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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vs 인도의 아프리카 패권다툼] 인도 아성에 중국이 도전장 내밀어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아프리카에 ‘인교’ 250만 명 넘어…시진핑, 브릭스 회의 직후 인도 텃밭 모리셔스 방문

▎7월 25~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브릭스 (BRICS) 정상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실리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난 7월 아프리카는 뜨거웠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 신흥경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7월 25~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 5개국은 세계 인구의 약 40%를 차지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회원국 정상이 참가했다. 눈에 띄는 것은 시 주석과 모디 총리다. 두 정상은 정상회의와 연관해 아프리카 순방 경제외교를 펼쳤다. 시 주석은 22~23일 세네갈, 24일 르완다를 거쳐 남아공에 도착해 25~27일 머물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27~28일 귀국길에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를 거쳤다. 모디 총리도 만만찮은 강행군을 했다. 23~24일 르완다를 거쳐 24~25일 우간다를 찾은 다음 남아공에 도착해 25~27일 브릭스 정상회의에 합류했다. 인도와 중국의 정상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 셈이다. 그야말로 인도 코끼리와 중국 용이 한여름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대일 대결을 벌였다.

중국·인도 정상, 르완다에 같은 날 머물러

두 정상은 당연히 만나는 브릭스 정상회의는 물론 르완다에서도 일정이 공교롭게도 겹쳤다. 7월 24일 두 정상은 같은 나라에 머물렀다. 외교 의전상 전례 없는 일이다. 브릭스의 기둥 격인 중국과 인도의 정상을 한 날 맞은 르완다는 독일을 거쳐 벨기에 식민지로 있다가 1962년 독립한 가난한 나라다. 인구 900만에 국내총생산(GDP)이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기준 89억1800만 달러로 세계 140위, 1인당 GDP가 772달러로 170위다. 더구나 이 나라는 1990~94년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가 벌어져 50만~100만 명이 학살된 르완다 내전으로 악명 높다. 이런 나라에 두 정상이 경쟁적으로 찾은 것은 그야말로 경쟁에 경쟁을 벌인 형국이다. 구체적인 이익을 찾아 방문했다기보다 경쟁적으로, 서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의미 있는 나라를 찾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힘든 시절을 보냈던 아프리카가 이제는 브릭스의 핵심 기둥인 중국과 인도가 동시에 러브콜을 던지는 ‘매력적인 비즈니스 대륙’이 된 셈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양손에 떡을 쥐고 이익 극대화를 저울질하는 시대가 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내건 ‘아메리카 퍼스트’에 발목이 잡혀 국내 이슈에 함몰되고 유권자의 눈치나 보는 동안 중국과 인도가 아프리카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 버락 오마바 시절에 미국은 아프리카에 민주주의와 깨끗한 경제 도입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 역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신 어느 정도 ‘융통성 있고’ ‘돈맛’도 볼 수 있는 중국이나 인도식 비즈니스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관심이 몰리는 상황이다.

인도가 아프리카 진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 사이에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인적 교류의 전통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수많은 인도인이 아프리카에 이주했다. 주로 노동자였지만 인도 독립운동을 주도한 마하트마 간디(1869~1948년) 같은 지식인도 있었다. 본명이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인 그는 영국의 명문 대학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 유학해 변호사가 됐다. 1893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의 나탈의 인도계 기업에서 1년 간 계약으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1등권 승차권을 구입해 기차를 타고 가던 간디는 역무원으로부터 유색인종은 1등칸에 탈 수 없다며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이 사건 때문에 간디는 동포인 인도인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독립운동에 뜻을 두게 됐다. 당시 남아프리카에는 수많은 인도인이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1894년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 간디는 나탈 지방의회가 인도인의 선거권을 박탈하려고 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게 됐다. 간디는 나탈 지방의회와 영국 정부에 보낼 탄원서를 작성하고 서명운동을 펴면서 처음으로 조직적인 활동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나탈 인도국민회의를 창설하고 현지에 계속 남아 20년 이상 변호사로 활동했다.

식민지 시절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현재도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인도인은 상당한 규모다. 이는 중국의 화교(華僑)에 비교된다. 중국계 화교가 있으면 아프리카에는 인도계 인교(印僑)가 있다. 화교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에 5000만 명이 퍼져 있다. 태국에 940만, 말레이시아에 700만, 미국에 380만, 인도네시아에 283만, 싱가포르에 255만, 미얀마에 163만 명의 화교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교는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년)이 1978년 개혁·개방에 나설 당시 경제 개발을 위한 시드머니의 공급원 구실을 톡톡히 했다. 화교들이 주축으로 건국하고 경제개발을 이뤘던 싱가포르의 경험은 중국의 경제 개발에 결정적인 모델 역할을 했다.

덩샤오핑은 부총리 시절이던 1978년 11월 중국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콴유(李光耀·1923~2015년) 초대 총리를 만났다. 덩은 깨끗하고 경제적 활력으로 넘치는 이 도시국가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1918년 프랑스로 근공검학(勤工倹学·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해서 공부함) 고학생으로 유학 가던 중 목격했던 과거 낙후된 모습을 기억하는 덩에게 싱가포르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현장이었다.

