 예술가는 있어도, 예술가의 거리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그런 언덕길일 뿐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뭔가’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처음엔 실망 그 자체였다(사실 개울보다 좀 더 큰 세느강도 그렇고, 느낌을 찾을 수 없는 퐁뇌프의 다리도 그렇다.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지만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다!).

어쨌든 지금은 예술가의 거리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원래 다른 걸로 유명한 곳이었다. 1790년대만 하더라도 이곳은 환락과 죄악의 이미지로 가득한, 좀 과하게 말하면 파리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곳은 로마 시대부터 석고 광산이 있던 곳인데, 이때쯤 석고가 건축자재로 인기를 끌면서 이곳 광산에 돈과 사람이 몰려들었고, 그 바람에 흥청망청한 곳이 됐다. 마침 광산 근처가 또 거의 포도밭이라 필요한 알코올까지 제공할 수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지금 몽마르트 언덕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바로 이런 ‘소돔과 고모라 현상’을 중화, 아니 정화시키기 위해 파리시가 지은 것이다.

몽마르트 언덕의 거대한 뼈

덕분에 이곳은 고생물학자들에게 유명한 곳이 됐다. 이 광산에서 옛날 뼈가 대거 출토됐기 때문이다. 깊은 땅속에 묻혀있던 것이니 옛날 동물의 뼈라는 건 알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코끼리보다 더 큰 거대한 뼈가 계속 나왔던 것이다. 육지에 사는 가장 큰 동물은 코끼리이고 그 이상 큰 동물은 없는데 어찌된 일일까, 궁금증은 커져갔지만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먼 옛날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시대였다. 뼈가 계속 출토되자 당시 유명한 비교해부학자이자 1세대 고생물학자였던 조르주 쾨비에 남작이 연구에 착수했고 “지금은 멸종한 동물의 뼈”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한 것이다. 심지어 용불용설이라는 일종의 진화론을 주장한 라마르크까지 그렇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당시만 해도 성경에 있는 창세기 신화를 그대로 믿었던 시절이었다. 멸종이라는 개념이 1800년대 중반에나 받아들여졌으니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대멸종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였다. 대멸종은 100여 년이 지난 1980년대나 되어서야 ‘상식’이 됐다).

나중에서야 완전히 밝혀졌지만 그 거대한 뼈의 주인은 짧게는 몇 만 년, 길게는 수십 만년 전 왕성하게 살았던, 매머드·마스토돈트·모사사우루스 같은 거대한 녀석들이었다. 한때는 누구보다 탁월한 생존력을 과시했지만 그 생존력을 유지하지 못해 사라진 ‘거물’들이었다. 거대한 덩치는 보통 그만한 생존력을 갖췄다는 의미인데, 그들은 왜 멸종을 피하지 못했을까?

살아있는 세상에서 거대한 덩치는 그들이 살고 있던 환경에 거의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표시다. 그러지 않으면 그런 덩치를 유지할 수 없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 현재 환경에 최적화는 분명 탁월한 능력이지만, 그 환경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순간 탁월한 능력은 완벽한 무능력이 된다. 거대한 덩치는 거대한 먹이를 필요로 하는데 그걸 조달할 수 없는 데다, 갑자기 추워지거나 따뜻해진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서다. 진화는 세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적응력을 갖춰가는 것인데, 환경이 워낙 갑작스럽게 변하니 적응력을 갖출 시간도 없다. 호경기에 적응할수록 불경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명의 역사에서 큰 덩치는 분명 번성의 상징이지만, 언제든 멸종을 당할 수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보편적 원리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녀석이 있다. 큰 덩치를 가졌는 데도 무려 2억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멸종 위기를 이겨낸 녀석이 있다.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시간을 보통 20만년 전 정도로 추정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무려 1000배 수준이나 더 오래 살아온, 무서운 생명력의 소유자다. 누굴까? 악어다.

