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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가꾸는 CEO 2인] 창업자의 투자, 투자자의 창업이 성장 비결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다음 공동창업자 이택경, 티몬 투자 대박 이끈 박지웅의 커리어 전환기

▎ / 사진:© gettyimagesbank
국내 창업계가 활기를 띠고 있다. 신생기업(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고, 벤처캐피털이 투자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과거와는 달리 개인 투자자인 엔젤투자 규모도 증가하면서 올해 1월 월별 신설법인 수가 1만개를 넘어섰다. 이와 함께 성공한 기업인들이 투자에 적극 나서고, 투자자 출신들이 스타트업 창업을 하는 역할 바꾸기도 늘어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경영자에서 투자자로, 투자자에서 경영자로 변신한 국내 스타트업계의 대표적 CEO 2명의 사례를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포털 다음을 공동 창업한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스스로에게 무척 어려운 시험문제를 냈다. 앞으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IT 외의 다른 서비스로도 자신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을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이택경 대표는 각기 다른 8개 스타트업에 소규모 앤젤투자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다. IT 기업이 3곳, 바이오 기업 1곳, 심지어 외식업에도 투자했다. 2000년대 초반은 다음의 전성기였다. 이택경 대표가 공동창업하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던 다음은 커뮤니티·카페 등 당시 존재하던 모든 인터넷 서비스 부문에서 1등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다음을 창업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게 있었다. ‘다음이 안 망하면 10년만 다녀보고 그 이후에 무엇을 할 지 다시 고민할 것’이었다. “처음엔 연쇄 창업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개인 투자를 해보면서 투자의 매력에 중독됐다. 후배 개발자들을 돕는 일,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일 두 가지를 하고 싶어졌다.”

올해 1월 신설법인 사상 첫 1만개 넘겨


벤처라는 말조차 없던 1995년 창업하면서 다음은 소비자 대상의 B2C와 기업 대상의 B2B 사업을 두 축으로 가져갔다. B2B에서 번 돈을 B2C에 투자하는 식으로 2년 간 회사를 키워갔다. 이들은 3개월마다 새로운 콘텐트 서비스를 만들었다. 첫 서비스는 버츄얼 갤러리, 두 번째 서비스는 패션넷, 이어서 영화 콘텐트 서비스 식이었다. 지금도 영화 예매, 여행과 패션 커머스가 확실한 사업 카테고리를 만들어 많은 기업이 뛰어들고 있는데 이런 카테고리 자체를 이미 20년 전에 만들었다. “우린 인터넷을 화두로 잡았다. 그 안에서 뭐가 뜰지는 몰랐지만, 컴퓨터가 컴퓨팅 머신 역할보단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더 활약할 것이고 그게 인터넷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철학이 있었다.” 기업용 인트라넷 외주 개발로 매출을 올린 지 2년째 되던 해 이택경 대표는 인트라넷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다음의 최대 히트작이었던 인터넷 무료 e메일 서비스인 한메일은 이렇게 이들의 여섯 번째 서비스가 됐다.

이 대표의 자체 시험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투자했던 회사 중 절반이 문을 닫았다. 바이오, 외식업, 애니메이션 제작사 등이었다. 다만 IT회사는 3개 투자해서 2승 1무였다. 한 곳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M&A 됐고, 두 곳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 그중 하나는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기업) 스타트업을 꿈꾸는 수준으로 성공했다. “내가 3대 주주로 있는 한 회사는 온라인광고 쪽에서 2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는데 5~6년 전 모바일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게임 쪽 매출이 크게 늘어 연매출 1000억원을 넘겼다. 상장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고, 유니콘도 가능할 것 같다.”

