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부정적 영향 상쇄할 방안 모색해야…일하는 방식과 산업 생태계 변화도 필요
출산율 저하는 산업화가 진전된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다. 출산율이 낮고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속도가 적응할 만하고 정도가 감내할 만하면 저출산 자체가 재앙은 아니다. 출산율 자체의 하락에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출산율 하락 속도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범상하게 넘기기 어려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1970년 한국의 한 해 출생아 수는 100만 명이 넘었다. 올해는 30만 명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율이 극적으로 하락한 이유로 흔히 양질의 일자리 부족, 낮은 보육서비스의 질, 사교육비 부담 등을 지목한다. 그러나 최근 현상을 들어 지난 수십 년 간의 출산율 저하 과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가치관 변화로 돌리는 것도 뭔가 부족해 보인다.여성의 사회활동 욕구는 전통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정도 내지 소득 증가 속도에 비례해서 증가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1960년 68달러에서 2017년 3만 달러 수준으로 수직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 남성의 가사 참여 시간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여성이 결혼 후 전업주부로 머물며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회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선택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이 엄청나게 커졌다.이와 달리 한국의 기업문화와 가정문화는 남성의 가사분담 시간을 늘리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즐거움과 성취와 행복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가사노동을 발생시키는 원천으로 보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게을리 하는 양식으로 적응이 이뤄진 것이다. 산아와 육아의 암묵적 기회비용뿐만 아니라 명시적 비용도 다른 나라보다 크다고 볼 증거가 존재한다.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하게 저하한 배경에는 이런 사실이 놓여 있다.저출산 상태로 급속히 이행한 한국 사회가 경제·사회적으로 겪을 충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년 내에 극심한 구조조정 압력을 받는 학교가 가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그런 대학이 존재하지만 표면에까지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곧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피라미드 형태의 인구구조를 전제로 하고 고안된 전통적 사회보장 제도는 지속가능성이 위험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다.저출산 상황을 타개하거나, 저출산에도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할까? 얼마 전 모 정당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적이 있었는데, 이는 저출산 원인에 관한 중요한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물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가정생활의 균형이 가능하도록 남성의 가사참여가 늘어나도록 평소 ‘일과 삶의 조화’를 당연시하는 직장문화가 자리를 잡아야 남성의 육아휴직 활성화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정부의 노력보다 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전향적 사고를 해야만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외 유력한 전망 기관에 따르면 한국의 성장률은 2030년대에 1%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모두 일과 삶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식의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지금 예상되고 우려되는 노동력 감소는 60대 이상의 고연령층과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 증가로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고 성장동력의 추락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국가 간 비교를 해보면 한국의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증진 여부에 한국 경제의 활로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저출산이 경제에 미치는 성장률 저하를 극복하는 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영역이다. 한국은 과연 저출산 환경 속에서 디지털 기술 전환의 시대에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산업 생태계를 변화시켜 생산성을 높이고 저출산의 부정적 효과를 극복할 수 있을까?
※ 허재준 박사는…한국EU학회회장을 맡고 있다.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사회정책연구본부장 등을 역임했다.