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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수면산업은 지금] 머리에 쓰고 앱으로 분석 ... 진화하는 ‘꿀잠의 기술’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필립스 헬스케어 사업 화두는 ‘숙면’...중국 수면산업, 연평균 24% 고속성장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에서 참가자들이 필립스의 웨어러블 기기인 ‘스마트 슬립’을 체험해보고 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18’에서 눈길을 끈 전시관이 있다. 최신 전자제품과 자율주행차, 드론 등 첨단기기 사이에 마련된 ‘슬립테크(SleepTech)’ 존이다. 잠(Sleep)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신조어인 슬립테크는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기술을 뜻한다. 외신들은 “올해 CES에서는 슬립테크 존이 가상현실(VR) 체험을 제치고 가장 ‘핫’한 체험관이 됐다”고 평가했다. 올해 두 번째로 CES 특별 전시에 나선 슬립테크 존은 지난해부터 미국 국립수면재단 후원으로 CES에 참가했다. 올해는 규모가 더욱 커졌다. 노키아와 필립스 등 주요 전자업체도 자체 모바일와 센서 기술 등을 활용해 시장에 뛰어든 모습이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슬립테크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에서 노키아는 ‘노키아 슬립’을 처음 선보였다. 노키아는 2016년 프랑스 스타트업인 위딩(Withing)을 인수, 슬립테크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다. 이 제품은 센서가 부착된 매트 형태의 IoT 기기로,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넣어두면 스마트폰 속 ‘헬스 메이트’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해 사용자의 움직임과 코골이, 심장박동 등을 분석해준다. 사용자의 총 수면 시간은 물론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까지 걸린 시간, 규칙적인 수면 여부 등을 평가해 수면의 질을 수치화하는 ‘수면 점수’도 제공한다. 또 자동화 서비스 플랫폼인 IFTTT와 손잡고 침대에 누우면 자동으로 방 안 조명을 끄거나 스마트폰을 무음 모드로 전환하는 등 홈 오토메이션 기능도 더했다. 지난 3월부터 예약판매를 시작한 이 제품의 판매가는 99.95달러(약 11만원)다. 노키아는 “자체 연구 결과 이 제품을 활용하면 하루 평균 12분을 더 잘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12분이 가져올 인생의 변화를 느껴보라”고 홍보했다.

미국인 3명 중 1명은 만성 수면 부족


필립스는 올해 자사 헬스케어 솔루션의 화두로 ‘숙면’을 내세웠다. 필립스가 CES에서 처음 공개한 ‘스마트 슬립’은 헤어밴드처럼 머리에 쓰고 자는 것만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고안했다. 이른바 ‘백색 소음’을 통해 수면과 긴장 완화를 돕는 것이다. 백색소음은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자연스러운 소리로, 작게 반복되면서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기능을 한다. 기기의 센서가 뇌파를 분석해 뇌의 활동에 따라 적합한 백색 소음을 들려주면서 잠이 들게 유도하고 깊은 수면 상태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독일 생활가전 업체인 보이로는 귀에 거는 형태의 코골이 방지 기기 ‘스노어 스토퍼’를 내놨다. 사용자가 수면 중 코를 골면 기기가 이를 감지하고 소리나 진동으로 자극해 코골이를 멈추게 한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배우자나 연인을 배려하는 기능이라는 게 보이로의 설명이다. 웨어러블 기기 전문 업체인 핏비트는 자신의 수면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모니터링 솔루션을 제공한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 앱으로 자신의 수면 시간과 수면 패턴, 신체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핏비트은 앱을 통해 숙면을 돕는 맞춤형 조언을 제공한다.

미국의 25~45세 성인 가운데 40%는 수면 시간이 7시간 미만이다. 미국인 세 명 중 한 명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숙면을 도와주는 제품이 속속 등장하는 이유다. 덕분에 미국의 수면 관련 시장은 약 32조원(2017년 기준)에 달한다. 이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시장은 매트리스와 침구류다. 이 밖에 수면연구소와 수면 무호흡 기기 등 메디케어 관련 분야도 각각 5조원에 육박하는 시장이다. 미국의 시장 조사업체인 마켓데이터 엔터프라이즈는 특히 처방의약품뿐 아니라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수면유도제 등 일반의약품 시장이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수면장애 환자가 늘면서 수면 무호흡증과 같은 관련 질환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업체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수면산업은 올해 3.3% 성장해 2023년까지 연평균 4.7%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CC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수면 시장은 내년에는 약 8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만큼 수면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중국의 수면산업은 2010년부터 연평균 24%의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의 수면산업은 크게 침구류 같은 수면가구와 보조약품, 건강보조식품, 의료기기 등으로 나뉜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수면가구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전체 산업의 84%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이 밖에 수면보조약품(7%)이나 건강식품(6%), 의료기기(3%) 등의 수요는 아직 낮은 편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인의 소득 수준 향상과 수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관련 시장은 요식업과 운동산업 다음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빠르면 5년 내 8000억 위안(약 131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아직 현지 기업의 기술 수준이 낮은 만큼 해외 의료기기와 건강 기능성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전망이다.

일본 파나소닉, 두피 통한 뇌파 측정기기 개발


일본의 수면산업은 미·중에 비해선 작지만 IoT 등 신기술을 접목해 첨단화되는 추세다. 일본 역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침구류로, 2016년 기준 8600억엔(약 8조6000억원)으로 추산한다. 최근에는 IoT를 활용한 침실 환경 조절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는데, 가전 업체 파나소닉이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침구업체와의 제휴한 데 이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침실 조명과 오디오, 에어컨 등을 조절해 최적의 수면환경을 제공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 밖에 음악이나 향기, 빛으로 수면의 질을 높이는 가전이나 웨어러블 기기 등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두피를 통해 뇌파를 측정해 수면의 질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해 이를 적용한 제품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가 최근 10년 간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수면 부족이나 수면장애로 인한 교통사고,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3조엔(약 3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코트라 관계자는 “일본 관련 업계는 매년 상·하반기에 각각 한 차례씩 수면의 날을 지정해 관련 행사를 열고, 질 높은 수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며 “기존 침구류 중심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한 신제품 출시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1446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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