이택경 대표는 지금까지 다 합쳐서 100곳이 넘는 기업에 투자했다. 2013년에 시작한 매쉬업엔젤스를 통해서만 70개 기업에 9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이 대표는 이에 앞서 2010년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한 권도균·장병규 등 1세대 창업자들과 함께 ‘프라이머’라는 스타트업 투자 및 인큐베이팅 회사를 만들었다. 3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프라이머는 지금까지 133개 기업에 투자를 집행했다. 이택경 대표는 2기 대표를 맡았고, 지금도 이 때 투자했던 기업을 관리하고 있다. 프라이머도 매쉬업엔젤스도 또 엔젤투자도 창업자들이 할 때는 단순히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멘토링을 통해 창업 경험을 나누게 된다. 한마디로 일이 많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기업에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 스타트업에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중독된 거다. 창업자는 자신이 만든 혁신적인 서비스와 제품에 사용자들이 반응해주는 순간에 느끼는 쾌감이 있다. 자신의 가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다음의 영업이익이 제대로 난 건 창업 후 7년이 지난 2003년이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전 국민이 많이 써줬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지만, 엔젤투자자로서 자문을 해주면서 지원 사격을 통해서나마 투자한 기업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 참 좋고 중독성이 있다. 1세대 2세대 연쇄 창업자들이 투자자로 변신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택경 대표를 포함한 대부분의 프라이머 초기 멤버들은 2013년 3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프라이머는 기업가치 5억~10억원 사이의 스타트업에 1억원 미만의 자금을 투입했는데, 기업가치가 10억~20억원대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부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매쉬업엔젤스는 이런 스타트업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이택경 대표의 창업자 출신 투자자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 대표는 “창업가가 꼭 훌륭한 투자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어떤 창업자들은 자신의 성공 방정식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계속 창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업자는 하나만 보면 되지만 투자자는 여러 개를 봐야 하고 회사의 대표로서 조직을 강하게 이끌고 가도 되지만, 투자자는 조연의 입장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창업자 출신 투자자의 장점은 풍부한 경험이고, 단점은 간혹 에고가 강한 경우 투자한 곳 대표를 마치 회사 직원 다루듯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코치로서의 재능과 선수로서의 재능은 따로 있다는 조언이다. “반면에 창업 경험이 없는 투자자들은 창업자의 힘든 점을 잘 느끼지 못 한다. 대표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투자자들이 창업자들의 노고를 이해해 주는 게 필요하다.”

창업자 출신이 이끄는 개인 투자 비율 급증


▎다음 공동창업자에서 투자자로 변신한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외연 확장은 이택경 대표처럼 투자에 관심을 갖는 1세대 벤처 투자자들의 자금과 멘토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통계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매달 발표하는 월별 신설법인 통계를 보면 지난해 7월 8316개에서 올해 3월 9226개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고, 지난 1월 1만41개를 기록했다. 이준표 신임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처럼 창업 후 최근 이를 매각하면서 경험과 자금력을 쌓은 이들이 투자계로 다시 돌아오는 움직임도 보인다. 실제로 벤처캐피털 투자금은 꾸준히 그리고 빨리 늘고 있다. 벤처캐피털 투자금은 2015년 2조원을 넘겼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투자금은 2조3803억원으로 2년 간 15% 이상 늘어났다. 특히 올 들어선 신규 투자 증가세가 가파르다. 2018년 4월 벤처캐피털 신규 투자는 9762억원으로 지난해 4월 6012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김범수·이택경 등 1세대 벤처 기업인들이 개인적으로 하던 투자활동을 조직화하면서, 스타트업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의 숫자와 투자금도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500억원대에 불과했던 개인 투자 규모는 2016년 3배 수준이 넘는 1747억원을 기록했다. 개인투자조합 결성의 경우 2011년 2개 조합에서 9억원을 투자했는데, 6년 만에 각각 10배, 150배가 늘어나 2017년 6월 현재 273개 조합에서 1378억원을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처럼 벤처 투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개인투자자들이 그간 겪었던 이중과세 문제 등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는 법이 생겼다. 2016년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일부 개정법률’, 통칭 엑셀러레이터법이 제정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스타트업 투자가 힘을 받았다. 스타트업 투자와 전문보육(멘토링)을 주업무로 하는 엑셀러레이터는 자본금 1억 이상에 전문 인력 1명만 있으면 펀드를 결성해 운용할 수 있게 됐다. 벤처캐피털은 자본금 50억원과 전문 인력 2명을 보유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나 투자조합은 지금까지 비상장 주식 차익의 40%를 양도소득세로 물어야 했지만, 이를 기존 벤처캐피털 수준으로 크게 낮췄다.

