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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8) 시니어 기업 에버영코리아 정은성 대표] “황혼에 입사해도 CEO 꿈꿀 수 있죠” 

 

이필재
직원의 평균 연령 62세…“한국 시니어, 중국 청년보다 경쟁력 있어”

▎사진:임익순 객원기자
“장차 시니어로 입사한 직원 중에서 대표이사가 나와야죠. 그래야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인 평등이 완성된다고 봅니다.” 시니어 기업 에버영코리아의 정은성 대표는 “입사할 때 이미 시니어였던 우리 직원이 후임 CEO가 되는 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10일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은평구의 에버영코리아 본사를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똑같은 업무용 책상이 대오를 지어 늘어서 있다. 입구 첫 자리 명패에 정은성 대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 대표는 “본사 및 지사 임직원 450명의 책상, 의자, 컴퓨터 및 자판, 명패가 똑같다”고 말했다. “우리 회사의 최우선 핵심가치인 구성원 간의 평등을 물리적으로 실현한 것이죠. 나이가 들면 외롭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아져요. 직장에서나마 그러지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정년 100세’가 회사의 구호

에버영코리아 구성원의 평균 연령은 62세다. 최고령자는 84세. 5년 전 출범할 땐 55세 이상만 입사할 수 있었다. 입사 연령 제한은 없앴지만 지금도 90% 이상이 시니어다. 여성이 45%가량 된다. 정년이 따로 없는 회사이기도 하다. “정년이 없다고 하니 직원들이 체감을 못해 정년은 100세라고 했습니다. 정년은 없지만 그래서 ‘정년 100세’를 구호처럼 사용합니다. 애초에 시니어를 우대하는 회사가 아니라 나이 차별 없는 기업을 만들려 했으니 입사 연령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 게 설립 취지에 맞죠.”

에버영코리아는 콘텐트 관리 대행 서비스를 한다. 2013년 설립됐다. 30명으로 시작해 2년 전 현재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70억원. 서울의 여의도와 녹번동, 성남, 춘천 네 곳에 센터(지사)를 두고 있다. 2015년 대한민국 고용 창출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일자리 창출 관련 노동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보건복지부 고령자친화기업 사업도 따냈다.

핵심 거래처는 네이버다. 네이버 지도 거리뷰에서 사람 얼굴, 차량번호를 모자이크 처리하고 네이버에 올라오는 콘텐트·이미지·동영상의 위법·유해성을 모니터링해 부적절한 것들은 삭제한다. 현대카드·위메프·대웅제약 등도 거래처다.

급여는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다. 4대 보험을 제공하고, 퇴직금도 지급한다. 환갑·고희 때 축하금을 지급하고 손주가 태어나도 축하금을 준다. 형제상도 챙긴다. 시니어 기업 특성상 안과 검진도 제공한다. 직원들은 하루 4시간 30분씩 4교대로 근무한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한 직원은 “6시 반에 출근해 정오 전에 퇴근, 오후를 통째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족도가 높다 보니 이직률이 낮다. 정 대표는 5~6% 수준이라고 말했다. “멀리 이사를 가거나 더 좋은 일자리로 옮기는 경우 말고는 이직이 없습니다. 이 점이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기도 하고요. 네이버 측에서도 낮은 이직률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구성원 중엔 고스펙자가 적지 않다. 교수·목사 출신도 있다. 유학파 박사가 근무하고, 서울대 법학과 등 서울대 출신도 더러 있다. 입사 지원자는 서류전형·면접 외에 필기와 실기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신조어도 알고 인터넷 검색을 빨리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전직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떨어지고 중졸 전업주부가 ‘합격의 영광’을 안기도 한다.

에버영엔 구성원들의 교육 프로그램인 에버영아카데미가 있다. 설립 당시 만들어졌다. 구글의 자동번역 서비스 덕에 직원들은 온라인으로 하버드와 옥스퍼드의 강좌를 수강한다. 20개 이상의 강좌를 들은 사람도 있다. 정 대표는 시니어 기업은 교육이야말로 으뜸 가는 복지제도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취미생활보다 배우는 즐거움에 탐닉하게 되죠. 좋은 콘텐트는 세계에 널려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배울 건 많아요. 소정의 학점을 이수하신 분들은 장차 부가가치가 더 높은 좋은 일자리에 취업을 시켜 보려 합니다. 아카데미를 일반인에게 개방할 생각도 하고요.”

에버영 구성원들은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히 한다. 스마트폰 봉사단은 교육을 받은 강사들로 다른 시니어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전수한다. 3년 전 서울 은평구, 성남시 등 지역사회에서 시작한 코딩교육은 해외로 진출했다. 2년째 필리핀 루손 섬 나보타스시에서 초등생·고교생 및 교사들에게 코딩을 가르친다. 경비는 회사가 지원하고 당사자들은 이를 위해 3개월 간 휴직을 한다. 이때 대학생 한 사람이 보조교사로 동행한다. 한 지붕 아래 한 팀이 되어 도착하자마자 본격적인 강의를 진행한다.

“코딩은 고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익숙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국내 코딩 교육 때면 우리 직원 6~7명이 몰려가 강사 외엔 조교를 하고 그 조교들이 다시 강사로 성장합니다. 이런 조교들 덕에 수강생 중 낙오자가 없어요.”

시니어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닙니까?

“필리핀에 처음 두 사람을 보낼 때 두 분 다 즐겁고 행복해하면 지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분들이 아주 만족스러워했어요. 봉사를 통해 맛보는 행복감이 있잖아요?”

정 대표는 용접봉 등을 제조·판매하는 중견기업 현대종합금속의 전문경영인 대표이기도 하다. 기업에 몸담기 전엔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지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으로 있었다. 미국 뉴욕시티대 정치학 박사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출신이다. “나이·성·학력 차별없는 세상을 꿈꿨는데 에버영코리아가 전진기지가 된 셈이죠.”

대기업도 20~30년 지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어떤 고민을 합니까?

“업종 특성상 인공지능(AI)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AI의 진화로 우리가 하던 업무가 없어지면 새로운 일을 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재교육을 받아 새 업무에 적응합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에서 에버영피플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었어요. 신규 사업을 개척하는 팀인데 지난 2년 반 동안 20여 가지 신사업을 구상했습니다.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했죠. 올 들어 AI 업무도 시작했고요.”

네이버에 대한 의존도가 높군요.

“네이버가 없었다면 협력업체인 우리 회사는 생기기도, 커지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본래 중국에서 몇 백 명의 젊은이들이 하던 일을 우리가 가져온 겁니다. 우리나라 시니어가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거죠. 네이버도 손해나는 일은 아닌 만큼 일종의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사례로 봅니다.”

청년실업이 극심하지만 시니어 일자리 문제도 심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여파가 크지만 제조업 쪽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우리야 앞으로도 IT에 집중해야죠.”

홈페이지를 보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회적기업’이 회사의 비전이던데요?

“영어로는 베스트 소셜 엔터프라이즈인데, 크고 돈 잘 버는 회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굿의 최상급입니다. 우리 회사는 본질도 회사 정관도 사회적기업인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정부 지원을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지원을 많이 받을수록 기업은 약해집니다.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가 사회 적응을 잘 못하듯이.”

1443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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