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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석유수송로 안전한가] 이란-예멘 반군 위협에 바닷길 막히나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이란군,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대적 군사훈련 … 사우디, 예멘 반군 공격에 홍해 원유수송 잠정 중단

▎이란 혁명수비대가 2105년 2월 25일 걸프해역의 전략요충지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 항공모함 모형 폭파 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빠지고 이란을 상대로 경제제재를 가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이란과의 갈등이 증폭하고 있다. 두 나라는 심각한 설전을 주고받으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세계가 이 사태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란이 단순한 석유와 가스 수출국을 넘어 세계에 석유와 가스를 공급하는 주요 운송로의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란의 갈등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과 분쟁, 공격 위협 등으로 중동의 해상 석유 수송로가 줄줄이 막혀 세계에 새로운 석유 파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증폭


아라비아 반도는 세계적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이 위치해 있다. 아라비아반도는 동북쪽의 걸프 지역과 서쪽의 홍해에 둘러싸여 있다. 걸프 지역과 홍해는 수많은 원유와 가스 운반선이 엄청난 에너지를 싣고 이동하는 석유와 가스 등 글로벌 에너지 운송의 목줄이다. 문제는 이 목줄이 모두 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걸프 지역에서 원유나 가스를 가득 실은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좁은 병목구간을 지나야 넓은 오만 만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남쪽으로 오만의 역외 영토인 무산담 반도, 북쪽으로 이란이 위치한다. 오만을 방문했다가 무산담을 찾은 적이 있는데, 사막과 돌산, 작은 어촌 밖에 없는 이 황량한 지역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바라보니 장관이 눈에 들어왔다. 유조선이나 가스 운반선은 물론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 줄줄이 지나가는 장면이다. 세계적인 원유 생산지이자 소비지인 걸프 지역으로 향하는 화물선이다.

짧게는 남북 거리가 50㎞ 밖에 되지 않는 이 해협을 지나 서쪽을 향한 유조선들은 오만 만을 거쳐 아라비아해를 지나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간다. 아시아 지역은 지리적인 근접성 때문에 정치적인 불안에도 북아프리카 산이나 북미산 대신 중동산 특히 걸프 지역의 원유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한국이 도입하는 원유의 80%가 여기를 거친다. 세계 원유의 대략 3분의 1 정도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조사 기관에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의 20~40%가 지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야말로 세계 원유 운송의 목줄이자 아시아 경제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군에서 중동 지역을 담당하는 조셉 보텔 중부군 사령관은 지난 8월 8일 워싱턴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위기를 감안해서다. 보텔 사령관은 이란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수십 척의 소형 보트를 투입해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핵개발과 관련한 미국의 경제제재에 직면한 이란은 지난 8월 3일 호르무즈 해협 서쪽인 걸프 지역과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 그리고 해협 동쪽인 오만 만 일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시작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핵합의에서 탈퇴한 후 경제제재 재개 기일이 다가오자 이 지역에서 군사연습을 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美 중부군 사령관 “호르무즈 해협 주목”


이란은 이번 훈련에 함정 100여 척을 동원해 대대적인 훈련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이 정도 대규모 훈련을 벌이는 것은 이란을 경제적·외교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미국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말로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군사적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이번 훈련 기간 중 민간 선박의 통행 제한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제 이런 불안이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란은 미국의 의도대로 자국의 석유 수출이 전면 차단될 경우 다른 걸프 지역 국가들이 석유 수출에 이용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겠다고 간접적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보텔 사령관은 이를 의식해 “이란 소형 보트들의 호르무즈 해협 작전은 미국의 제재가 다가옴에 따라 자신의 군사적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텔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거나 자살폭탄 보트 공격을 가할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미군은 이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이 이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거나 바레인을 기지로 하는 미 5함대 소속 군함을 상대로 공격을 가할 경우 이는 보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란은 북한에서 수입한 소형 잠수함 등을 갖추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군함 크기가 작고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뢰를 부설하거나 레이더에 잘 들어오지 않는 소형 고속정을 이용해 미군 군함을 공격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기뢰를 부설하면 유조선은 해당 해역에 들어갈 수 없으며 군함 활동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최첨단 장비로 하늘과 수상, 그리고 수중의 적을 탐지하고 공격할 수 있는 미 해군의 함선들도 레이더로 확인하기 어려운 고속정 공격에는 의외로 취약한 편이다. 보텔 사령관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를 달리 해석하면 이런 공격을 우려한다는 뜻도 된다.