덩은 개혁·개방을 처음 제안한 역사적인 현장인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회 전체회의에서 싱가포르 발전상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를 거울삼아 나라를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꿈은 중국에 싱가포르 같은 도시를 1000개 세우는 것”이라는 덩이 발언에 이런 역사가 녹아있다. 덩은 92년 1~2월 우한·선전·주하이·상하이 남방 지역을 시찰하고 담화를 발표한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싱가포르를 질서유지의 모범 사례로도 거론했다. 그 뒤 수만 명의 중국 공산당원이 싱가포르에서 사회보장·조직관리·사회관리·도시화 등에 대한 노하우를 연수받고 관련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중국과 합작으로 장쑤성 쑤저우에 쉬저우 공업원구를 건설해 자국 방식으로 운영한다. 중국 속 싱가포르다. 화베이성 톈진의 생태환경 도시, 광둥성 광저우의 지식도시, 쓰촨성 청두의 혁신첨단과학단지 등을 양국 합작으로 건설했거나 건설 중이다.

인도도 중국의 화교 못지 않은 엄청난 규모의 인교를 거느리고 있다. 인도 외교부에 자료에 따르면 인교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약 3120만 명이 세계에 퍼져 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 정부 통계 등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해외 거주 인도인(국적과 무관)은 미국에 318만~450만, 사우디아라비아에 400만, 말레이시아에 274만~400만, 아랍에미리트(UAE)에 280만, 영국에 180만, 캐나다에 155만, 남아공에 128만~150만, 미얀마에 100만, 모리셔스에 88만~99만, 오만에 80만, 쿠웨이트에 70만, 카타르에 65만, 트리니타드 토바고에 55만, 싱가포르에 25만 명 등이다. 오일달러는 넘치지만 노동력은 부족한 중동 각국이 ‘인디언 타운’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아프리카는 이미 이래 전부터 인도의 텃밭이다. 아프리카를 통틀어 인교는 25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화교’ 못지 않은 인도 ‘인교’

영국의 주요 식민지였던 케냐의 경우 관광이 핵심인 사파리의 상당수가 인도 자본의 소유다. 곳곳에 인도 관광객이 넘친다. 사파리의 뷔페 식당은 인도 음식 일색이다. 수도 나이로비 시내의 경우 중국 식당은 찾아다녀야 하지만 인도 식당은 널려 있다. 인교의 존재는 인도 기업이 아프리카에 투자하고 진출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시내 건설 공사장은 중국 기업이 한자 구호를 내걸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아성인 아프리카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주목할 나라는 이번에 중국의 시 주석이 귀국길에 찾았던 아프리카 대륙 서남부 인도양상의 작은 섬 나라인 모리셔스다. 모리셔스는 16세기 말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 식민지를 거쳐 1810년 영국 식민지가 됐으며 1968년 독립했다. 명목금액 기준 GDP가 122억 7300만 달러로 세계 128위로 경제 규모도 크지 않으나 1인당 GDP는 9794달러로 작지는 않다.

식민지 시절 오늘날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을 이루고 있는 당시 인도 식민지에서 인도계 주민이 대거 이주해 오늘날에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나라는 인구가 124만5000명에 불과한 데 인도계가 88만~99만 명에 이른다. 작은 인도인 셈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도의 전략적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인도의 텃밭 같은 이런 나라에 시 주석이 찾은 이유는 아프리카 대륙을 놓고 인도와 한판 대결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를 말할 때 간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도 총리인 모디를 거론하는 것도 그만큼 자연스러울 것이다. 두 사람이 동향이기 때문이다. 간디는 구자라트주 출신인데 남아프리카에서 귀국한 후 주도인 아메다바드를 독립 운동 거점으로 삼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 구자라트주는 바로 모디 총리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구자라트주의 항구를 출발해 인도양을 건너면 바로 아프리카다. 아프리카에 만 250만 명이 거주하는 인교의 조상 상당수가 이 항구를 통해 인도양을 건넜을 것이다. 2017년 5월 22~29일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에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연차 총회가 열렸다. 모디가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아프리카는 인도 경제계의 안방 격

아프리카는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인적 교류상으로, 심리적으로 오랫동안 인도 경제계의 안방이었다. 이 때문에 인도가 아닌 나라가 진출하기엔 벽에 높은 편이었다. 중국 기업은 이런 벽을 넘어 장대높이를 하듯이 아프리카에 진출해왔다. 인도와 아프리카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얻어왔다. 실제로 인도와 가까운 동아프리카의 케냐와 탄자니아. 르완다가 최근 국내총생산(GDP) 실질 성장률이 6~7%에 이르는 등 고성장을 하고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간의 교류는 200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인도의 대아프리카 수출이 800억 달러 규모다. 석유와 석유제품의 교역에 가장 많다. 인도의 아프리카 수입품 가운데 절반이 석유류다. 인도에서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상품은 의약품, 자동차 등 운송기구, 기계제품이 주류를 이룬다. 이 아프리카의 경제에 인도와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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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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