울퉁불퉁한 피부와 우악스러운 생김새 때문에 요즘 같은 동물 애호 시대에도 웬만해서는 사랑받기 힘든 녀석이지만(물론 ‘가죽’만은 사랑을 받는다. 악어백으로!), 생존력의 관점에서 보면 탁월하다는 말 외에 대체할 말이 없다. 2억년 전이라면 수많은 공룡이 이 지구상을 장악해 가던 때인데, 그들과 함께 이 지구를 활보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강력했던 공룡마저 6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로 생겨난 대멸종을 견뎌내지 못하고 사라졌는데, 이 녀석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이유를 알려면 6500만년 전 대멸종을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6500만년 전 어느 날 저 우주에서 엄청나게 큰 바윗돌 하나가 날아와 지구에 부딪쳤다. 보통 바윗돌이 아니었다. 지름이 10~15km나 되고, 무게가 10억t이나 나가는 소행성이니, 가히 에베레스트 산만한 크기였는데, 이 바윗돌이 초속 20~70km로 날아와 당시 바다였던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충돌했다. 보통 리히터로 8정도 되면 세계적인 재난이라고 하고, 1씩 증가할 때마다 30배 이상의 에너지가 증가한다고 하는데, 이 충돌로 생긴 지진 강도가 13이나 되었으니 보통 충격이 아니었을 것이다. 학자들은 수소폭탄 1억개가 동시 폭발하는 것과 맞먹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6500만년 전 대멸종의 순간


▎공룡은 6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 후 대멸종을 견디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 사진:© gettyimagesbank
일단 충돌 순간, 경기도 만한 구멍이 파이면서 주변 수십 km 바닷물이 모두 증발했고, 전 세계 육지로 어마어마한 쓰나미를 몰고 갔다. 쓰나미 높이가 최소한 100m가 넘었을 것이라고 하니 거의 모든 육지를, 그야말로 ‘물밀듯이’ 덮쳤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이게 시작이었다. 충돌로 생긴 수백만t의 불타는 암석이 상공 100km까지 튀어 올라 전 대륙에 불벼락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수소폭탄이 6km 마다 하나씩 터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충돌한 바위에서 나온 유황이 황산으로 변해 전 지구에 산성비를 쏟아 부었고, 상공에 가득한 구름 때문에 햇빛을 볼 수 없었다. 지구 전체가 한순간에 빙하기로 변한 탓에 당시 존재하던 생물종의 70~80% 이상이 사라졌다. 공룡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 이런 소행성이 충돌한다면 인류 또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악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보통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대체로 몸이 작아서 큰 피해를 입지 않거나 적게 먹어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몸이 큰 녀석들은 대체로 크기를 줄여서 살아남는다. 잠자리가 대표적이다. 3억년 전 잠자리는 날개 길이가 1m가 넘었지만 몇 번의 대멸종을 겪으면서 몸집을 줄인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런데 악어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몸 구조를 갖고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구조조정’을 전혀 하지 않고 이 긴 시간을 살아온 셈이다. 무슨 비결이 있었던 걸까?

녀석들의 장점은 많다. 세상에서 가장 큰 턱과 의사들이 수술할 때는 쓰는 메스로도 잘 잘라지지 않는 강력한 피부 외에도, 험난한 시대를 이겨낸 3가지 역량을 꼽을 수 있다. 우선 녀석들은 무던한 인내력의 소유자다. 녀석들은 사냥감을 기다릴 때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고 30분 이상 마치 바위처럼 잠복하고, 다가갈 때는 물결 하나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둔한 것도 아니다. 기회다 싶으면 초속 10m가 넘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사냥감을 낚아챈다. 인내와 민첩성을 동시에 겸비한 것이다. 기다려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잘 안다. 이 뿐인가. 먹이를 잡을 수 없는 어려운 시절이 되면 1년 정도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아예 굴을 파고 들어가 동면과 비슷한 하면(夏眠)을 한다. 이때는 신진대사를 최대한 낮춰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두 번째 역량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는 것이다. 환경이 변할 때 멸종 가능성이 큰 생명체들은 대체로 식성과 서식지 선정이 까다롭다. 쉽게 말해 특정한 것만 먹고, 특정한 지역에서만 산다. 기업으로 치면 상품 생산능력이 한정돼 있고, 특정 영역에만 포지셔닝해 있는 것과 같다. 반면 악어는 무엇이든 잘 먹고, 열대지역이라면 거의 어디든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역량은 회복력이다. 녀석들이 사는 열대의 탁한 물은 세균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 상처가 나면 치명적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건재하다. 특별한 항생물질을 만들어 최강의 면역계를 갖춘 덕분이다. 연구에 따르면 23종의 세균을 퇴치할 수 있을 정도다. 당연히 회복도 빠르다.

