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정부의 유인체계 제공과 특혜 논란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기는 둔화되고 산업 경쟁력이 퇴보하는 가운데 내년 경제 전망치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3%였던 우리 경제의 2018년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낮췄다. 2.9%였던 2019년 전망치는 0.3%포인트 내린 2.6%로 수정했다. 지난 9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8년과 2019년 모두 3%였던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7%와 2.8%로 낮춘 바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금리·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도 힘든 상황이다. 미국 금리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유출 가능성을 고려할 때 0.75%포인트 차이까지 벌어진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기 둔화 상황에서 부양정책이 아닌 긴축정책을 시행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게 된다.

현재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9% 정도인 상황에서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경우 부작용은 상당하다.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기업 투자가 부진하다는 점이다.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몇 가지 사례를 우선 살펴보자. 최근 이슈가 된 인터넷전문은행의 예를 보면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대주주 보유 지분과 관련해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은산분리 문제가 논란이 됐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완화할 것을 요청한 바 있는 데도 일부 여당 의원과 시민단체들은 은산분리를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면서 지분 완화를 반대했다. 불특정 다수의 예금을 받아 대출을 통해 이를 운용하는 금융회사가 은행이다. 만성적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과거에는 산업자본이 은행 대주주가 되는 경우 은행 돈을 자기 이익을 위해 빼돌릴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대주주 지위를 제한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자금이 남아돌고 있고 우량 기업의 경우 회사채 발행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원하는 만큼 조달할 수 있는 시대다. 은행 돈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빼돌리려고 은행업에 진출하는 산업자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감독당국의 감시도 강화됐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앵무새처럼 똑같다. 우여곡절 끝에 개정안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규제 완화는 요원하다. 우리의 현주소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지만 규제는 여전히 강하다. 수도권 규제나 서비스업 규제는 요지부동이다. 지금 700만 명이 넘은 65세 이상 인구는 2025년이면 1000만 명이 넘는다.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를 넘는 ‘고령화사회’에서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된 지 7년여 만에 다시 이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생산가능인구도 줄고 내수도 줄어들면서 성장잠재력 자체가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소비가 유지되는 분야는 보건헬스케어 분야가 거의 유일하다. 이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한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데 대비는 매우 소홀하다. 영리병원이라는 논리 또한 앵무새처럼 반복되고 있다. 고급 의료와 공공의료를 동시에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하면 되는 데도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계속 막고 있다. 좀 더 실리적인 접근이 아쉽다. 신규 투자가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일자리가 생긴다. 고급 서비스업에의 투자는 일자리 창출력이 높다. 4차 산혁명은 무인혁명으로서 로봇·인공지능·자율주행차·드론 등 사람의 손길이 불필요해지는 분야에의 투자가 많다. 하지만 보건의료·헬스케어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분야다. 일자리를 대폭 늘릴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잘 키워야 하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이 병렬적으로 추진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경제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난다. 친노동적인 행보를 계속하면서 기업들의 기살리기를 통한 투자촉진을 유도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기업투자는 매우 민감하다. 조금만 상황이 안 좋아도 금방 움츠러든다. 신규 투자 잘못하면 주가도 떨어지고 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이럴 때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정부가 줄여주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을 정부 경제정책의 파트너로 인식하면서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 보니 기업 기살리기와 투자촉진이 부진하다.

얼마 전 SK그룹은 SK해운 매각 방안을 발표했다. 회사를 사모투자펀드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그룹이 계열사를 매각하는 데에는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정책도 중요하지만 이 정책의 추진이 과도해지면서 투자 연기 내지 축소로 이어진다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공정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의 활력과 효율 그리고 성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목표가 상충되는 상황이라면 정책의 적절한 수위조절을 통해 성과를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정정책도 경제정책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주회사 체제도 그렇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인적분할을 하는 경우 총수의 지분이 증가한다. 또 자사주가 있는 경우 의결권이 부활하면서 지배구조 강화에 도움이 된다. 이런 부분은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이행하도록 만드는 유인체계다. 그런데 이를 특혜라고 공격하고 비판하면 기업들은 매우 난처하게 된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강화된다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라고 해놓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나면 지분이 증가한다고 이를 특혜라고 비판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전환이 적절하면 전환 유인을 확실하게 해주고 문제가 있다면 전환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우리 규제 체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민간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인체계를 제공하는 것이 특혜라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민간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설계된 체계에는 이른바 유인부합성(incentive compatibility)이 존재한다. 유인부합성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유인체계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간도 얻을 것이 있어야 움직일 것 아닌가.

투자 활성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특히 전통산업이 힘들어지고 새로운 산업에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위험성은 매우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정부가 나서서 민관합동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민간투자의 위험성을 줄여주고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를 보면 민간과 정부가 합동으로 투자를 하되 투자가 성공하는 경우 민간자본이 보다 많은 수익을 가져가도록 되어 있다. 우리도 이런 식의 제도 도입 등으로 민간투자의 위험도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

1456호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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