또 다른 이유는 성공한 창업자들이 투자자로도 활동하면서 스타트업 투자 선순환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전신인 NHN 공동창업자이자 카카오 이사회 의장인 김범수는 네이버를 떠나면서 스타트업들에 대거 엔젤투자를 했다. 김 의장이 투자한 기업들 중 한 곳이 매신저 앱 카카오톡 개발사였다. 김범수는 이후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케이큐브벤처스를 세워 사실상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시작했고, 다른 투자 회사도 세웠다. 어느 정도 성공적인 엑시트를 경험한 창업자들은 대부분 엔젤투자를 병행하거나 직접 전문 투자회사를 만들고 있다. 직접 스타트업 투자를 했던 이들이 창업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크게 줄이는 경우도 창업 생태계 외연 확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창업과 투자의 간격이 그만큼 줄어들면서 투자의 잣대가 되는 스타트업 기업가치 측정이 과거와는 달리 상당 부분 표준화 됐고 벤처캐피털과의 역할 분담도 비교적 잘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리스트에서 창업자로 변신하고, 최근에는 벤처캐피털 회사를 차리면서 투자도 병행하게 된 박지웅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티켓몬스터 투자로 만난 박지웅-노정석-신현성


▎투자자에서 창업자로 변신한 박지웅 패스트트랙 아시아 대표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는 벤처캐피털에서 일하면서 티켓몬스터 등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낸 대표적인 투자자 출신 창업자다. 박 대표는 2008년 말 벤처캐피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벤처캐피털은 신입 직원을 거의 뽑지 않는다. 박 대표는 포스코기술투자·미시건벤처투자·IDG벤처스코리아에서 인턴만 3번을 했다. 취업할 때가 되자 한국벤처캐피털협회가 발간하는 회원사 명부를 구해 모든 회사 대표들에게 e메일로 이력서를 보냈다. 2008년 스톤브릿지캐피털에서 연락이 와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될 수 있었다. 박 대표는 “벤처캐피털에서는 딜 하나를 한 사람이 직접하고, 잘 되면 내가 투자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스톤브릿지캐피털은 전 직원이 4명인 신생 회사였다. 펀드 규모는 7년 만기에 1000억원 정도인데 첫 4년에 투자를 다 끝내야 했다. 박지웅은 처음엔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던 곳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대표 결제가 떨어지지 않았다. 전략을 바꿔 다른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곳에 연락해 추가 투자를 알아봤고 그렇게 해서 투자를 집행한 첫 회사가 교육용 게임 개발사였다. 첫 투자는 실패로 끝났다. 이 회사는 게임 반응이 좋지 않아 회사를 청산해야 했다. 이후 앤써즈·블루홀 등 지금은 성공적인 투자로 분류되지만 당시엔 다들 반대하던 곳에 투자를 하면서 트랙레코드를 쌓았다. 박지웅 하면 생각나는 티켓몬스터 투자는 원래 예정에 없었다. “2009년 10월에 그루폰 기사를 읽었다. 비슷한 아이템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팀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당시 그루폰은 티켓 판매와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던 레스토랑시티와 같은 게임, 엘프 같은 음식점 리뷰 사이트와 그루폰 모델을 동시에 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했다. NC소프트에 있던 개발팀을 섭외하고, 출판사에 연락해 함께 조인트벤처를 만들었다. 2009년 9월에서 2010년 1월 사이 일이다. 그러던 중에 그루폰 모델을 준비 중인 신현성 대표를 만났다. 나는 이렇게 4개를 동시에 할 예정인데, 당신은 1개만 하니까 제휴를 하자는 얘기였다. 그런데 우리 팀에서 개발팀·출판사가 모두 빠져나갔다. 신 대표를 찾아가 투자라도 하겠다고 해서 시작된 게 티켓몬스터 투자였다.”