두드러지는 능력이 아니라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수명도 길어서 최대 140년까지 산 기록이 있다. 2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 생각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번성하는 바람에 수난을 당하고 있긴 하지만, 녀석들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왕성한 생존력을 발휘하고 있다. 번성한 사피엔스들이 무서워할 정도로 말이다.

“멸종이 원칙이고 생존은 예외”


▎1억5000만년 전 출현해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거북도 어려운 시절이 오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1년을 산다. / 사진:© gettyimagesbank
사실 이 세 능력은 악어만이 아니라 1억년 이상을 살아온 장수 생명체들이 가진 특징들이다. 1억5000만년 전 출현해,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거북도 어려운 시절이 오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1년을 산다. 이 녀석 역시 먹는 것이나 서식지 선정에 까탈스럽지 않다. 1억년쯤 살아온 바늘두더지 역시 느린 신진대사와 까다롭지 않은 식성 덕분에 여전히 살아있다. 식물들은 씨앗을 두꺼운 껍질로 두르고, 땅 속이라는 보호막을 활용해 대멸종을 이겨냈다. 씨앗은 환경만 갖춰지면 몇 천년도 견딜 수 있다. 우리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바퀴벌레 역시 하찮은 녀석이 아니다. 2억년 이상을 살아온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36억년 생명의 역사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생성과 멸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긴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중의 하나는, 번성이 흔하고 멸종이 드문 게 아니라, 멸종이 흔하고 번성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300억종의 생명체가 출현했지만 그중 99.9%가 멸종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환경의 변화였다. 변화는 점진적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다. 저 먼 우주에서 소행성이 날아오고, 지구 자전축이 바뀔지 누가 알았겠는가?(달도 지구와 부딪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화산이 폭발해 지구가 불바다가 되고 대륙이 모였다 흩어졌다 한 것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보면 세상은 불확실한 상황이 대부분이었고 안정적인 상황은 일부였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정상적이었고, 안정적인 상황은 예외였다. 그래서 독일의 자연과학자 만프레트 바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에서는) 멸종이 원칙이고 생존은 예외다.”

환경이 갑작스레 변할 때 멸종 가능성은 대체로 덩치가 큰 생물에게로 향한다. 에너지 섭취가 어렵고 덩치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1순위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야말로 ‘현재’에 최적화된 곳인 까닭이다. 최적화는 바뀐 상황에 빨리 적응하는 융통성을 떨어뜨린다. 최적화 자체가 새로운 생존의 규칙을 익히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멸종 가능성이 큰 생명체들이 대체로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티는 멸종과 생존의 사이에는 능력뿐만 아니라 운도 작용한다고 했지만, 능력이 없는 운이 오래 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개체의 멸종은 다른 개체의 새로운 시작

변화가 빠를 때 생존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서 좌우된다. 그래서 기본기가 중요하다. 이 생존의 규칙은 언제나 같다. 2억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빠르게 포착해 그걸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면 멸종은 나쁜 것일까?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6500만년 전 대 멸종이 공룡의 시대를 마감하고, 포유류를 새로운 번성의 주인공으로 탄생시켰듯이, 멸종은 그 생명체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른 생명체에겐 새로운 시작이다. 사실 우리 역시 공룡의 멸종 덕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지 않은가. 그래서 멸종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지를 알려주는 교훈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39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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