이럴 경우 당장이 뜨거운 분쟁지역에 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은 전면 중지될 수밖에 없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가 석유와 가스를 상당 기간 수출하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이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중동에 화석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아시아 지역은 심각한 상황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제조업 가동 부진, 수출 동력 상실로 이어져 경제 위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 특히 가뜩이나 경기 침체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겹쳐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중국에 원가 상승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원유 공급 중단으로 산업체 가동중단이 이어질 경우 정치적인 불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단순한 에너지 공급 부진이나 도착 지연, 가격 상승을 넘어 글로벌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란의 석유 수출을 중지시키는 미국의 경제 제재는 오는 11월 4일 발효될 예정이다. 미국은 이란 석유를 수입하는 나라는 예외 없이 철퇴를 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때까지 이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세계 석유 운송로에 대한 위협은 호르무즈 해협에 그치지 않는다. 아라비아 반도의 서쪽을 지나는 홍해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이는 당장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25일 홍해 남쪽 입구에 해당하는 바브 알 만다브 해협을 지나던 사우디 유조선 두 척이 예멘의 후티 반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 유조선들은 사우디 국영 해운사인 바흐리 소속으로 200만 배럴 규모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이 가운데 한 척에 아주 경미한 손상이 생겼지만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원유가 유출되지는 않았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문제는 피해 규모가 아니라 공해상을 지나는 유조선이 공격을 받는 상황이다.

중동산 에너지 수입하는 아시아 지역 타격 우려


이는 예멘 내전의 영향이다. 예멘에선 2014년 시아파인 후티족 반군이 수니파인 압드 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 정부를 공격하면서 내전이 발생했다. 서방 정보기관은 후티족 반군이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란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 능력이 거의 없는 후티족 반군이 군수물자와 미사일을 확보하고 내전을 지속하는 것은 이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서방 당국은 보고 있다.

후티족 반군은 수도 사나를 비롯한 이 나라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으며 이에 밀린 하디 대통령은 사우디로 망명했다가 최근에야 돌아왔다. 사우디는 2015년 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 등과 수니파 연합군을 조직해 하디 정권을 지원하면서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러자 후티 반군은 2015년 6월 6일 사우디를 향해 처음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줄기차게 중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가해왔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후티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100발이 넘으며 이 가운데 90발 이상이 패트리엇 미사일에 요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이 별로 없는 나라답지 않게 예멘의 후티 반군은 상당한 수준의 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장거리 지대지 미사일로 지상의 전술 목표물을 공격한 것은 물론 지난해에는 1200㎞ 이상 떨어진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동북부 킹칼리드 국제공항 인근까지 장거리 미사일을 날려보냈다. 당시 BBC 방송은 요격된 미사일 파편이 공항 주차장까지 날아왔다고 전했다. 후티 반군이 운영하는 예멘의 사바뉴스는 이 미사일이 후티 측이 자체 개발한 부르칸 H2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후티 반군이 장거리 미사일을 자체 개발했다기보다 이란으로부터 완제품을 공급받았거나 부품을 조달받은 후 조립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후티 반군이 북한과 미사일 협력을 하는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란-후티반군으로 이어지는 음지의 미사일 부품 공급망이다.

후티 반군은 지대지 미사일은 물론 지대함 미사일까지 보유하며 이 나라의 서남부 해상까지 위협한다. 바로 홍해의 남쪽 입구에 해당하는 바브 알 만다브 해협이다. 예멘과 아프리카의 지부티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이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지대함 미사일로 이 해역의 미국 해군과 수니파 연합군의 함선을 공격한 적도 있다. 당시 미 해군이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해상 발사 요격미사일인 SM-2를 발사해 날아오던 후티 반군의 미사일을 요격한 적도 있다. 후티 반군은 전술용으로도 미사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750㎞ 거리의 정부군 지휘소에 탄도미사일을 명중시켜 중장급 장성을 비롯한 고위 장교들을 폭사시켰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3월에는 드론을 이용해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연합군 패트리엇 포대 공격도 시도했다. 이를 볼 때 유조선을 포함해 바브 알 만다브 해협을 지나는 선박은 후티 반군의 미사일이나 드론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만 먹으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예멘에선 하디 대통령의 정부군이 아덴만을 아우를 수 있는 이 나라 최대 항구인 아덴과 서부 홍해 지역의 항구인 모카 등 서남부 해안지대와 중부와 동부를 장악하고 있다. 후티 반군은 수도 사나를 비롯한 서북부 내륙이 근거지인데 예멘 제2의 항구로 이 해협을 아우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 호데이다 항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바브 알 만다브 해협과 홍해와 지나는 항로가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해상운송 노선이라는 사실이다. 사우디의 석유는 물론 아시아 산업국가의 상품이 유럽 등으로 운송되는 세계 무역의 주요 통로다. 홍해에서 사우디의 주요 항구인 제다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슬람 최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도 가깝다.

홍해 입구에서 유조선이 공격을 당하자 사우디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홍해를 통한 원유수송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의 칼리드 알팔리 에너지장관은 “바브 알 만다브 해협을 통한 모든 원유수송을 이 지역의 해상 운송의 안정이 보장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중단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물론 홍해도 안심 지역이 아님을 세계에 알린 셈이다.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력 뛰어나

현재 세계적으로 사우디 등의 감산에 따른 원유 공급량 제한과 이란산 석유의 수출 제한 가능성 증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 고조 등의 이유로 국제 원유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홍해 사태로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의 홍해를 이용한 원유수송이 잠정적으로 중단되면서 유럽과 북미 시장의 원유 인도가 미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도 지연 수준에서 그칠지는 미지수다. 더 큰 상황으로 번지고 자칫 글로벌 경제위기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세계가 근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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