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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환율전쟁의 역사] 환율은 경제패권 유지의 요긴한 수단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터키 리라화 폭락, 한국 이어 중국과도 환율 논쟁…무역수지 개선, 일자리 창출 지렛대로 활용

▎사진:© gettyimagesbank
터키의 리라화가 세상에서 가장 불안한 화폐가 되는 데는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와 몇 차례의 불협화음 끝에 터키산 철과 알루미늄에 수입 관세를 각각 20%, 50%를 부과하겠다고 한 게 8월 10일이다. 달러화 대비 리라화 가치는 8월 13일 40%가량 떨어졌다. 1달러가 4리라대였다가 사흘 만에 7리라에 육박했고 현재도 6리라대에 머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터키와의 불협화음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미국인 목사의 터키 억류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재선에 성공한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리라화의 급락이 미국의 경제전쟁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리라화 사태는 신흥시장의 환율을 뒤흔드는 데 일조했다. 브라질 헤알화는 자국 대선을 두 달 앞둔 정치적 혼란과 취약한 경제구조 탓에 최근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8월 23일 미국 달러화 대비 헤알화 환율은 전날보다 1.65% 급등하며 달러당 4.123헤알로 마감됐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도 한 때 40% 가까이 떨어졌고, 결국 8월 30일 국제통화기금(IMF)에 500억 달러 국제금융을 신청했다. 남아공과 러시아도 15% 이상 환율이 올랐다.

리라화 폭락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다. 오랜 군사동맹국이던 터키와 미국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건 2011년 ‘아랍의 봄’ 이후부터다. 특히 최근 시리아 내전에서 양국 입장이 크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쿠르드족은 터키 인구의 20% 가까이를 차지하고, 시리아 등에도 퍼져 있지만 한 번도 자신들의 국가를 가져보지 못한 민족으로 오래 전부터 터키와 전투를 벌여왔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미국이 시리아를 압박하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미군과 함께 이슬람국가(IS)와의 전투에도 참여했다. 이에 미국은 올 1월 쿠르드족 3만 명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IS와의 전투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터키 정부는 크게 반발했고, 이후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무기를 사들이고 중국이 만드는 공동 경제권에 편입하려고 애쓰는 등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과의 관세 분쟁은 이런 맥락에서 일어났다.

1970년대 닉슨 대통령부터 시작된 관세 무기화

미국은 과거에도 관세와 환율을 무기화했던 전력이 있다. 순식간에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킨 1970년대 오일 파동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했던 미국에 대한 경제제재로 석유 수출을 금지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원유 가격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치솟았다. 오일 쇼크는 세계로 퍼졌다. 세계 무역량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각국 경제성장률은 그 해 반 토막이 났다. 그러나 오일 쇼크가 완전히 정치적·군사적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 배후에는 닉슨 대통령이 있었다. 닉슨은 1971년 닉슨 쇼크라고 이름 붙은 ‘신 경제 정책’을 발표했다. 정책의 핵심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지하고, 모든 수입품에 관세 10%를 추가로 매기는 것이었다. 이제 미국 달러는 불환지폐가 됐고, 이후 금과 달러의 교환 비율을 정해놓는 브레턴우즈 체제도 폐지된다. 당장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7% 급등했고, 산유국들은 미국이 매긴 관세를 포함해 총 20% 가까이 원유 가격을 올렸다. 이후 정치적 문제가 겹치면서 본격적으로 오일 쇼크가 시작됐다. 닉슨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매기고 달러 가치를 조정한 이유는 베트남 전쟁 패전으로 달러가 많이 풀리면서 달러화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프랑스에 군사원조를 한 데 이어 1964년 8월 통킹만의 미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베트남전을 시작했다. 미군이 직접 전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남베트남 군대에 달러 가치가 떨어질 만큼 막대한 군사원조를 했다. 1971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5.8%였고 실업률도 6%가 넘었다.

미국이 환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대표적 사례는 일본의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다.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5개국 재무장관이 모였다. 미국은 무역수지적자에 시달리자 일본 상품 가격이 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당시 달러당 240엔이던 엔 달러 환율을 즉각 220엔, 1년 후 150엔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 혹은 협박은 받아들여졌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120엔까지 상승했다. 일본의 미국 수출품 가격은 올라갔다. 일본은 엔화 가치가 높아진 만큼 수입품을 더 싸게 샀고, 해외 부동산 및 기업 쇼핑에 나섰다. 하지만 시중에 돈이 넘쳐나면서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는 버블 논란에 휩싸인다.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렸다. 부동산은 폭락하고 가격경쟁력이 없으니 수출도 안 되면서 기업들은 줄도산 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시초는 미국의 인위적인 환율 조정 탓이 컸다.

올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도 환율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올 3월 한·미 FTA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양국이 환율 관련 합의를 했다는 내용을 추가하면서 문제가 됐다. USTR은 ‘미국의 새 무역 정책과 국가 안보를 위한 한국 정부와의 협상 성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무역과 투자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촉진하기 위해,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마무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관련 내용에는 환율 (개입) 관행에 대한 강한 약속, 투명성 제고 및 공개, 책임이 포함된다”고 거들었다. 우리 정부는 “사실과 다르다”며 수출에 유리하게 환율을 조작한다는 의심을 없애고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외환시장에 개입한 내역을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의 목표는 환율?

미국은 이제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 5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에 관세를 매겼다. 협상을 하는 와중에도 관세 부과는 멈추지 않았다. 무역전쟁이 환율 전쟁으로 확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조작해 환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도 위안화 약세를 모니터링하고 있고 환율 조작 여부를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1달러는 4월 6.30위안에서 8월 중순 7위안에 육박했다. 하지만 양국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미국의 환율 집착은 무역수지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치훈 국제 금융센터 중국팀장은 “미국은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위안화 절하 압박을 가하면서도 중국 인민은행이 달러당 7위안을 넘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환율 조작이라고 하는 등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역수지 개선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1450호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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