박 대표는 티켓몬스터 투자를 통해 잘나가는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됐지만 더 큰 것을 얻었다. 투자자와 창업자, 엔젤투자자로 만난 세 사람의 인연이었다. 티켓몬스터에 엔젤투자를 한 노정석 대표는 보안회사를 상장시킨 후 2008년 블로그 플랫폼회사 테터앤컴퍼니를 구글에, 2014년 데이터 분석기업 파이브락스를 미국 텝조이에 매각하고 현재 리얼리티플렉션이라는 가상현실(VR) 플랫폼 회사를 창업해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고 있다. 투자자와 창업자로 만난 신현성 대표는 2011년 여름 티켓몬스터를 미국 리빙소셜에 매각했다가 이후 다시 지분을 사들여 현재 티켓몬스터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 인사이트도 공동 투자자로서 만날 수 있었다.

2011년 10월 박지웅·노정석·신현성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박지웅 대표는 “두 사람 다 아이디어가 많고, 나도 투자만 계속하니까 직접 뭔가를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고 말했다. 셋이서 5억원을 모아 3개 정도 창업을 해보기로 한 이들은 미국 벤처캐피털 인사이트의 투자를 받고, 박 대표가 일하던 스톤브릿지캐피털의 지원도 받게 되면서 판이 커졌다. 2011년 말 패스트트랙아시아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회사의 만류가 심해서 낮에는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저녁에는 창업자로 일해야 했다. 힘이 부쳐 다시 퇴사 의사를 밝혔더니 이번엔 낮에는 패스트트랙아시아에서 저녁에는 스톤브릿지캐피털에서 일하게 됐다. 박 대표는 “투자가 지루해지던 시기였다”며 “티켓몬스터를 매각한 석 달 후 앤써즈도 KT에 매각했고, 투자 일은 원래 반복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티켓몬스터에 투자할 때 창업자 투자자 모두 이 사업은 될 거라고 똑같이 생각했는데, 과정을 만드는 건 창업자 팀의 몫이었다. 투자자는 잘 돼야 조연 중의 조연이다. 무엇보다 티몬 팀이 젊고 자유분방했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 재미있게 일하는 게 부러웠다.”

박지웅대표가 생각하는 당시의 창업자는 일종의 중재자였다. 노정석·신현성 대표의 의견을 듣고 자신은 이를 조율해 자회사들 의사결정을 하면 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두 유명한 창업자 간 의견 조율이 쉬울 리가 없다. 결국 6개월 정도가 지나서 박지웅 대표가 직접 나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인력 구조조정이었다. 당시 운영하던 두 회사 직원 절반을 떠나보내야 했다. 작은 일에도 관여하는 유럽 액셀러레이터 로켓인터내셔널을 참고했다. “지금은 앞에 패스트가 붙어있는 회사는 다 내가 공동 대표를 맡는다. 실제로 내가 바닥부터 직접 만든 회사에는 사명에 패스트를 넣었다. 패스트가 사명에 안 붙었던 회사들은 초기 기획 정도만 우리가 하고 사람을 찾아서 운영을 그쪽 대표가 하는 식이었다. 앞으로는 사명에 패스트가 붙은 회사만 운영할 생각이다.”

“투자자는 차선책 있지만 창업자는 다 걸어야”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지주회사다. 산하에 성인교육 기업인 패스트캠퍼스, 공유 오피스 사업을 하는 패스트파이브, 투자회사인 패스트인베스트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박지웅은 지주회사 대표이자 각 자회사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박지웅 대표는 투자를 하다가 창업을 했을 때 “모든 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10개 중 1개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사업할 때 제일 애매한 것이 사람을 뽑을까 말까를 결정하는 거였다. 자회사 대표를 결정하는 기준을 갖추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너무 똑똑하다는데 내가 잘 몰랐던 사람,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 중에 후자를 선택했다. 사람 비중이 큰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언젠간 아는 사람이 바닥나지 않겠나?) 바닥나고 있다.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으면서도 엄청 똑똑한 사람의 풀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몇 조원짜리 회사를 소수와 함께 오래 하는 식으로 생각을 바꿨다.”

박지웅 대표는 경영자, 투자자를 오가는 경우에 차선책이 있는 게 투자라고 정의를 내렸다. 사업에는 다 걸어야 하고 그 뒤는 없기 때문이다. “창업자가 결정을 내린다. 투자자들에게 창업자의 결정은 곧 선행지수다. 경영자는 자신 뒤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1445호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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